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 안의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학교 1년 선배가 있었다. 고등학교는 경기도 수원으로 진학하였다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다. 반듯한 외모에 공부도 잘했고 특히 축구를 잘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으니 탁구도 어느 정도 잘 쳤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선배였고 소년이 형에게 내려받아서 입은 대마지 천으로 만든 교복과 비교되는 선경 스마트 교복을 다려 입을 정도로 멋을 부려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선배였다.
난로가에는 방석이 깔린 1인 의자에는 할머니가 손을 비비면서 온기를 누리고 옆에 긴 의자 제일 끝에 소녀가 있었는데 선뜻 곁에 앉기가 어색하고 부끄러웠는지 사람들은 바로 옆 한 칸을 비워 놓고서 앉아 있었다. 그 빈자리를 서서 바라보니 가위바위보로 이기는 자가 한 칸씩 옮겨가는 왕놀이처럼 여겨져 웃음이 나기도 한 순간 선배가 소녀 옆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앉으면서 말을 건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먼저 저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숫기도 없고 용기도 없어 머뭇거리다가 상대의 선수에 당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돼서 들은 소리였지만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라고 하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리인가 보다. 뭔가 빼앗긴 기분이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은 여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무기력증이었다.
무슨 얘기를 했을까? 소녀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뭐라고 대꾸를 하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무기력증에 이어 질투와 열등감으로 스스로에게 화난 시간이 흐른다. 탁구대에서 토닥토닥 네트를 오가는 공소리 마저 귀를 찢는 소음으로 들리고 탁구칠 마음이 사라져서 탁구장을 빠져나왔다.
방학이라고 늦잠 잔다고 나무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아침을 먹으라는 아줌마의 나지막한 소리에 잠을 깼다. 평상시엔 누우면 바로 잠이 들었는데 왜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뤘는지 모르겠다.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서 뒷산 공원까지 가볍게 뛰면서 저 멀리 보이는 섬 사이 바다를 보며 라켓으로 빈 스윙을 하면서 아침을 열었었는데 밤에 늦게 잠이 든 만큼 일어나는 시간도 길어진 것 같다.
오늘은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소녀에게 말을 걸어보고 얘기도 나누고 해야지 하는 각오를 하고서 오후에 탁구장으로 갔다. ‘내가 제일 처음 보고 큐미라는 이름도 먼저 알았는데 그 선배는 이름도 모를걸?’ 소녀를 내가 먼저 알았다는 것이 모를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여 손에 힘을 주어 탁구장 문을 열었다.
소녀는 보이지가 않고 여직원만 동네 청년과 노닥거리고 있다. 위로 한참 형인 사람이 나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한다. 시간이 되면 나타나겠지 하면서 형과 스트로크 랠리를 하면서 식당에서 들어오는 문만 바라보는데 야속하게 시간만 흘러간다.
동네 형과 한 게임 21점 나기에서 10점을 접어주고 3전 2승 게임을 마친 후 낮인지 밤인지 분간도 안 되는 실내 탁구장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 반이다. 오늘은 안 나오려나 보다 하고 나가려는 순간 소녀가 탁구장으로 들어온다.
“원준이 있었구나 나 오늘 어디 갔는지 알아?”
“어디 갔는데?”
본의 아니게 퉁명스러워진 것은 반가움과 서운함이 겹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소녀는 말투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 그 오빠랑 청미 제과점에 가서 단팥죽도 먹고 크로켓도 먹고 주스도 마셨어"
'그 오빠..................'
소녀는 시골에서 며칠이 무료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바닷가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도 겨울철에는 마땅히 놀러 갈 곳이 없다. 어른들이 챙겨서 놀러 다니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끼리끼리 모여서 따뜻한 아랫목을 덮은 이불속에 발을 넣고서 함께 놀 친구도 없으니 심심함을 달래줄 누군가는 필요했을 것인데 선배가 그 역할을 해줬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몹시 불쾌했다.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소녀가 일부러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졌지만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생각으로 그 선배가 “넌 이런 거 해줄 수 있어?” 하면서 나의 능력의 부족함을 비웃는 듯한 형상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1과 중 3은 겨우 1년 차이지만 제과점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보며 금전적으로도 그렇고 어른스럽게 생각되는 그 선배와 사회에서 신분의 격차가 있는 거처럼 느껴지면서 어쩌면 나의 소중한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개인적으로 용돈을 받는 것은 명절 외에는 없었다. 그러므로 주머니에 비상금이 있을 리가 없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학용품을 산다거나 운동화바닥이 닳아서 물이 들어올 만큼 해졌을 때 신발을 사달라고 했다. 상점에서 과자가 정말 먹고 싶으면 구박받을 것을 각오하고 “엄마 나 이십 원 만~” 하면서 타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소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날이었다.
어린 시절에 가끔씩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끈기 부족이다. 집이 읍내 밖에 있어 학교까지 걸어서 달려서 허벅지가 굵어진 애들과 운동회날 기를 쓰고 달려도 따라갈 수가 없을 때, 암기로만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에 부딪힐 때 등등 그때처럼 내가 소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오늘이 그랬고 기다렸던 대가가 짜릿한 아픔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탁구장에 있을 수가 없어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이 순간 소년에게 위안이 되는 거라고는 비애감에 젖어 나오는 욕밖에 없었다. ‘나쁜 새키 니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