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뿌리, 그 시작점

사랑받고 싶어서 도리어 사랑했던 아이, 진심은 모순을 품고 자란다.

by 빛의 조각


초등학교 시절, 서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서영이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6살에 멈춰있는 그 아이의 시간.

누군가의 도움 없인 일상적인 생활조차 버거워 보였다.



운명처럼

나와 서영이는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았다.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됐고

서영이를 잘 챙겨주고 도와주던 나는

착한 아이로 칭찬받으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4년 내내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그런 서영이와 '선생님 놀이'를 자주 하곤 했다.

A4용지를 학습지처럼 꾸며서

크레파스로 예쁘게 문제를 만들고,

서영이에게 하나하나 알려줬다.


조금씩 따라오고, 이해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큰 희열을 느꼈고,

‘교육’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가 될 수 있는지

그때 막연하게나마 처음 느꼈다.



그렇게 고학년 내내 서영이를 돌보며

나는 또래보다 조금 일찍

‘사람’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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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고,


솔직히 나는,




그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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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과

애어른의 탈을 벗어던지고

챙김 받고 싶었고 놀고 싶었다.

자유롭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 소녀답게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며 노는 일에 바빠졌다.

서영이가 점점 아파지고 있다는 소식에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서영이는 서영이 엄마의 바람과 달리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장애인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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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은

나에게 큰 혼란을 안겼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곁에 있었더라면...’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사실 서영이를 돌보고 보살폈던 건, 그 아이를 돌보는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좋았던 건데...'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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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겉과 속이 다른 나를, 양가감정의 나를, 한결같지 못한 나를,







철저히 미워했다.

그런 내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에서 한 동아리 선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지야, 우리 교환일기 쓸래?






의외였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다.
내 감정을 적어 내려가는 일,
그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건 처음엔 무척 낯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글을 쓰는 시간들이 내게 작은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모든 걸 잘 보여야 할 것 같은 강박,
한결같아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오해,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론 끊임없이 흔들리던 나.

한 자 한 자 솔직한 고백을 통해

조금씩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시작됐다.


그리고 내 글을 다정하게 읽어주는 그 선배의 태도는
내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려줬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왜 사람에게 끌리는지,
왜 교육이라는 길이 자꾸 눈에 밟히는지, 차차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그 신념 아래

교육자가 되기 위한 순탄치 않았던 가시밭길을 밟아오며

결국,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 자신과 타인과 관계에 흔들리며 아파한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성장시켜줘야 할 선생님인 동시에

여전히 부족하고, 부딪히는 게 많은

모순덩어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

성장할 수 있고.

감정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없음을 알면,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음을 깨달으면,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진심이란 모순을 품고 자란다는 걸.


그렇게,

완전하지 않더라도 빛이 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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