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 울란바토르… 아쉬웠던 국립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여행 1년 뒤인 2001년 8월 7일 14시.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직전 여행까지는 김포국제공항을 이용했지만, 4개월 전 인천공항이 개항한 터였다. 국제선치고는 작은 비행기였다.
3시간 30분을 비행해서 16번째 나라 몽골(Mongolia)의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에 도착했다. 17시 30분이었다. 서머타임으로 우리나라와 시차가 없었다.
고민 없이 공항을 나오는데, 키릴문자가 보인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이어 새삼 확인한 키릴 형제의 위대함.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에도 이들의 동상이 있다. 단, 몽골어는 키릴문자만 사용할 뿐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였고, 최근엔 전통문자 활성화를 위해 13세기 칭기즈칸이 위구르문자를 개량해서 도입한 몽골 비치그(Mongol bichig)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울란바토르는 북위 47.9°(서울 37.6°)에 해발 1350m로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1월 평균 기온 –21.6도로 모스크바나 남시베리아보다 춥다. 8월 초에 한국의 초가을 날씨였으나 생각보다는 나았다.
도착 직후 한인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보통 여행 초반에 선택하지 않는 메뉴였다. 점심을 한국에서 먹고 왔으니 감흥이 있을 리 없다. 맛도, 뭐 따로 말하지 않겠다.
몽골은 면적 156만5116km²으로 세계에서 19번째로 넓은 나라다. 그런데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351만명으로 세계 133위다. 우리나라 지자체로 보면 부산광역시(340만명)보다 조금 많다. 출생률은 기관에 따라, 2.86, 3.5, 1.9선으로 다양한데, 대체출산율은 유지한다는 평가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0.76, 0.9, 1.09로 세계 200여 나라 중 바닥이다. 목록에서 찾기는 쉽다.
여행 초반에 쇼핑하러 갔다가 가이드의 꾐에 빠져서 자이승 전승 기념비(Zaisan Memorial)를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몽골군과 소련군을 기리는 기념비로 생각보다 계단이 많아서 급히 정상에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몽골-소련 간 우정을 상징하는 벽화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고,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울란바토르 전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울란바토르 3일차엔 몽골 불간(Bulgan)에 체류하는 후배가 16시간 기차를 달려 우리 일행을 만나러 왔다. 반가움도 잠시, 6시간 만에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금방 돌아갈 줄은 몰랐다. 6시간의 만남을 위해 왕복 32시간을 소모한 셈이다.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다음날 고아원 아이들이 묵고 있는 캠프를 향했다. 언뜻 보기에 초원 한복판이라 환경이 좋았고, 조립식건물도 깔끔했다. 다만 아이들의 허름한 복장은 괜히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아동용 의류박스를 전달했는데, 잘 차려입은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예쁜 옷들을 챙긴다. 속상했지만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비슷했을 것이다.
오전에 비가 개이면서 선명한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몽골어로 한국을 뜻하는 말이 ‘솔롱고스(Solongos 무지개)’다. 이걸 ‘무지개의 나라’로 해석하는 사례가 있는데, 사실무근이다. 흥을 깨고 싶진 않지만, 몽골제국 당시 솔롱고스는 몽골 왼편의 적대세력, 즉 오랑캐를 지칭하는 단어였고, 몽골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남은 오랑캐인 고려를 지칭한 것으로 분석한다.
아이들과 오후 내내 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연령별로 모임을 진행했는데 사람을 그리워한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호응이 좋았다. 야간 프로그램까지 진행했다. 아이들은 답례로 다음날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춤과 음악을 연주해주기도 했다. 또 애틋하다.
또 하루가 지나고 몽골 최고 명소 테를지(Terlji Park)를 찾았다.
울란바토르 도심에서 3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테를지는 199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중생대 화강암지대 위에 바위가 솟아있고,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넓게 트인 초원지대에 띄엄띄엄 눈에 띄는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Ger)와 말을 보고 있으면 가슴까지 탁 트인다.
전세버스로 공원 입구를 통과해서 30분을 더 들어가니 테를지마을이 나온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투울강이 불었다. 교량이 없는 길이었는지, 버스가 수심이 얕은 쪽을 건너는데, 강 중간에 멈춘 트럭이 있다. 버스로 끌고, 비를 맞으며 트럭 뒤편에서 밀었더니 한여름에 한기가 느껴진다. 비를 피해 게르에 들어가서 불을 피웠다. 금방 따뜻해진다.
오후가 되자 비는 거짓말처럼 갰다.
쏠롱고스까지 떠오른 테를지에서 말을 타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칭기즈칸과 당대의 명재상 야율초재(耶律楚材)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야율초재는 장수가 아니었고, 활동무대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원이었다. 그러나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재미있는 법. 이곳은 몽골제국을 잉태한 초원이었고, 말을 달릴 수 있는 곳이었다.
예전 제주도에서 걷는 말을 자극해서 잠깐 달려본 적이 있었다. 이번엔 좀 더 잘 달려보고 싶었는데, 웬걸. 이놈의 말이 장수의 마음을 모르는 척 천천히 걷기만 한다. 궁둥이를 때려보고, 옆구리를 툭툭 찼지만 신경도 안 쓴다. 기싸움을 한다더니 장수를 무시하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초원이 아닌 산으로 간다. 어~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운전기능을 상실한 터였다.
자율주행모드. 단, 목적지 입력은 안 되는? 배도 산으로 가는데, 말이 대수일까 싶고,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목이 달아난 김유신 장군의 용마가 떠올랐으나 감히 장군을 흉내 낼 수는 없다. 미아가 될까 걱정했지만, 장수의 무능 탓은 아니고, 마부가 사람은 몰라도 말은 챙기겠지. 마음 편하게 먹고, 결국 예정에 없던 언덕을 올랐다. 아무도 없다. 속이 뻥~ 뚫린다.
달리지 않으니 오히려 테를지의 웅장한 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알고 보니 명마였다.
코라즘제국과 중원을 점령한 칭기즈칸과 오고타이칸에게 “제국은 말을 타고 건설할 수 있지만, 말 위에서 통치할 수 없다”며 법치를 강조한 야율초재를 떠올렸다. 혼자 감상에 젖었는데, 어느새 찾아온 마부가 웃으면서 뭐라고 하더니 말을 끌고 내려간다. 이놈, 마부 말은 잘 듣는다.
테를지의 볼거리는 누가 뭐래도 자연 그대로의 경관이다. 특히 거북바위(Turtle rock)가 유명해서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인근에 게르가 여럿 있었고, 실물 크기 공룡조형물들이 많이 설치돼 있었다. 조형물에 대한 별도 안내문은 없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기공룡과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약간 경사가 있는 넓은 초원에서는 사진을 연출하기도 했다.
여행 막판에 울란바토로 중심부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을 찾았다.
생각만큼 아기자기하지는 않고, 아직 준비 중인 듯한 느낌이다. 바로 옆에 있는 국립민족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전날 테를지에서 느끼지 못한 구체적인 유적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3개 층 10개 전시실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13세기와 14세기 유적이 있는 3층 몽골제국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칭기즈칸과 셋째 아들이자 2대 칸 오고타이, 5대 칸으로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의 그림과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칭기즈칸이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깃발로 사용했다는 ‘Peace banner’와 ‘Black banner’가 눈에 띄었고, 몽골제국의 비화가 담긴 원조비사(元朝秘史), 몇 편의 편지, 투구와 신발, 활과 화살 등이 있었지만, 다른 국립박물관에 비하면 조금 아쉬웠다.
높이 40m의 ‘세계 최대 기마상’ 칭기즈칸 동상이 2008년 울란바토르 외곽에 완공됐다. 당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대형 기마상을 본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기억의 오류인가 싶다. 13~14세기 역사 위주로 다루는 국립 칭기즈칸 박물관은 2022년 말 수흐바타르 광장 근처, 이태준 선생 기념관은 2025년 자이승 전망대 맞은편에 개관했다.
어느새 24년이 흘렀다. 몽골국립박물관에는 볼만한 역사 유물들이 좀 늘었을까.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전년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놓친 칭기즈칸과 야율초재를 그 여행에서도 제대로 만나지는 못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대부분 서른을 넘겼을 그 고아원 꼬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다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PS. 몽골의 공식국호는 Republic of Mongolia다. 몽골(Mongol)은 ‘용감한’의 뜻을 지녔고, 몽고(蒙古)는 말 그대로 ‘입다’ ‘덮어씌우다’는 의미의 몽(蒙)과 ‘옛’ 고(古)가 합친 말이다. 오랜 기간 몽골에 시달려온 중국인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 ‘몽’은 무지몽매(無知蒙昧)에 쓰이는 ‘우매할 몽’이다. 그래서인지 몽골인은 ‘몽고’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굳이 몽고라고 불렀던 국가는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 정도로 알려졌다. 중국은 여전히 내몽골을 네이멍구(内蒙古)로 부르는 등 베트남과 더불어 기존 한자 발음을 따른다. 몽골은 크게 외몽골(몽골공화국)과 내몽골(중국 자치주)로 나뉜 분단국가지만, 분단 기간이 길어서인지 민족적인 친근감이나 통일에 대한 열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칭기즈칸 다음으로 주목 받는 담딘 수흐바타르(Дамдины Сүхбаатар)는 1921년 인민의용군을 조직해서 스스로 총사령관에 오른 혁명영웅이다. 국경 인근에서 중국군을 격파하고, 러시아 적군(赤軍)의 지원으로 울란바토르까지 진격해서 러시아 백군(白軍)을 축출한 뒤 그해 7월 10일 몽골 독립을 선포했다. 1893년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나 1923년 30세에 결핵으로 죽었다.
[울란바토르 MTA] 수흐바타르 광장(Sukhbaatar Square), 몽골 국립박물관(Mongolia National Museum), 간단 테그치늘렌 사원(Gandantegchenling Monastery), 자이승 전망대(Zaisan Memorial), 이태준 선생 기념관, 처이진 라마 사원 박물관(Choijin Lama Temple Museum), 칭기즈칸 동상(Chinggis Khan Statue Complex), 국립 칭기즈칸 국립박물관
[고르히-테를지국립공원 MTA] 거북바위(Melkhii Khad, Turtle Rock), 아리야발 사원(Aryabal Meditation Temple), 트래킹, 승마-게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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