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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Nov 28. 2021

당신의 기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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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들어와. 스터디는 잘 했니?” 지훈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미은은 곧바로 보고 있던 교재를 덮었다. 미은은 옆의 초록색 의자를 꺼내 지훈에게 앉게 했다.

“그래. 요즘 무슨 일 있어? 너 요새 수업 내내 집중 못 하더라. 국가직 두 달 남았는데… 이때 특히 더 집중해야 하는 거, 너가 더 잘 알잖아.” 미은이 시험까지 남은 기간을 정확히 짚어주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지훈은 기가 죽었다. 지훈은 노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각별히 관심을 가져 주는 미은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미안했다.

“솔직하게 말해 봐. 다 들어 줄게. 왜, 작년에 김희준 쌤 생각 나서 말 못 하겠어?”

“무슨 그 쌤 얘길… 그런 거 아니에요.” 지훈이 손사래를 쳤다. 그의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었다.

작년의 일이었다. 그는 연달아 낙방한 지훈과 재현을 불러 당분간 학원을 쉬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공부하느라 지쳤을 테니 쉬면서 머리 좀 식히라고 넌지시 말했다. 지훈은 그 속뜻이 장수생을 쫓아내 학원과 본인의 이미지를 지키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재현과 달리 지훈은 불같이 화를 냈다. 희준도 싸가지가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미은을 비롯한 강사들이 둘을 붙잡고 사태를 겨우 진정시켰다. 이후 지훈과 재현은 학원의 암묵적인 유명인사가 됐고, 희준은 지훈과 주먹다툼을 했다는 소문만 남긴 채 다른 학원으로 가버렸다.

“지훈아. 작년 그때 제일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이 나야. 사람이 다, 때가 있는 거지. 학원에 오래 있는 게 죄니? 아니야. 기죽지 마, 괜찮아. 고민 다 털어놔 봐. 쌤도 공부 오래 했어. 컵밥 이모들 중에 신미은 모르는 사람 없어.”

“아이, 됐어요. …쌤.” 지훈은 괜스레 그때의 일을 꺼내는 미은이 얄미웠다. 그러다 미은의 말에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가끔 본인의 수험 생활 일화를 자조적으로 얘기하며 수험생들을 다독였다. 수험 기간이 노인의 소문이 돌던 시기와도 얼추 맞았다. 노인을 알고 있지 않을까?

“쌤 노량진에서 공부했으면, 혹시… 어떤 할아버지 본 적 있어요? 합격…할 거라고 말해주면 진짜 합격한다고…” 지훈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며 말꼬리를 흐렸다.

“할아버지? 음… 어, 있었어. 나 공부할 때 유명했지. 노량진에서 나보다 더 유명했어.”

“진짜요? 진짜 그 할아버지가 말하면 다 합격이고 그랬어요?” 지훈의 말이 빨라졌다.

“그랬었지. 좀 된 이야기인데, 너가 어떻게 알아? 애들이 봤대?”

“뭐… 어쩌다,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도 보기도 했고…” 지훈의 말에 미은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곧이어 그녀의 눈이 찌푸려졌다.

“에이, 참, 쌤도. 그거 때문에 집중 못 하는 건 아니고요. 설마 그럴까 봐요. 내년에 서른이다 보니까 싱숭생숭해서, 그랬나 봐요. 열심히 할게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강 얼버무렸다. 그녀의 증언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웠다.

  “정말 별 일 없는 거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은이 지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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