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현자 또또 보아라

2023년 3월 20일 (월) 오후 8:00

by all humamwrites


엄마에게


화요일까지는 날씨가 계속 안 좋았는데 이제는 날이 개고 온도도 높아진 것 같아. 드디어 봄이 오려나 보다. 밤에 장 보러 나가며 패딩을 입었는데 약간 덥더라고. 원래는 살짝 떨면서 갔을 텐데.




이번 주 초에는 계속 비가 오다 말다 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우산을 거의 안 쓰고 다녀. 유럽인들이 우산을 잘 안 쓴다는 건 알았지만 어린애들도 그럴 줄은 몰라서 신기했어.


같이 있던 라트비아 친구한테 너희 나라도 잘 안 쓰냐니까 맞다던데. 왜 그러는지는 자기들도 모르는 듯. 그런데 비가 장대비가 아닌 보슬비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 비 맞는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드는데 나중에 보면 옷이 다 젖어있어.


내가 그걸 왜 아냐면 나도 진정한 유러피안이 되기 위해서 가방 안에 우산이 있는데도 안 쓰고 다녔거든. 우산을 들지 않으니까 손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어서 손이 시리지 않더라.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좋은 점이 없는 것 같아.




이 라트비아 친구는 나랑 플랫(공용 공간)도, 독일어 반도 같아서 이 한 달간 자주 보고 있어. 라트비아어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고유명사를 포함한 모든 명사가 문장에 따라 여덟 가지 형태로 바뀐다는데. 우리나라의 동사 어미가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고 납득하긴 했다만 여전히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자주 보는 친구들은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해주고 싶어서 간단한 말을 물어보고 다니고 있거든. 안녕이나 고마워 같은 거. 근데 워낙 다양해서 쉽지 않네.




독일어 수업 옆자리에 앉는 친구 A는 우간다에서 왔어. 근데 우간다는 영어도 공용어지만 부족마다 또 다르잖아. ‘제와리코’랑 ‘카마호와’라는 말도 배웠는데 그게 정확히 어디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발음을 다시 찾아보려고 해도 정확히 어떤 언어인지 모르니까 검색할 수가 없어서 그냥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말하는 중이야.


얼마 전에는 또 음식 얘기하고 있었는데 거기는 바나나를 요리해서 먹는대. 처음에는 종이 다른 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우리가 먹는 그 바나나가 덜 익은 초록색 상태일 때는 요리해서 먹나 봐.


과일 하니까 생각났는데 참외는 우리나라만 먹나 봐. 번역도 오리엔탈 멜론이나 코리안 멜론으로밖에 안 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는 c인데 우리 학교 화학과라고 했던 한 살 어린 동생이야. 엄청 귀여운데 누가 자기를 보고 귀엽다고 하면 자기는 귀여운 게 아니라 용맹한 거라고 답변해. 저 말 한마디로 자기가 얼마나 깜찍한 애인지 어필하는 똑똑한 애지.


c랑 나는 독일어 수업이 다른 반인데, 알고 보니까 우리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치시는 분이더라고. c네 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대책 없이 가르쳐서 따라가기가 어려운가 봐. 그래서 영어로 된 독일어 교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수요일에는 서점에 가기로 했어.




그날은 시내 나가는 김에 학식 대신 시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거든. c랑 일본인 친구 M이랑 처음으로 독일식 외식을 도전했는데 맛있었어. 납작한 돈가스 같은 슈니첼이랑, 감자튀김이랑, 흑맥주. 맥주가 정말 괜찮았어. 흑맥주치고 좀 가벼웠는데 음식이랑 잘 어울렸거든.


관광객들이 찾기보다는 정말 지역 주민이 찾을 듯한 느낌이 드는 외관이라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거나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양이 많았는데 천천히 얘기하며 먹다 보니까 다 먹어버려서 배가 터질 것 같았어.




그리고 서점에 가서 구경을 한참 했지. 2층짜리 큰 서점이었는데 언어 분야에는 한국어 교재도 있어서 신기했어. 다른 데는 잠깐 구경하고 나는 바로 영어책 코너에서 한참 있었어. 82년생 김지영도 있고 같은 작가 신작도 있더라. 아쉽지만 한국 작가 책은 그 두 권밖에 못 찾았어.


지난번 파티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랑 디스토피아 소설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말했던 책이 있길래 그거랑 헤밍웨이 단편선을 데려왔어. 영어로 쓰인 책을 영어로 사니 번역의 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더군. 번역의 질을 이제 내가 결정한다는 게 문제지만. 최소한 탓할 사람은 없겠지.


그리고 서가에 종종 메모지가 붙어 있어. 점원들이 직접 책을 추천하는 멘트인 것 같은데, 손 글씨는 번역기가 인식을 잘 못해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나중에 독일어를 좀 더 알게 되면 그때는 참고할 수 있겠지. 시내 나간 김에 커다란 마트까지 가느라 밖을 한참 돌아다녔더니 엄청 피곤했는데 날씨 좋아 힘들지 않았다.




이번 주말은 하루 종일 쉬다가 저녁에만 친구들을 잠깐 만나면서 여유롭게 보냈어. 한국인 7명, 일본 친구 M, 홍콩 친구 Z, 이렇게 자주 얼굴을 보거든.


토요일에는 기숙사 주방에서 새벽까지 놀았고, 일요일에는 오코노미야끼와 김치찌개, 볶음밥을 해 먹었어. 나는 김치찌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었어. 다시 독일에서 살아갈 힘이 생긴 것 같아.


오코노미야끼도 원래 좋아하는 만큼 정말 맛있었어. 나도 양배추를 썰어서 계란 넣고 야매로 해 먹곤 하는데 그래도 M이 해준 게 더 맛있더라(사실 당연하지). 후식으로 불닭볶음면을 먹었는데 그거랑도 잘 어울렸고.


나는 내가 요리해서 내가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남한테 내 요리를 먹일 자신은 없어서 요리는 하지 않고 대신 식재료를 보태고 설거지를 했어. 설거지 양이 많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여기 싱크대랑 배수구가 너무 불편하게 생겨서 오래 걸렸어. 타자를 치는 지금도 손이 버석하군. 조금 이따 씻고 핸드크림 바를 거야.




왜 이렇게 음식 얘기밖에 없지? 어쨌든 잘 먹고 다닌다는 뜻이야. 여기서 먹는 모든 음식이 짜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음모가 있는 것 같아. 음식이 짜고 물이 무료로 주어지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음료를 찾게 되는 거지. 소비자를 맥주로 유도하는 식품 업계와 음료 업계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독일 맥주가 유명한 것도 소비자 농락으로 봐야.




아빠 출근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첫 출근이 두근거리지 않았다니 실망이야.


하도 낮잠을 많이 자서 밤에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자러 간다. 안녕.


엄마 딸 지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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