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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Aug 31. 2023

돌쇠와 마님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보금자리가 어떤지 살펴보니...

돌쇠와 마님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보금자리를 살펴보니...


 단 한 번이라도 주체가 되어 이사를 진행해 봤다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사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특히나 이사하는 주체가 맥시멀리스트인 경우, 그리고 이사 가는 집이 구옥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와중에 꼭대기층일 경우, 거기다 반포장 이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돌쇠와 나는 둘 다 맥시멀리스트라 일반 가정집(4인) 수준의 짐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둘 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기에 ‘이사쯤이야’하는 묘한 근자감이 붙어 반포장 이사를 선택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사를 앞두고 짐을 싸면서도 근자감은 사그라들지를 않아서 ‘이거 오히려 재밌을지도?’하는 그릇된 마음이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듯이 돌쇠는 이때쯤 목발을 짚는 가련한 여인이었는데도 그랬다. 이 가련한 여인은 목발을 짚으면서도 열심히 짐을 쌌다. 마님이 무거운 걸 들어 가져다주면 앉은 체로 으쌰- 하고 받아 척척 짐을 넣었다. 이 가련한 여인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어느 정도였는지 사진을 첨부한다.

그녀는 이렇게 목발을 짚고도 이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사 당일, 마지막으로 집을 넘겨주고 와야 하는 나는 호적메이트와 둘이 살던 집에 남고, 돌쇠는 대출금 때문에 부동산으로 향했다. 짐은? 지원군을 불러 반포장 이사 직원들과 함께 보냈다. 지원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짐과 함께 우리의 <중경삼림> 하우스로 끌려갔다. 정들었던 집을 모두 정리하고서 택시를 타고 넘어와 보니, 우리의 <중경삼림> 하우스의 거실 창은 뜯겨나가 있고 (짐이 들어와야 하니) 낡은 사다리차가 삐삐 소리를 내며 힘겹게 짐을 올리고 있었다. 서둘러 올라가니 반포장 이사 직원들이 사다리차보다도 힘겹게 짐을 욱여넣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지원군은 우리가 정리해 준 도면대로 여기저기 짐을 배치하고 있었다. 곧 대출금을 정리하고 들어온 돌쇠도 합류했다. 중고로 산 거대한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까지 자리를 잡고 반포장 이사 직원들이 어쩐지 우리를 애잔하게 바라보며 철수했고, 친구들 몇이 지원군에 합류하여 짐 정리를 시작했다. 모두들 우리의 짐 규모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어쩌겠나. ‘이것이 다 우리 삶의 무게인 것을.’ 하는 초연한 마음으로 짐정리를 시작했는데, 결국 짐을 다 푸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이에 부동산과 자잘한 시비와 여러 조그마한 돈 문제들이 있었지만 매일매일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돌쇠와 합심해서 해결해 냈다. 이사를 마무리 짓는 데까지 거의 2주~1달 정도가 소요됐던 것 같다. 그래도 친절한 손길들 덕분에 잘 해결할 수 있었고, 돌쇠와 다시는 반포장 이사를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텅텅 비어버린 통장잔고와 늘어난 빚만 가진 체 우리는 새로운 동네와 집에 적응을 시작했다.


 <중경삼림> 하우스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채광이다. 채광이 좋지 않은 집에서 2년을 살았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며 우리 집 채광에 감탄을 하는 삶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돌쇠는 원래도 채광이 좋은 집에 살았어서 그런가 나만큼 감탄하진 않았다.) 선물 받은 화분이 매일마다 무럭무럭 새잎을 돋아내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창이 많아서 맞바람을 칠 수 있기에 환기도 빨리빨리 시킬 수 있고, 시장이 가까워서 식재료들을 싼 값에, 뭐든지 사 먹을 수도 있다. 과일? 그까짓 거 집 나가서 10걸음이면 과일 가게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삶인가. 초등학교가 가까워서 재잘재잘 떠들며 걷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핫한 스팟과 가까우면서도 우리 집 앞은 조용하다는 게 얼마나 메리트인지! 게다가 강아지를 키우는 가구가 얼마나 많은지 길만 나가면 강아지를 만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10분 안에 한강 공원에 도달할 수 있다. 아- 이 얼마나 행복하고 정이 넘치는 동네인가!


 <중경삼림> 하우스의 이웃들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빌라는 각 층에 두 가구씩 살고 있는데, 1층에는 파지를 줍는 할머니와 그 아들이 살고 있다. 두 분은 늘 빌라 뒤에 산더미처럼 파지를 쌓아놓고 앉아서 정리를 하는데,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그곳에 모인다. 두런두런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나는데 은근히 그것도 기분 좋은 생활 소음이라 나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늘 할머니는 마주쳐서 인사를 하곤 했는데, 반갑게 맞아주셔서 집에 오는 기분이 났다. (아쉽게도 지금은 파지 줍는 일을 그만두셔서 그 공간이 주차장이 되었다.) 2층에는 돌쇠와 내가 ‘왕 할머니’라고 부르는 백발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 어찌나 정정하신지 고양이도 기르고 옥상에 텃밭도 가꾸신다. 딱 한 번 우리 집에서 텃밭에 줄 물을 길어가신 적이 있는데, 그러고 몇 주 후에 우리 집 문고리에 상추, 깻잎, 오이고추 등이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걸려있기도 했다. 고양이는 (조금... 마음이 불편하지만) 셀프 산책 고양이인데, 이름은 ‘쭈쭈’로 러시안 블루로 추정된다. 가끔 복도를 돌아다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돌쇠와 내가 귀가할 때쯤 2층 복도에서 자기네 집 문을 쳐다보며 야옹야옹 울면 우리가 할머니를 불러서 집에 넣어주기도 한다. (귀가가 늦으면 왕 할머니가 큰 소리로 ‘쭈쭈야! 쭈쭈야!’하고 부르는데, 금방 금방 소리가 멎는 걸로 봐서는 부르면 집에 들어가는 듯하다.) 애교도 많아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돌쇠만 쭈쭈를 만질 수 있다. 3층에는 음악을 하는 청년들이 살고 있는데 가끔 낮에 노랫소리나 악기소리가 올라올 때가 있다. 밤에는 또 금방 조용해지고 돌쇠도 나도 소음에 별로 민감하지 않아서 나쁘지 않은 생활 소음으로 듣고 있다. 한 번은 돌쇠와 놀러 나가는 길에 형형색색의 가발과 가죽 재킷으로 가히 ‘락스타’를 연상할 만한 옷을 세 명이 쪼르르 입고 올라와 놀란 적도 있다. 와중에 너무나도 조용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기에 우리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나눴다. 1층에 다다라서야 유교국에서는 락스타도 예의바를 수밖에 없구나 하며 웃었다.  두 가구씩 있다면서 왜 한 층에 한 집씩만 소개하느냐고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외의 집들은 잘 마주치질 않는다. 이 세 집의 캐릭터가 너무 뚜렷하기도 하고. 내가 이 캐릭터들로 언젠가 시나리오를 쓰려고도 할 만큼 인상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 집에서 편히 놀다간 이사 초반의 쭈쭈 (저 이런 거 혼자보는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어찌저찌 이사가 마무리될 무렵, 부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랑 아빠랑 너네 집에 하루만 자도 되나?’ 비상이었다. 나는 곧바로 돌쇠의 방으로 향했다. ‘야, 우리 부모님 온다는데 괜찮아?’ 나만 비상이었다. 돌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되지.’ 그렇게 부모님이 오는 날이 정해졌다. 부모님은 부산에서 올라와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강화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 여행 멤버에는 나도, 그리고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돌쇠도 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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