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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Sep 22. 2023

사장님! 도와주세요.저 취직해야 됩니다.

40대 중반 경단녀. 전화를 돌리다.


남편은 투병 중에도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불편한 몸으로 꾸역꾸역 일을 나가고 있었지만 이런 악화 추세라면 곧 직장에서 버티기 힘들 터였다.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비가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직장과 고정 수익이 필요했다.




아이가 두 명 있을 때까지 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나는 직장생활을 접고 좀더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셋째 아이까지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가끔은 옛 동료들이 연락을 주곤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급히 일손이 필요할 때면 도움을 청하곤 했다.

뜻이 맞는 분들과 작은 스타트업도 하나 만들었지만, 집안일과 세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찼기에 전적으로 일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집안일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자리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머리에 떠올렸다.

옛 동료들, 협력업체 사장님들, 이전 직장 사장님, 원장님... 몇 되지 않았다.


멘토로 모시고 있는 예전 직장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애들 아빠가 아파요. 저 취직해야 됩니다."


 강사장님은 바로 답해주셨다.

"그래. 일단 빨리 일자리부터 알아봅시다."


강사장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나는 일자리를 구했다.


그 한 달 뒤 남편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마비되는 몸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만큼이나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걱정이 컸을 것을 안다.


남편은 마지막 퇴근길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짐을 챙겨서 나오는 길이라는 남편에게 위로를 건넸다.

"몸도 말을 안 듣는데 일하느라고 고생했어. 이제 좀 쉬어요."


일 년 넘은 투병기간 중,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남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일 더해지는 좌절과 고통스러운 치료에도 덤덤했던 남편이 그날 무너졌다.





나를 덮친 첫 번째 풍랑을 올라타고 떠오르기


우리는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환점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변환점에서 예전에는 시간낭비라고 여겼던 경험이나 허튼짓이였다고 후회하던 시간이, 의외로 유용한 길잡이가 되곤 한다.

'내가 이때 배운 걸 이렇게 써먹다니!' 하며 말이다.




몇년전 남편이 운영하던 병원을 일 년 만에 정리했을 때, 나에게도 나와서 정리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병원을 폐업하고 정리하는 일은 일반 사업장 개폐업과는 다른 까다로운 절차와 업무가 따르기 때문이었다.


마침 근처 병원 원장님이 우리 병원을 인수하겠다시며 찾아왔다. 뜻밖에도 나에게 병원행정과 마케팅 포지션을 제안했지만 나는 남편이 실패한 사업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에 정중히 거절하고 신속하게 인수인계와 개원을 도와드렸다.


원장님은 병원이 자리 잡을 때까지 한 달 만이라도 일을 도와달라고 여러 번 부탁하셨고, 인수인계 후 한 달만 출퇴근하여 근무하기로 했다.


그 한 달이 삼 개월이 되고, 육 개월, 일 년을 지나 3년을 그 병원에서 근무하게 됬다.


나는 그곳에서 마케팅과 병원살림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개원가 비즈니스와 병원의 내부 운영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재취업 면접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뛰어난 것 같았다.


새로운 직장은 큰 규모의 제약회사 계열사로, 나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업무들을 맡게 되었다.


거대한 조직 구조 속에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회사에는 젊고 능력 있는 동료들이 많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그 속에서 적응하느라 발버둥 쳤지만, 힘들어도 멀쩡한척하며 버텨내야했다. 큰 조직의 업무 흐름이 낯설었던 나는, 간단한 기안 작성조차도 쉽지 않았다. 실수투성이였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물어봤다간 나의 허접함이 회사 전체에 들통날 것 같아 혼자 고군분투했다.


매일매일이 도전이었지만 적응기간이 지나자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양한 TFT에 투입되어 신사업 개발과 회사 M&A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여 업무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돌보는 시간도 틈틈이 확보해야 해야 하는 나는, 때때로 새벽에 사무실에 머물며 미친 듯이 일했다.


직장은 마치 전장 같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곳에서 나도 가족의 생계를 걸고 일했다.



직장에서는 단순한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사내 정치와 관계 관리도 필요하다.


40대 중반 여자인 나에게 넥타이부대로 가득한 회사의 사내 정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힘든 순간이 오면 여자화장실 한 칸에 몰래 들어가 혼자 조용히 신경 안정제를 삼켰다. 변기에 앉아 올라오는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내려 보내며 ‘직장에서 눈물을 보이면 남자들은 뒤에서 여자라서 그렇다며 네 머리 위에 유리천장을 쌓아놓을 거야 ‘라는 친구의 말을 상기했다.


회사는 소문이 빠르다.

나는 그런 소문때문에 퇴사한 직원을 대신해 운좋게 취직이 되었다.


내 전임자는 경쟁사에서 스카우트해온 능력자였는데 한 달 만에 퇴사처리됬다고 한다.

누군가 그녀가 몰고 다니던 고급차에 의심을 품어 차량 명의 조회를 했고, 그 차가 경쟁사 임원의 소유로 밝혀지면서 산업 스파이라는 의심이 퍼지자 어느 날 갑자기 안 나왔다고 한다.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직장에서,

나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에게 조차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나의 개인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가, 혹시나 업무적으로 부딪쳤을 때 약점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회사는 우리 가족의 유일한 밥줄이었기에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금요일 아침, 출근준비는 남편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곧장 갈 짐가방을 싸는것으로 시작되었다.

반찬과 간식, 그리고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함께 챙겼다.


짐가방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트렁크에 실어놓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퇴근시간에 회사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차 트렁크에서 짐만 꺼내 조용히 회사를 빠져나왔다. 병원 주차비는 입퇴원시에만 무료였기에, 차는 회사에 두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한 시간 반거리인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주말을 병원에서 남편과 보내고 일요일 밤엔 다시 회사로 돌아와 차를 찾아 집으로 갔다.


그렇게 이틀 만에 집으로 퇴근해 아이들을 챙기고 밀린 집안일을 한 뒤 잠깐 눈을 붙이면 어느새 다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업무상 봐야 할 문서도 많았지만 나는 틈틈이 남편의 증상과 관련된 수많은 글들을 서칭하고 PubMed ¹의 각종 의학논문들을 뒤지며 남편과 비슷한 케이스들을 리뷰했다.


루게릭 환우회, 림프종 환우회, 척수염 환우회, 뇌종양 환우회에 남편과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다니며 정보를 구했다.


내가 적었던 글들, 사람들과 교류한 수많은 댓글들은 여전히 환우회 커뮤니티에 남아있지만, 나는 남편의 경과 진행을 계속 업데이트하지 못했다.


여전히 가끔 내가 적은 글에 댓글이 달리곤 한다.

그때의 내가 그러했듯 ’ 자기 남편과 케이스가 비슷한 것 같다 ‘며 그때 했던 치료들이 도움이 됐는지 묻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기가 조심스럽다. 지금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남긴 글과 댓글들을 읽으면 그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 척수염 카페에 적어놓은 글 中 -

일 년째 계속 나빠만 지는 남편을 지켜보고 있어요.

카페회원님들의 조언데로 외래 날짜까지 안 기다리고 서둘러 지난주에 입원해서 이제 열흘 됐어요.

열흘동안 피검사 두 번, 뇌척수액검사 두 번, MRI, FDG PET-CT² 까지 찍었어요.

이유는 8월에 스테로이드 치료하고, 맙테라 ³도 한 달 간격으로 2회 맞았고 경구 스테로이드도 상당량 먹고 있어도 차도가 없고 계속 나빠진다면 종양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피검사, 뇌척수액검사에서는 여전히 항체는 안 나왔고(올리고클로날밴드 ⁴양성)
MRI상 병변은 약간 줄었으나 살짝 도드라진 부분도 있다고 나왔어요. 영상의학과 판독은 탈수초성⁵ NMOSD⁶ 나 림포종⁷ 가능성 있다고 나왔어요.

MRI상 지난 4개월 동안 병변이 커졌으면 어떻게 하나 가슴 졸였는데(커졌으면 종양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다행히 커지진 않았더라고요.

워낙 조직검사가 안 되는 부위이기에 PET CT 찍었어요.
이것도 다행히 정상이라고 나왔고요.

뇌척수액 다시 뽑아 원심분리기 돌려서 종양세포 나오는지 확인하겠다고 하는데 이것도 꽝이면 demyelinating disease⁵에 준한 치료 하겠다고 하시네요.

교수님이 혈장교환술⁸ 6회와 맙테라³ 계획하고 계시더라고요.



우리 초딩 1학년 막둥이 아들은 자기 생일 케잌 불 끄며 소원으로 아빠가 다시 건강해지는 것을 빌었다네요.

저는 아이 셋 직장맘이라 평일에는 남편을 돌볼 수가 없어요.

회사에서 MRI, PET-CT 각종 검사한다는 문자 받으면 떨리는 가슴 진정시키려고 신경인정제 먹고 일하곤 했어요.

24일 퇴근하고 회사에서 바로 간병하러 왔어요. 25일 크리스마스에 밤늦게 집에 가니 여섯 개의 까만 눈동자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선물사 달라고 말도 못 꺼네는 아이들한테 케익을 사갔더니 뚝딱 다 먹어치우네요.

오늘 회사 종무식하고 또 바로 병원으로 왔어요.

1월 2일 출근 전까지 남편 돌봐주려고요.

아이들하고는 화상통화했는데 셋이니까 지들끼리 있어도 좀 덜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치료는 못하고 검사만 하고 있지만 혈장교환술⁸ 효과가 있어서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https://m.cafe.daum.net/80209530/T3pL/4758?svc=cafeapp


열심히 혼자 고군분투하던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 지금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회사의 주니어급 친구들이 열심히 하겠다거나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본인이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는 의욕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을 때가 많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


우리는 열심히 한다.



1. PubMed

미국 국립 보건원(NIH) 산하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NLM)에서 운영하고 있는 바이오 의학 및 생명 공학 분야 데이터베이스로, 30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다.


2. FDG PET-CT

FDG(F-18 fluorodeoxyglucose)를 환자에게 주입 후 FDG가 암세포에 축적되는 것을 추적해 암세포의 위치와 크기를 촬영. 암의 유무, 전이여부를 파악하는데 활용한다.


3. 맙테라(Mabthera, 한국로슈)  

성분명 리툭시맙 Rituximab. 면역세포인 B 세포에 결합하도록 만든 약물.

-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면역세포에 붙어 항체역할을 함으로써 체내 면역시스템이 B세포를 공격하게 유도해 면역억제제로 사용되고,

-  면역세포 자체가가 돌연변이현상으로 암세포로 된 경우(ex. 림프종) 표적항암제 역할을 한다.

*남편은 자가면역에 의한 뇌척수염이거나 만약 암이면 덜 공격적인 암인 림프종 일 수 있다고 하여 사용했다.신약들을 가격이 매우 비싸다.


4. 올리고클로날밴드(Oligoclonal bands, OCB)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환자의 뇌척수액 내 올리고클로날 밴드 양성 확률은 90%라고 한다.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자가면역이 몸의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탈수초성 질환이긴 하지만 다발성경화증은 몸 전체에 병변이 분포한다는 점이 남편과 맞지 않았다.


5. 탈수초성(demyelinating disease)

신경의 탈수초현상(신경을 전선이라고 비유하면, 전선을 감싸는 막이 벗겨져 신호 전달이 안 되는 현상)으로 신경막이 손상되어 신경전달에 문제가 되는 현상. 횡단성 척수염, 시신경척수염, 다발성경화증 등등이 포함된다.


6. 시신경 척수염 스펙트럼 장애(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s: NMOSD)  

자신의 면역이 시신경, 척수, 뇌를 포함한 중추 신경을 공격하여 발생하는 병.


7. 림포종 lymphoma

면역세포가 암세포 변이해 증식하는 종양으로 비교적 항암제에 잘 들어 관해(암 완치) 율이 높다.


8. 혈장교환술 Plasma exchange

혈장 안에 있는 자가면역항체, 면역복합체, 독성 물질 등을 제거함과 동시에 새로운 혈장단백(알부민 등)을 보충하는 치료.

*남편의 경우 1회는 무리 없이 진행하였으나 2회 차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부종)으로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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