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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Mar 19. 2020

악인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내가 악인이라 생각하는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상대방을 미워할 때 드는 비용을 내가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악인의 상당수는 굳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여 미워할 가치가 없다.
  내 돈을 떼먹은 사람은 알고 보면 돈이 없어서 그랬을 경우도 많다. 또한 사는 모습을 냉정히 보면 앞으로도 계속 가족들과 지인들의 폐를 끼치면서 가련한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사기를 쳤거나 치려한 사람의 상당수는 그것 말고는 먹고살 길이 없는 생계형 사기꾼이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것 말고는 자존감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하찮은 인간 들이다.  


  내가 확실한 대응을 했을 때 그들은 궁극적으로(내가 만난 모든 경우)는 나의 동정심을 구걸하게 된다.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동정을 베풀지 결정하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베풀건 베풀지 않건 간에 그 이전에 신경 쓸 가치가 없다.


 이때 값싼 동정을 베풀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내게 헌신밖에 줄 것이 없는 사람의 헌신에는 감사는 하되, 거기에 큰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진짜 헌신이라면 상대는 대가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자주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은 헌신을 주며 대가를 기대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동정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내 동정을 구하는 것만이 방법인 자에게 동정을 해봐야 상대는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가 끔 뼛속까지 악인이라 느껴지는 자들도 있다. 그 수에 있어서는 전자에 비할바 없이 적다. 악인으로서 탁월한 자들이다. 그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증오로 말미암아 그런자와의 조우를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탁월하게 나쁜자들을 만나면 악행과는 별도로 뭔가 배울 구석이 없는가를 보게 된다. 대부분 그들은 부지런하거나, 판단이 빠르기도 하고, 타인의 강약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냉정히 말해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악인 저지른 행위 보다, 오히려 그런 악인이 내게 결여된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더 부당하게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의 악행에 대해서는 끝까지 죄를 물어야겠지만 그의 행위 과정에서 내가 뭔가를 배울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내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이다.

  

 또한 그렇게 탁월한 악의와 능력을 함께 갖춘 악인들은 아주 자주, 혼자서는 맞설 수 없다.
  

  사악하고 타인을 이용하는 고위 정치가처럼, 어마어마한 악의와 그걸 실현할 힘을 동시에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우리는 연대해서 맞서야만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그의 악행도, 우리의 대응도 사회적으로만 이해되고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오히려 더욱, 우리는 악인에 대한 우리 자신의 분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자를 연대를 통해 단죄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떠한 사람이건 간에 미워하는 상대에 대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떤 원인이 있었는지 살펴보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머리뿐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사기꾼의 길을 간 기업가들의 경우 그는 아마도 능력과 가진 것은 없는데 거기에 대한 반작용인지 욕망이 큰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만화 공장에서 찍어내는 비현실적인 기업만화를 보고 사업에 대해 허황된 비전을 가진, 그저 정신이 덜 성숙한 인간일 수도 있다.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아마도 유아기의 잘못된 보육이 나 선천적인 문제, 또는 화학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전두엽에 상처를 입은 사람일 수 있다. 악인의 입장에서,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내면적인 요인을 살펴보고 그걸 이해하는 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된다.

   필요하다면 그런 사람들에게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좋다.


  내가 그 정도의 마음을 갖게 되면, 나 자신을 갉아먹는 소모적인 후회나 자책 따위에서 자유로와 질뿐 아니라, 정말 필요하다면, 상대를 활용할 수도, 내가 원할 때 그의 약점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악인이라 부르는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의 좋은 점은, 이 과정에서 내가 그 사람을 악인이라 정의하고 미워하는 것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내고 있거나, 그저 있을 수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 과정에서 상대를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있는 지도, 최악의 경우 어쩌면 나는 그저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항상 명심할 것은 화를 낼 필요가 사실 별로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화난 척'을 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화를 내 봐야 내 혈압만 올라가니, 화가 났다면 빨리 그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화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다. 상대에게 대처하거나 그를 제압하는 데 있어 화내거나 미워하는 일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악인이라는 확신이 들면, 이 사회 안에서 거기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도록 이 사회를 도와야 한다. 개인적인 복수보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 그걸 개인적인 복수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증오로 인해 나 자신을 상처 입히고, 오히려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걸 피해야 한다. 성인군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대응에 수단이라는 사실은,  타인에게 공허한 호의를 요구하는, 내 것이 아닌 도덕률을 그저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정말로 폭력을 휘두르고 싶다면,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에 평생을 낭비하는 것보다 정말로 저질러 버리고 그 대가를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나은 일일 수도 있다. 냉정함은 그 대가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생각할 여유를 줄 것이고 상대에 대한 이해는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전쟁이 나면 그 기회를 활용하는 수밖에. 화를 낼 시간에 그를 제압할 방법과 수단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화는 가라앉게 된다. 가장 나쁜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앞에서 감정만 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나 개인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확신을 내면화하는데도 오랜 시간과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악인에게 입은 피해 자체 보다도, 그런 가치 없는 대상과 엮였기 때문에 치러야 했던 대가가 훨씬 더 컸다는 사실이 이런 반성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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