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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Sep 15. 2023

정신의학과에서 뒤바뀐 환자

신체화 증상, 저항을 멈추다

공황장애


이제 가을이 되었는지 제법 선선해져 잠을 청하기 좋은 밤이었다.

나는 잠을 자려고 침대를 뒤척이던 중 갑작스레 엄습해 오는 공포에 눈을 번쩍 떴다.

꿈을 꾼 것도 아니었고, 악몽을 꾼 기억도 없었다.


갑자기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심장이 철렁하고 아래로 내려앉았다.

가슴 중앙에서 싸늘한 느낌이 양쪽 팔로 퍼져나갔고,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가슴을 부여잡았다.

입은 벌어진 채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고 공포의 아득함에 눈이 크게 뚫렸다.

심장이 멎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은 나에게 신경안정제를 하나 주며 말했다.

패닉 어택¹이 온 것 같아. 증상이 가볍지가 않다. 병원에 가자 “




정신의학과 의사는 나에게 잠을 자다가 공황발작이 올 정도면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같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덤덤하게 최근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작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환자가 되셨고,

아버지를 간병하다 허리 디스크로 몇 개월째 24시간 방사통²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편이 개업을 했다가 실패하여 민사 소송 중이고,

월세집은 더 이상 계약연장이 어려워 나와야 하는 상황인데,

시집식구들의 무리한 금전 요구로 인한 갈등도 힘듭니다‘


옆에 있는 남편을 힐끗 보게 되었다.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까지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남편 건강에 대한 걱정도 덧 붙여야 할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딸꾹질이 멎지를 않더니 이제는 다리가 뻣뻣해지는 것 같다는 남편도 걱정이에요.”


남편도 정신의학과 의사와 본인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의사는 나에게 약처방을 해주며 남편에게도 말을 건넸다.

“선생님도 약을 하나 추천해 드릴게요. 최근에 나온 약인데 특히 신체화 증상에 효과가 좋다고 하니 한번 드셔보세요.”


정신의학과에서는 남편의 다리 강직을 심리적 요인에 의한 신체화 증후군³으로 진단했다.


나는 신경안정제⁴의 도움으로 일상의 불편함을 상당 부분 해소 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추천받은 약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심리적인 거라니 좀 기다려보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우린 그렇게 남편의 증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정작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야 했던 것은 연달아 터졌던 불행한 사건과 경제적 위기들이었다.

공황발작까지 유발할 정도로 심각하게 여겨졌던 우릴 둘러싼 당시 상황은,

얼마든지 회복하거나 복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항상 한계 상황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한계상황을 지나면 또 다른 한계상황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바람에 의해 파도가 치다가도 태풍에 의해 풍랑이 일기도 하고, 때로는 땅의 기반이 뒤틀리며 거대한 해일이나 쓰나미에 집어삼켜지기도 한다.


우리가 만난 크고 작은 시련들은 모두 내삶의 일부이다.

누구도 그것을 피하거나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에 저항하고 무모하게 맞서 싸우곤 한다.


내 마음의 병은,

삶이란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무모하게 저항하다 입은 상처였다.


파도를 막을 수 없다면,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무지해서 용감히 맞서다 숨 쉴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내리 꽂혔다.




원인 없이 계속되던 기침, 멈추지 않던 딸꾹질, 그렇게 하나씩 나타나는 남편의 이상 증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해일의 시작이었다.


목디스크


"왼쪽 다리가 좀 끌리는 것 같아. 나도 어디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닌지 사진을 좀 찍어봐야겠어"

남편은 다리의 강직으로 인해 보행이 불편해 지자 일하던 병원에서 머리, 경추, 척추 MRI 사진을 찍었다.

경추 부위에 약간의 디스크가 돌출된 것이 발견됐다.


"지난번 주짓수하다가 목이 꺾여서 디스크가 생긴 건가?"

남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들썩 거렸다.


목디스크는 보통 팔에 문제가 생기거나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남편의 증상과는 맞지 않았다.


남편은 지금 증상들이 목디스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이런 케이스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친한 신경외과 후배에게 사진을 보냈다


후배도 저 정도 돌출은 대한민국 성인 대부분 있다며 남편이 느끼는 증상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근데 형, 뇌간에 저 하얀 건 뭐야?"

점이라고 하기에도 아주 애매한 무언가가 보이긴 했다.


"어? 진짜 저기 뭐가 있긴 하네"


우리는 대학병원 교수인 친정오빠를 비롯해 동료의사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다들 싸구려 MRI에 찍힌 아티팩트⁵(실제 병변이 아닌 영상의 기계적 결함으로 생긴 노이즈)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모양도 종양 같이 않았고 설사 종양이라 하더라고 해당 부위는 매우 치명적인 뇌간의 연수⁶ 부위였다.

연수는 혈압, 심장박동과 호흡등의 자율 신경을 제어하는데 그 부분에 병이 생기면 왼발이 끌리는 정도의 '가벼운 증상'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을 들고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로 갔다.


교수는 MRI 척수 시작 부분, 뇌와 척수가 연결되는 부분을 보고 말했다.

"여기 이 부분,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우리 과에서 볼 건 아니니까 신경과나 재활의학과 같은 데 가봐"




저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한계가 저 멀리서 세를 키우며 맹렬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모양새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님이 분명했다.

그저 받아들이고 더 이상 붙들 수 없는 것들을 차례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린 삼남매를 꼭 끌어안고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겼다.


내가 저항을 멈추자,

신기하게도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때때로 한계가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1. 패닉 어택 Panic Attack - 공황발작

어떤 외부의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과 같은 다양한 신체 증상과 동반하여 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 공황 발작은 본래 외부의 위협에 반응하기 위한 뇌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공황 장애 환자의 경우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부적절하게 반응하여 발작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경보기가 잘못 작동하여 아무 때나 경보를 울려서 지장을 초래하는 것과 비슷하다.


2. 방사통 radiating pain

한 지점에서 시작된 통증이 주변의 넓은 부위로 퍼지는 통증.

주로 목이나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로 인해 발생하는데 내 경우는 좌골신경통(Sciatica라고 부르며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흔하게 발생한다.)으로, 수개월을 70킬로가 넘는 전신마비환자(아버지)를 침상에서 휠체어로 옮기다 보니 어느 순간 허리통증과 함께 좌측 다리 저림과 통증, 발가락 힘 빠짐과 마비증상까지 악화 됐다. 하지만 주변 의사들의 권유로 따로 수술은 하지 않았고 보전치료(치료라는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극도로 허리를 안 쓰는 생활을 하는 것이니...)만으로 일상생활은 가능해졌다. 기상통(아침 기상 시 느껴지는 통증)은 5년 정도 이어졌던 것 같고 아직도 조심하며 살고 있다.


3. 신체화증후군 Somatization

다양한 신체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하지만 실제 내과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신체질환이 아닌 심리적 요인이나 갈등에 의하여 나타난 것으로 판단되는 증후군


4. 신경안정제

내가 복용한 신경안정제는 주로 두 가지였는데 정신의학과에서 평범하게 처방하는 약들이다.


졸로푸트(화이자) : 항우울제. SSRI(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세로토닌이 신경말단에서 재흡수되지 않도록 막아 세로토닌(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름)의 총량을 유지시킨다.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등에 처방된다. 반감기(몸에 작용하고 남는 시간)가 24시간이 넘으므로 복용의 시작과 단약은 1주일 이상을 두고 조절해야 한다.


자낙스(화이자 현재 국내에서는 다른 제약회사로 바뀜) : 항불안제. Benzodiazepine계열의 약으로 중추신경의 벤조디아제핀 수용체와 결합하여 GABA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강화시킨다.진정효과가 있어 흥분과 불안을 가라앉혀준다. 반감기가 짧아 단기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우황청심환 대용으로 간편히 사용가능하다.


심발타(릴리) : 항우울제. SNRI(세로토닌 노르에페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Cymbalta는 한국발음이 꼭 만병통치약 같지만 다국적제약사 릴리의 항우울제다. 신경병증성 통증에도 처방된다고 하는데 남편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5. 아티팩트 Artifact

CT나 MRI촬영 시 실제로는 병변(diseased area)이 없지만  영상 상 표현된 것을 말한다. 기계 결함등의 원인들로 발생한다.


6. 뇌간의 연수 Medualla Oblongata (숨골)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부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흡중추등 내장기능의 자율반사중추, 연하중추, 발음중추, 발한중추 등이 있다. 약 2.5 cm 되는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생체의 자동제어중추로서 생명의 유지에 직접 관여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혹시나 검색으로 이 글이 노출 됐을 때 보다 정확한 정보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히 적어봅니다. 가끔씩 예전에 제가 정보를 구했던, 남편과 비슷한 케이스가 없는지 찾아 다녔던, 여러 환우회 카페에 남긴 저의 글들에, 남편이 어떻게 됬는지, 어떤 병으로 확진을 받았는지 묻는 글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실망시켜드릴까 차마 답글을 남기지 못한 글들이 많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치료방법을 찾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적은 약들은 오리지널 약들입니다. 보통은 위 약들의 제네릭(Generic drug 카피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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