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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Jul 28. 2021

금메달 같은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2021  올림픽 68kg 이하 여성부 은메달리스트 이다빈 


올림픽을 별로 열심히 보고 있지 않지만(이정도로 놀랍게 관심없는 올림픽은 처음이다.) 이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든다. 이번 올림픽 우리나라 태권도 선수들의 최고 수확인 이다빈 선수가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엄지를 들어보이는 장면이다.      

 이미 이 나라의 상당수 사람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딴 금메달이 몇개인지에 큰 관심이 없다. 

공식적으로 올림픽에선 국가별 등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젠 다들 알고 있다. 


한때 우리가 올림픽이 열리면 매일 조간신문과 저녁뉴스에 나오던 그 등수라는건 인구가 많고 경제적 여유가 많은 나라가 당연히 1등을 하는 바보같은 기준 아닌가? 그런건 우리가 개도국일 때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사람들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국가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등수를 억지로 나누기 위해 만든 기준도 불건전하기 짝이없다. 

금메달 1개딴 나라가 은매달 10개 딴 나라보다 더 등수가 높다니, 바보같은 체계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금메달까지 땄다면 그건 개인의 영광이고 축하할 일이다.

그 선수에겐 개인적으로 축하를 보낸다만 딱 거기까지다.      


그리고 아직도 나오는 뉴스중에 하나는 금메달은 못따서 태권도 종주국의 체면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태권도라는 운동의 ‘종주국’이라는 체면을 굳이 메달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 퍼졌다면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심판들의 조작으로 억지메달을 따서 체면치레를 하는 것 보다는, 태권도 말고는 참가할 운동이 없는 제3세계 국가들이 태권도를 통해 메달에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게 태권도 라는 운동 자체를 위해서도 더더욱 좋은 일이다.     


'태권도는 우리것' 이라는 생각도 큰 의미가 없다. 

태권도의 기원이 고구려의 수박에 이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는 태권도의 성립 과정에서부터 나왔지만 전부 근거없는 이야기고 사실 태권도는 대한민국에서 현대에 만들어진 무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주로 송도관 가라데 계열이었던 주요 도장들이 (택견과의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은게, 태권도 정립 과정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청도관과 무덕관의 관장이 택견을 배웠던 사람들이다.) 정부주도로 태권도의 이름으로 모였고 그게 태권도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 태권도가 일본것이냐? 하면 그것도 웃기는 말이다.      


일단 가라데 자체가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다.

가라데는 1879년까지 독립국가였었던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무술로, 근원을 따지자면 중국의 권법에 그 기원이 있다. 17세기 일본 사쓰마 번은 유구국을 침략하고, 그들에게 검을 포함한 무기를 금지한다. 공수도가 검에 맞서는 무술이라는 개념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에 맞섰던 유구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왔다는 의미로 唐手라 불리던 이 무술은 중일전쟁 이후 空手로 명칭이 바뀐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수라는 말도 살아남았고, 특히 광복이후 한국에서는 당수라는 명칭을 더 자주 쓰게된다. (심지어 아직도 미국에는 남아있다. 중국기원의 오키나와 무술을 일본에서 배운 한국인들이 만들어 미국에 남아있는 무술이다)     


 태권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도올 김용옥의 괴작인 태권도의 기철학적 구성원리라는 책에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있다. 광복 후 당수도 시범을 보던 이승만은 그 모습이 어렸을 때 보던 택견과 비슷했던지 ‘태껸이구만’ 이란 말을 했고 그 이후로 택견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름 만으로 어색한 한자인 跆拳 이라는 이름이 붙게된다. 이 이름은 원래 무도인이 아닌 군인출신이었던 최홍의의 작품으로, 그는 나중에 ITF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그 총재가 된다. 


주먹 타격을 허용하는 ITF 태권도는 그 개념상 K-1 의 시작이 된 일본의 극진가라데와 대단히 유사하고, 실제로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재일교포 최배달(오오야마 마쓰다쓰)는 생전에 ITF와 극진 가라데와의 통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실제 태권도라는 비록 이름을 따왔을 망정, 운동이 자리잡는 공식적인 과정은 진짜 전통무술 및 놀이였던, 그러나 태권도 성립과정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던 택견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태권도가 발차기를 중요시 하는 운동이 된 것은 택견의 영향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다. 무술이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은 상호모방과 상호작용을 통한 개선이다. 


  묘하게도 한국에서는 발차기가 강조된 형태가 되는 것은 발기술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전통무예( 및 놀이)택견의 영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자로 쓰면 똑같이 合氣道이지만 지금은 확실히 다른 무술이 되어버린 아이키도와 합기도도 그렇다. 아이키도에는 발차기가 거의 없지만, 합기도에서는 발차기의 종류가 태권도 보다도 더 다채롭다. 


 이렇게, 무술의 ‘순수한’ 기원은 의미가 없고, ‘종주국’ 이란 개념도 우스운 것이다. 많은 이들이 즐기며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훌륭한 운동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종주국이 메달을 많이 따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배울수 있고, 공정한 대회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이 스포츠맨쉽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권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금메달을 정치적 도구로 소비하지 않고, 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스포츠맨쉽을 인정해줄 수 있는 정치제도에서 가능하다. 전두환때 열린 88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못따서 따서 죄송하다고 인터뷰하며 우는 은메달리스트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건 예전의 일이고,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벗어났으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바로 이 사진속의 미소가 그 어떤 금메달 보다 가치있는 이유다.  


이다빈 선수,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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