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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Nov 28. 2021

당신의 기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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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재현, 너 어제 몇 시까지 공부하고 들어갔냐?” 지훈이 한창 점심을 먹는 재현에게 물었다.

“나? 9시. 맨날 9시까지 하고 가잖아.”

학원에서 늘 붙어 다니는 재현의 생활 패턴을 모를 리가 없었다. 대뜸 귀가 시간을 물은 것은 전날의 노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미끼였다.

전날 밤 지훈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검색에 몰두했다. 그 때문에 피곤해서, 또 그 생각에 아직 정신이 팔려서 지훈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너 그럼 집 가면서 벙거지 모자 쓴 할아버지 봤어?”

“아니. 그게 누군데?”

지훈은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에 밤새 조사한 내용이 어우러져 더 맛깔스러웠다.

“그냥 사이비 아냐?” 한참 듣던 재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진짜로. 생각해봐. 좀 특별한 게 있었다니까. 보통 사이비면 끌고 가려고 난리를 치잖아. 근데 이 할아버지가 그렇지가 않아요. 몸집은 작은데 눈빛은 아주 호랑이처럼 나를 쳐다봤다니까.”

“모자 때문에 얼굴은 잘 못 봤다며.”

“이 새끼 이거 못 믿네. 내가 응? 그 모자를 뚫고 나오는 응? 그 시선을 임마, 내가 느꼈다고. 됐다. 얘기가 안 통해.”

재현의 시큰둥한 반응에 지훈은 김이 샜다. 재현은 원래 그런 녀석이다. 29살 동갑내기 친구인 재현은 학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무덤덤했다. 첫 스터디 때 사람들이 둘을 똑같이 생겼다고 놀릴 때도, 지훈이 학원 강사와 싸웠을 때도, 같이 낙방의 쓴맛을 볼 때도, 그리고 그 맛을 몇 번 더 보며 서른을 앞둔 지금도. 재현은 엷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커피나 한잔 뽑아서 일찍 들어가자.” 재현은 또 속 모를 미소만 지었다.

“아, 들어가기 싫어. 커피 한잔 들고 나가서 그 할아버지 찾으러 다니고 싶다. 바람도 쐴 겸.” 지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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