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 ALS, PLS, MND, NMO
응급실 당직근무를 마치고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던 남편이 거실로 걸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잠도 깨울 겸 내가 물 한잔을 건네자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카락들을 누르며 앉아 물을 벌컥벌컥 받아 마셨다.
”호프만싸인¹이 내손에 나타나다니! “
소파에 앉아 있던 남편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남편은 양손의 손가락들을 번갈아 보며 차례대로 튕겨 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다가가 불안해하는 그의 손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어 물어보았다..
“손가락이 아파?”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옆의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남편은 내 손가략을 잡더니 똑같이 튕겼다. 내 손가락들이 아무 움직임이 없는것을 확인하며 이게 정상반응이라고 했다.
운동신경원병(Motor neuron’s disease)²계열 환자에게 보이는 증상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은 혼자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 신경 중에 다른 신경은 멀쩡한데 운동신경만 문제가 생기는 병이야.
인턴 때 동료들이랑 호프만 반사¹가 있는 환자가 와서 서로 신기해하며 봤는데, 이걸 내 손가락으로 보네"
납편은 나에게 '이 손가락을 튕겨 봐라 이쪽 발바닥을 세게 쳐봐라' 하며 자기 몸의 손과 발의 반사반응을 보며 계속 헛웃음을 지었다.
남편이 팔과 다리를 두드리며 반사반응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남편의 표정 반응을 보고 있었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같이 웃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남편은 시니컬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통증이나 감각이상이 동반되거든. 보통은 아파서 병원에 오지. 허리디스크나 목디스크처럼. 그런데 이렇게 운동신경만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그리고 대부분 원인불명이고, 원인을 모르니 치료도 안 돼서 계속 진행되지."
남편은 그것의 대표적인 병이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측성 측색경화증³이라고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둣 눈만 꿈뻑꿈뻑 뜨고 있자 남편은 드디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루게릭병이라고 하지”
남편은 덤덤히 말했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의 엄지와 검지 사이 손 근육이 파인 것 같지는 않은지,
종아리 근육이 빠진 것 같지는 않은지 반복해서 물었다.
다리 쪽 근육을 가리키며 혹시 움찔움찔하는 게 보이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모두 루게릭 의심 증상들이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남편은 근육이 탁탁 튀는 느낌이 난다며 신경과를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남편의 동기 중 신경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오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근전도 검사 ⁹, 유발전위 검사¹⁰, 척수액 검사¹¹, 혈액 검사, 유전자검사¹², CT 스캔, MRI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검사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환자가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면 가능성 있는 병들을 모두 머리에 떠올린다.
그리고 추가 질문을 해가며 진단 가능한 병의 범위를 좁혀 나간다.
의사가 어느 정도 심증이 서면, 그때 확진을 위한 추가 검사를 주문한다.
당뇨병이 확실하다고 의심되면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할 것이고 골절이나 종양같다면 의심 부위 영상 촬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상황은 지금 까지 만난 어떤 의사도 남편과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검사 결과지와 영상자료들을 자세히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결과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PLS(루게릭병인 ALS 계열의 병)⁴, 척수염⁵이나 뇌간교종⁶ (만약 영상의 흰점이 아티팩트가 아니라면)등등을 의심해 보며 우리는 일단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¹³를 하기로 했다.
염증이면 효과가 있을 터였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증상이 좋아지는것 같았다.
우리는 병원 계단을 올라가보기도 하고 병원 복도에서 뜀박질도 해가며 기뻐했다.
그러나 곧 강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추가로 이뮤노글로블린주사를 4일 더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우리는 루게릭병의 최고 명의로 알려진 한양대병원 김교수님을 찾아갔다.
남편의 모교이자 인턴시절 남편을 귀여워해줬던 교수님이었다.
처음엔 목발로 인사드렸지만 휠체어를 타고 재방문한 남편을 보자 교수님도 고개를 내저으셨다.
수많은 ALS³환자를 봐온 김교수님은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하셨다.
"ALS³는 아니야. MND(운동신경원병)¹² 쪽은 아닐세"
어떤 병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해주는 것도 모든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특정 병을 확실히 배제시켜주는⁸것도 확진만큼이나 중요하다.
교수님은 스테로이드를 계속 쓸 수는 없으니 일단 근이완제¹⁴를 좀 더 강하게 써보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남편이 추가로 호소하는 배뇨 장애(급박뇨¹⁵)에 도움이 되는 약도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모두 치료제는 아니었다.
증상을 조금 완화시켜 줄 뿐.
나는 존경하는 교수님이 진단을 미루며 악화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보는지 이해가 안 돼서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남편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원래 신경과 쪽 병들이 다 그래.
진단 가능한 모든 병들이 차례로 배제(Rule out)⁸되고 마지막에 남는 것들을 주로 신경과에서 다뤄.
내 경우는 검사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소견이 없거든.
일단 저 하얀 부분이 조직검사⁷가 되면 좋겠지만 저 부분은 건들면 바로 죽는 부위라 그걸 할 수는 없어. 만약 종양이나 염증이 있다면 척수액 검사에서 뭐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깨끗하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는지 남편은 껄껄 웃으며 농담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의사들 사이에선 신경과를 괴질을 보는 곳이라고 불러. 다른 과에서 자기들이 모르는 괴질환자가 오면 다들 신경과로 보내지. 내가 괴질 환자가 되다니!"
그렇게 병명을 찾아 세브란스병원, 차병원, 한양대병원,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의 명의들을 만났다.
신경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분비내과, 재활의학과에서 검사를 하며 병명도 모른 채 1년을 보냈다.
그동안 남편은 다리는 물론이고 양팔도 들지 못하게 되었다.
희망은 목마른 자가 마시는 오줌물과 같았다. 간절히 갈증을 해소하려 하지만, 마실수록 몸과 마음은 더욱 무너졌다. 결국 남는 건 깊어진 좌절과 자신을 탓하는 쓰라림뿐이었다.
루게릭이나 뇌종양이라고 확진 되면 오히려 편했을 터였다.
루게릭 전문가는 루게릭이 아니라고 하고,
뇌종양 전문가는 뇌종양 가능성이 낮다고 하는 상황은 마치,
‘그런 치명적인 병일리 없어. 뭔지 모르겠지만 좀 있으면 다시 좋아질 거야 ‘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병명을 모른 채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희망으로 헛배를 채우고 있었다.
‘이러다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는 함께 헛소리도 짓거렸다. 요 며칠 사이 혼자 목발 짚던 사람이 휠체어 신세가 되고 더 이상 젓가락질이 안돼 포크를 사용할 정도로 나빠진 현실에 곧 곤두박질 치길 반복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자 행복이라고 믿지만, 사실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때로는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큰 안식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불행하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희망’일지도 모른다.
*최근엔 세포단위 치료나 유전자 분석 기술이 급속도로 좋아지면서 신경과 쪽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습니다.
*혹시나 검색으로 이 글이 노출 됐을 때 보다 정확한 정보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히 적어봅니다. 가끔씩 예전에 제가 정보를 구했던, 남편과 비슷한 케이스가 없는지 찾아 다녔던, 여러 환우회 카페에 남긴 저의 글들에, 남편이 어떻게 됬는지, 어떤 병으로 확진을 받았는지 묻는 글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실망시켜드릴까 차마 답글을 남기지 못한 글들이 많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치료방법을 찾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1. 호프만 반사(Hoffmannsign)
운동신경 중 상위운동신경(Upper motor neuron, 위로 올라가는 운동신경)에 이상이 있을 때 관찰되는 반사이다. 뇌간의 연수(Brain Stem의 Medulla Oblongata)에 손상이 생기면 뇌로 올라가야 할 신호가 그 지점에서 끊겨 다시 아래로 내려가 항진반응(ex. 떨림, 튕김)이 보이게 된다.
*남편의 경우 호프만 반사와 바빈스키반사(다리 쪽에 관찰되는 상위운동신경 이상 반응)가 모두 관찰됐으며 강직(spastic)이 심했다. 남편의 MRI에서 보이는 그 병변의 위치와 맞아떨어지는 증상이었다.
2. 운동신경원병(Motor neuron’s disease)
신경세포 중 운동신경세포에만 문제가 생기는 질병들이 여기에 분류된다. 보통은 원인미상으로 1~5년에 걸쳐 운동세포만 서서히 죽는 양상을 보인다. 감각에는 이상이 없으며 저림이나 통증도 없다.
3.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측성 측색경화증
운동신경원병(MND) 중 가장 유명한 병으로 루게릭 병이라 불린다.
아래쪽(다리 힘 빠짐)에서 시작되거나 위쪽(발음이 어눌해진다던지, 삼킴 장애가 발행한다던지)에서 시작되어 근육이 모두 소진되며 사지마비나 호흡마비까지 진행된다. 아직까지 원인은 밝혀진 바가 없다.
4. PLS(Primary lateral sclerosis)
ALS와 비슷한 운동신경원병이지만 ALS보다는 증상의 진행 속도가 느리며 주로 뇌의 상위운동신경 쪽에만 영향을 받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강직증상이 심해 근육손실로 인한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ALS보다 나은 편이다.
*남편의 경우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였지만 실제 PLS환자를 본 김승현 교수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의사는 역시 얼마나 많은 환자 케이스를 봤는지가 중요하다.
5. 척수염(myelitis)
신경의 탈수초현상(신경을 전선이라고 비유하면, 전선을 감싸는 막이 벗겨져 신호 전달이 안 되는 현상)으로 인해 통증, 감각이상, 마비 등이 발생하는 병이다. 감염이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자가면역질환으로 분류되는 종류도 있다. 시신경청수염(NMO), 횡단성 척수염 등이 있다. 소아마비도 척수염의 일종이다.
6. 뇌간교종(Brainstem Gliomas)
뇌종양의 일종으로 뇌간이라는 위치에 종양이 있으면 수술로 완전 절제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예후가 불량한 암이다.
*조직검사가 가능한 경우도 있으나 남편의 경우는 불가능했다.
7. 조직검사(Biopsy)
병변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통해 질병을 확진하는 방법. 대부분 악성질환을 확진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8. 배제(Rule out)
의사들이 진단을 내릴 때 여러 개의 질병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해당 질병들을 배제하기 위해 쓰는 개념.
의심되는 질병 앞에 R/O를 붙이면 추적검사를 통해 해당 질병은 배제시키겠다는 의미이다.
즉, 가능성은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뜻.
*남편의 경우 루게릭병, 척수염, 뇌간교종, 림프종, 다발성경화증 등등이 있었다. 결국 저 R/O 중 끝까지 남은 것이 병명이 되었다.
9. 근전도 검사
신경과 근육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기계를 통해 분석해 말초신경 및 근육병변의 이상정도를 파악하는 검사. 보통은 신경의 문제인지, 근육의 문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다.
10. 유발전위 검사(EP검사, Evoked potential 검사)
신경 신호가 말초기관(감각을 받는 부분)에서 중추신경계로 정상적으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하는 검사. 뇌간으로 전달되는 신경계 경로의 이상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 다발성 경화증이나 시신경염 등의 탈수초성 질환등에 적용한다.
11. 척수액 검사
요추부위에 바늘을 삽입한 후 뇌척수액을 빼내는 검사(요추천자). 뇌척수의 염증의 유무나 암의 침범 여부를 확인하고, CT나 MRI 상에서 보이지 않는 출혈을 진단하기 위해 시행한다.
12. 유전자검사
*남편의 경우 혹시나 유전적 희귀병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했으나 이상 소견은 없었다.
13.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Steroid Pulse Therapy)
스테로이드 충격요법이라고 한다. 강력한 항염작용을 자가면역질환이나 염증성 질환에 사용된다.
부작용에 대한 위험으로 장기간 진행 할 수는 없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엄청난 식욕이 생긴다. 대부분 한 달 만에 얼굴이 달덩이가 되는데 ‘문페이스(moon face)’라고 말한다. 목 뒤에 지방이 축적되어 들소의 등처럼 ‘버팔로 험프 buffalo hump)’가 생기기도 한다.
*남편의 경우 3~5일간 하루 1000mg을 정맥으로 투입하기도 하고 경구제로 복용하기도 했다. 복용하는 동안 체중이 늘기도 했지만 심리적증상으로 공격성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14. 근이완제
남편은 주로 바크로펜을 복용했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안 먹으면 더 심해서 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바크로펜 Baclofen 항경직제
뇌와 척수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방출을 감소시켜 근육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신경계 질환으로 인한 골격근의 경직과 근골격계 통증, 경련 및 담 등에 처방된다.
베시케어 Vesicare®
소변을 마렵게 하는 신호를 억제하고 방광의 불수의적인 수축을 감소시킨다.
*남편의 경우 소변통을 차에 휴대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제어가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