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알바를 해보았어요
뭐랄까, 요즘은 좀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런 중에서도 내게 가장 크게 와닿는 건 결국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일 수밖에 없는데, 요즘 정말 너무 극심하게 불황이다. '일'이랄 게 없다. 요즘 주변 사람들과 연락해 보면 들어갈 만한 프로젝트가 없어서 다 놀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몸 담은 업계는 영상업계인데 내가 주로 일하고 있는 건 영상업 중에서도 영화계라서, 여러분이 언제 영화관을 갔는지를 돌이켜보시면 얼마나 불황인지 아시게 될 것이다. OTT나 드라마계와 병행해서 일할 수 있는 직군들은 또 한창 바쁘긴 하지만, 나와 같이 워크플로우가 달라지는 직군들은 대체로 놀고 있다. 이렇게 작품이 없었던 때가 있었나 돌이켜보면... 이제 성인이 된 지 고작 10년 남짓한 나에게는 첫 불황이고, 30대 초반으로서 한창 몸 값을 높여나갈 때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불안하기만 하다. 오히려 나를 가다듬고 정돈하며 발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찌 됐든 손에 쥐어지는 돈이 점점 줄어드니 미칠 노릇이라고나 할까? 재테크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알바를 해보기로 했다. 근데 보통은 알바는 짧아야 3개월, 길면 1년까지 구하는데 나는 언제 일이 생길지 모르는 프리랜서 아닌가 ^^ 지금이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일이 없어서 어떻게 살지!! 소리 지르고 있어도 또 일이 생기면 몇 개월이고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할텐데 3개월에서 1년까지를 요구하는 알바는 현실성이 너무 없었다. 당연하죠 저 다 할 수 있어요 ^^ 하고 들어갔다가 사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이러며 나오기에는 남의 영업장에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차마 시도해 볼 엄두조차 안 났다. 그리고 또 약간의 TMI를 남발해 보자면... 보통의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카페 알바, 패스트푸드점 알바, 술집이나 식당 서빙 알바 같은 것들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20대 초반엔 과외를 했고, 친구 소개로 나갔던 화장품 매장에서 1년 정도 일한 것 외에 내가 해본 알바라는 건 결국 다 영상업계에 걸쳐있는 일들이어서 (편집 및 CG, 광고 촬영 연출부, 광고/MV 미술팀, 뮤지컬 촬영팀... 등등) '알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체로 떠올리는 일들이 내게는 오히려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당근마켓에 올라오는 단기알바들이었다. 어느 날 집에서 편안히 누워 유튜브를 보다 문득 당근마켓이 떠올랐다. (종종 당근마켓에 올라오는 부동산들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는데, 이 동네에 어디가 비워지고 어디가 새로 들어가는지, 사람들이 찍어 올린 집의 모습은 어떠한지, 매매가나 전세가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보는 게 꽤 재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메인페이지에 '알바' 탭이 있는 것 아닌가? 당근 마켓을 통해 돈을 주고 바퀴벌레 잡아줄 사람을 구한다든가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 걸 뭉쳐서 '알바' 탭을 만들어 놓은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쨌든 당근마켓의 장점은 아무래도 내가 있는 곳을 근거해 주변을 비춰준다는 것 아니겠는가? '알바' 탭에도 가까운 곳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당장 클릭했고, 맨 위에 뜬 글이 하나 있었다. '베이킹 작업 보조 및 포장, 단기 근무자 구합니다.'라는 글이었다. 보조??? 포장???인데 단기??? 보조는 어쨌든 베이킹의 맛이나 품질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그만한 중요한 일을 보조에게 시킬 리 없기에) 포장은 또 미술팀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자신이 있었고, 단기 근무라면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알바가 아닌가! 당장에 눌러보았다. 집에서 10분 이내의 거리였다. 게다가 '모범 구인자'라는 딱지와, 후기도 여러 개 있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일이 쉽고 친절합니다.'라고 남겼다. 3일짜리 단기 알바였고, 할 일에 대한 예시도 설명이 잘 되어있었다. 예를 들면 반죽 및 재료 소분, 포장, 스티커 붙이는 작업 정도의 일이었고 초보자도 할 수 있다고까지 되어있었다. 손이 느리신 분은 힘들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손 하나는 재빠른 스타일이므로 그런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당장에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몇 가지 설명을 적어야 하는데 그냥... 단기로 볼 사람들이라 그런지 줄줄줄 잘 적혔다. 저는 원래 영화 스텝이고요... 불황이고요... 일이 없어 집에서 놀고 싶은데 일을 하고 싶네요... 시급 11,000원의 알바였는데, 하루 4시간 3일이라 132,000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뭐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0원 보단 나으니까! 생계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몇 시간 뒤 사장님이 채팅으로 연락이 오셨다. 출근 가능하신가요? 앗싸~! 물론 가능합니다 ^^라고 보내드렸고, 곧 시간과 일자에 맞춰 매장으로 출근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너무 충동적으로 지원했고 바로 채용되어서 남자친구도 룸메도 몰랐다. 출근하기 전날밤에 그들에게 알려주었고 그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지지해 주었다. 룸메는 일전에 이런 불황에 일이 없을 때 쿠팡 일일 알바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쿠팡가는 것 보다 백배 나을 것 같다며 자기도 다음에 일이 없으면 당근에서 알바를 구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이렇게도 돈이 벌어지더랍니다... 물론 여기에 반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 어려울 땐 이렇게도 알바를 할 수 있더라고요. 특히 프리랜서이신 분들께는 꽤나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단기알바가 항상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종종 올라오는 편이라 한 번씩 확인해 보시는 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을 안 하면 생활패턴이 너무 어그러지는 편이라 (예를 들어 새벽 3~5시에 취침하고 12~15시 사이에 기상을 한다든가^^) 별로 돈이 급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짧게나마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면서 생활패턴을 잡아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출근을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이 맛집이 워낙 많아서... 그냥 동네 장사하는 작은 베이커리일 거라 생각하고 출근한 그곳은 꽤나 이름난 베이커리였고... 분점도 있고 백화점 팝업도 들어가는... 그런 대단한 곳이었다. 나는 정말 작디작은 곳이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으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팝업 기간에 밀려드는 수량을 맞추기 위해 고양이 손이 필요하신 곳이었다. 고양이 손으로 출근한 나는 역시나 주요한 업무에서는 밀려나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아무래도 소문난 베이커리로서 맛과 품질을 보장해야 하기에 생각보다 직원도 많았고 전문적인 인력들이 착착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디저트들의 양이 대단했다. 베이킹의 'ㅂ'도 모르는 나로서는 내가 그냥 친구들과 기분 내며 사 먹던 것들이... 이렇게 카운터의 커튼 하나만 넘으면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노고가 펼쳐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감탄만 하던 중 사장님이 내 앞에 놔주신 것은 그것들을 담을 용기였다. 그리고 가게 이름이 박힌 스티커도. 자, 그걸 붙여주세요. 네! 어렵지 않았다. 사장님은 스티커가 삐뚤게 붙어도 좋으니 대충 중앙쯤에만 붙여달라고 하셨고, 그래 요즘 그런 게 또 맛이지 싶어 열심히 붙였다. 단순노동이라... 사장님이 쑥스러워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오랜만의 단순노동이랄까. 원래는 촬영 준비 단계에서 종이에 스테이플러 찍을 때만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인데...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으니 사장님이 꿀팁을 전수해 주셨고, 그 꿀팁대로 하니 속도가 빠르게 붙었다. 멍 때리며 빠른 속도로 단순노동을 하고 있자니 무아지경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티커 붙이기 너무 좋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용기는 가볍고 스티커가 착 붙는 느낌도 좋고 시간도 잘 가고 잡생각도 안 드는... 매일매일 하고 있자면 돈도 안되고 보람도 딱히 없을 수 있겠으나 3일짜리 단기알바인데 시급이 11,000원이지 않은가. 굉장히 즐거웠다. 한참 붙이고 있으니 누군가 나를 불렀다. 뭔가 대단히 전문적이어보이는 검은색 라텍스 장갑 두 개와 앞치마를 받았다. 그 순간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부엌에 들어가도 되나...? 근데 뭐 고용된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할 순 없으니 씩씩하게 들어갔다. 내 앞에는 거대한 스탠 볼이 놓였다. 그 안에는 휘황찬란한 가루들과 대단한 양의 버터가 들어있었는데 내 역할은 반죽을 하는 거였다. 전문인력이 측량해 준 재료들을 섞기만 하면 된다고? 이거야 말로 책임 없는 어른의 촉감놀이 아닐까? 싶어서 열심히 반죽을 했다. 반죽을 끝내면 또 다른 전문 인력이 와서 오븐 판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볼 하나를 끝내면 다음 볼이 오고, 또 끝내면 다음 볼이 오고... 열심히 반죽을 했다. 반죽이라곤 수제비 반죽밖에 안 해봤는데, 그거랑은 또 느낌이 달랐다. 베이킹 반죽이란 건... 생각보다 열심히 문대야 하구나. 치대고 문대고... 손목이 아파올 때쯤 스티커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함께 부엌에 있는 사람들의 손목도 걱정되었다. 나는... 3일만 하고 돌아가면 이제 다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의 손목은 괜찮을까? 이런 자세로 하루종일 일하면 이 사람들의 허리는 괜찮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쯤 모든 반죽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업무로 버터 자르기를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아니... 내 맘대로 안 잘려요... 얼어있는 버터도 아니었고 푹푹 들어가서 처음에는 오 이것 또한 촉감놀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싶었는데 할수록 버터 크기가 너무 제각각이어서 민망했다. 어쨌든 할당된 버터를 다 자르고, 냉장고에 잘 넣어둔 뒤 첫날 퇴근을 했다. 사장님이 디저트 몇 개를 챙겨주셔서 황송히 받았다. 집에 와서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그 정도면 20,000원은 넘겠다고 해서 또 사장님 걱정이 됐다. 사장님... 이렇게 다 퍼주셔도 되는 걸까? 걱정하다가 그만하기로 했다. 분점이 있고 팝업도 한두 번 들어가신 게 아닌 것 같은데 나 따위가 걱정할 레벨이 아니시다... 싶었다. 그렇게 첫날이 끝났다.
두 번째 날은 좀 더 부엌에 붙어있을 시간이 많았다. (당연히 최애작업인 스티커 작업도 있었다.) 또 멋진 라텍스 장갑과 앞치마와 함께 열심히 반죽을 하고 이번에는 반죽을 측량해서 뭉쳐달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그 멋진 베이킹 저울도 써봤다. 사장님과 직원들과 함께 둘러 서서 열심히 반죽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명절 느낌이 있어서 웃겼다. 그래도 두 번째 봤다고 익숙해져서 그랬나, 사장님과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사장님이 겪은 희한한 일들을 들으며 한참 웃었다. 자영업자들은 어쩜 그렇게 이상한 일을 많이 겪는지! 손님 뒷담 같은 게 아니고 매장 계약건이나 팝업 관련한 일들도 많았다. 사장님이 성격이 정말 좋으셔서 그런지 항상 좋은 분들과 일하시는 것 같았고, 그분들과 관련한 일들도 재밌게 들었다. 그러다가 내 MBTI를 물으셔서 ENTP이라고 했더니 '여기 대단한 사람이 또 있네!' 하셔서 깔깔 웃었다. 왜.. ENTP 착해요..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짧은 가짜 명절을 보내고 다음으로는 통깨그라인더... 그러니까 말하자면 미니 절구 같은 걸 받았다. 재료를 가는 게 업무였는데 진짜 열심히 갈았다. 열심히 한 이유는... 하다 보니 손목이 아니라 팔뚝을 사용해서 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팔뚝 운동? 오히려 좋아! 도 있었고, 여기 이 레이디들이 내가 없을 때 이걸 하느라 손목을 갈지 않았으면 해서... 나야 단기 알바고 모든 업무를 컴퓨터나 아이패드로 보는 직종에 있는데, 이 사람들은 손목이 너무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ㅜ 그냥 짧게 온 내가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해놓고 내가 없을 이후에 조금이라도 이 업무를 덜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나도 돈 받는데!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은가! 그렇게 '진짜 많이 갈았다, 대박'하는 사장님의 따봉을 받으며 두 번째 날도 끝났다.
세 번째 날은 글을 쓰는 오늘이었는데, 오늘도 좋았다. 오늘의 가장 주된 업무는 최애 작업인 스티커였고 ^^~ 둘째 날 많이 갈아둬서 그런지 절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얏호! 용기 한 3~4박스는 해낸 것 같다. 3일 동안. 그리고 파운드 한 조각씩 소분하여 포장하는 작업도 했다. 파운드 한 조각이 생각보다 커서 비닐봉지에 넣는 게 쉽지가 않았는데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금방금방 했더니 '처음 하시는 것치고는 너무 잘하시는데요? 소질이 있으신데...' 하는 칭찬도 들었다. 또 떠먹는 티라미수 위에 초코파우더도 뿌려보았다. 이번에도 아닛! 커튼 뒤에 처음 오신 분 치고는 너무 잘하잖아욧! 하는 레이디의 호들갑을 들었다. 하.. 레이디들이란.. 괜히 퇴근하기 전에 뭐라도 더 하고 싶어서 계속 부엌에서 서성거려서 여러 업무를 받았다. 진짜 눈 잠깐 감았다 떴는데 또 퇴근 시간이 되어서 ㅜㅜ 마지막 퇴근을 했다. 첫날만 해도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고, 사람들도 아... 안녕하세요... 아... 안녕히 가세요... 이런 느낌이었는데 마지막 퇴근길엔 다들 '고생하셨어요~!' 하고 인사해 주어서 뭔가 찔끔.. 아쉬움이 올라오는 기분이 있었다. 뭐 이것도 다 단기여서 드는 기분이겠지만... 단기알바를 혼내가며 제대로 가르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3일 동안 안 혼나고 즐겁게 일한 거겠지 ㅜㅋㅋㅋ 단순업무라 혼낼 것도 없으셨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대단히 잘해서 혼나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이 안 든다. 어쨌든 나도 내 업에 있어서는 누군가를 혼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입장이기에... 그들의 눈에 분명히 부족함이 있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단기 알바로서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감히 기대하며 마지막 퇴근을 했다.
이번 단기알바를 하면서 뭔가 사장님의 이야기를 꽤 많이 듣게 되었다. 사장님의 결혼 여부, 가족관계, 가게의 역사 (짧은 버전), 사장님의 MBTI... 근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대화였다.
사장님: 영화 스텝으로 일하면 재밌어요?
나: 아... 뭐. (재밌긴 한데) 업으로 하다 보면 다 그렇죠.
사장님: 아 진짜요? 나는 아직도 너무 좋은데.
호호 웃으며 한 대화지만, 사장님의 마인드가 너무 멋있었다. 하다 보면 지겨워질 때도 있는데... 그런 때를 의식해서 뭐 다 그렇죠~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때가 있음에도 '너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자신감! 정말 좋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지 않은가. 나도 사실 좋다. 내가 계속 이 업계에 있을 수 있어서, 내가 어떤 작품이든 참여할 수 있어서, 이렇게 일이 없어서 놀 때도 매일매일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싫을 수가. 그럼에도 누군가 내 업에 대해 물을 때, 괜히 너무 철이 없어 보일까 '다 그렇죠.'라고 말해온 나에게 사장님의 답변은 꽤나 충격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말해도 되는구나 싶은 느낌?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내 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영화감독'을 꿈으로 적어 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영화를 전공했고 전공을 잘 살려 일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한 길만 파는 모습이 멋지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냐, 난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잖아.'하고 말을 돌렸다. 이제 진짜 그러지 말아야지. 맞아. 나는 이게 너무 좋거든. 난 이걸 사랑하거든. 이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거든.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근무하는 3일 동안 사장님과 직원 분들이 이 가게를,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잘 보여서, 그들이 너무 반짝거려서 마음이 참 좋았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반짝이는구나 싶어서, 그러면 나도 내 일을 할 때 반짝거리겠구나 싶어서.
글을 쓰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으로서, 진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 전공이었다면 사장님을 밀착취재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봐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푼돈이라도 벌어보고자 (왜냐면 시드머니 마련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이건 재테크에 대한 브런치북이니까^_^) 시작한 알바였는데, 끝에는 돈보다도 더 귀한 걸 얻어온 기분이라 참 좋다. 나의 충동적인 지원에 감사하며... 다음에 또 다른 일도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황에도, 고양이 손이어도, 필요한 곳은 어디든 있구나 싶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사랑하는 이 업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와도 뭐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내가 할 일이 하나밖에 없진 않을 것이다. 부업에 대한 생각도 좀 더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뭐든 경험해봐야 한다는 건가 보다. 경험해서 나쁠 건 웬만하면 잘 없는 것 같다. 도전하기까지의 두려움만 이겨내면 된다. 김연아가 그런 말을 했었다.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막상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게 세상에는 참 많다.
첫걸음을 떼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뛰기 전에 이길 수 없다.
항상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이번에도 괜히 두려워 지원을 포기했다면 멋진 사장님과 사장님의 식구들을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내게 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도전의 기회가 올 때, 꼭 두려움을 넘어보자고.
어쨌든 이번 일로 얻은 값진 132,000원은 얼마는 생계 지원용으로, 또 얼마는 저축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재테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덕분에 이번 두려움을 잘 뛰어넘었다. 불황에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고, 이 마음으로 본업에도 임할 수 있도록 잘 갈고닦아보자. 오늘도 역시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나가 봅시다. 우리 쪼졸이들의 재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