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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굉장한 기운을 가지고 있구만.”
“예?” 지훈은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뺐다.
“자네 말이야, 굉장한 기운을 갖고 있어.” 노인이 말했다.
“제가 좀 굉장하죠.” 지훈이 능글맞게 답했다.
종로의 터줏대감이 다 된 지훈에게 포교 활동은 아무런 자극이 되지 않았다. 그들을 짜증과 귀찮음으로 대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상대를 하루의 심심풀이로 여기는 것이 고단수 수험생이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다. 그에게 나는 묘한 약재 냄새 때문에 후각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럼, 지나갈 테니 제 굉장한 기운 조심하세요.” 지훈은 금세 흥미가 식었다.
지훈은 앞길을 막는 노인을 지나쳤다. 얼마 후 종각 역 12번 출구에 다다른 지훈은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지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자를 푹 쓰고 있었지만 이쪽을 향하는 눈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온 기운이 지훈을 향하는 것 같았다. 그의 강렬한 시선을 지훈은 저도 모르게 피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 사람 뭐지?
그제야 노인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자그마한 몸집과 남루한 행색이 다른 길거리 노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무시당한 것이 분했는지 몸이 떨리고 있었다. 멀찍이 있어도 약재 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 냄새가 어우러져 노인의 떨리는 몸 위로 비범한 기운이 일렁이는 듯했다.
노인의 시선이 섬찟해질 즈음 인파가 지훈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찰나의 순간에 노인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집으로 가는 내내 지훈의 머릿속에 노인의 말이 맴돌았다. 지훈은 친구들이 있는 채팅방에서 이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술을 마시는 데 정신이 팔린 듯 답이 없었다. 지훈도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먼저 나왔고 그 길에 노인을 마주친 것이다. 답을 기다리던 지훈은 스터디 방에도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지훈은 생각에 잠겼다.
여태껏 포교활동을 걸어왔던 사람들은 젊었다. 아무리 많아도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고, 대부분은 지훈과 또래로 보였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번호를 얻고 만남을 이어가려고 했었다. 설문조사를 하든, 카페로 데려가든 말이다. 이 노인은 달랐다. 굉장한 기운이 있다는 한마디 말만 던지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말 기운을 느낀 걸까? 그냥 미친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찜찜했다. 그에게는 어중이떠중이들과 다른 어떤 느낌이 있었다.
이번 역은 신이문, 신이문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아 씨, 그 할아버지 생각하다가 한 정거장 지났잖아.
지훈은 신이문 역에서 내렸다. 반대편에서 하행선을 탈까 고민했지만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5월의 밤은 시원했다. 선선한 바람에 적당히 오른 취기를 깨며 걷기로 했다.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다. 걷다가 그 노인을 또 마주치길 내심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