"국민이기 전에 인간입니다."
"법이기 전에 정의와 양심입니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안전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의 작은 영역. 명상 서적들에서는 퀘렌시아를 '인간의 내면세계에 있는 성소'라고 말한다.
......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속에 휴식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전체가 나의 퀘렌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2013.10.18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투우사는 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 장소를 알아내어 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투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번 넘게 투우장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썼다.
"A querencia is a place the bull naturally wants to go to in the ring, a preferred locality. It is a place which develops in the course of the fight where the bull makes his home. It does not usually show at once, but develops in his brain as the fight goes on. In this place he feels that he has his back against the wall and in his querencia he is inestimably more dangerous and almost impossible to kill."
"께렌시아는 투우 중 소가 자연스럽게 찾아내는 집 같은 장소입니다. 처음부터 단번에 보이진 않지만 싸움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머릿속에서 형성되어 갑니다. 그곳에 선 소는 자신의 등 뒤에 막다른 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이기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위험합니다. 그곳이 그의 께렌시아입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삶과 죽음을,
이를테면 격렬한 죽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전쟁이 끝난 오늘에 와서는 투우장뿐이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사려 깊은 삶을 살면서 인생의 본질을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과연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며,
죽을 때가 돼서야 내가 진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나는 날이야말로 비로소 새벽이 동트는 날이다.
앞으로 동터야 할 많은 날이 있다.
태양은 아침에 떠오르는 별일뿐이다.
- <월든>,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