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는 유명한 붕어빵 집이 있었다. 풀빵이라고도 하는데 밀가루 반죽을 묽게 해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몰라도 용식이네 풀빵 가게는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건물(천막)로 지어졌다. 안에는 용식이 어머니가 둥그런 붕어빵 회전 틀을 장악하듯이 앉아 있었고 좁고 긴 나무 의자가 ㄷ자로 놓여 사람들이 마주 보며 앉아서 차례대로 붕어빵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용식이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이 묻은 노란 주전자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은 ㄱ자로 꺾인 두꺼운 철사로 만든 갈고리를 쥐고서 붕어 모양의 틀을 뒤집고 열면서 빵이 다 익었나 하고 얌전하게 누워있는 붕어의 배를 갈고리로 콕 찍어 눌러서 밀가루 반죽이 새어 나오면 다시 엎어서 회전을 시킨다. 다 익은 붕어빵은 갈고리로 찍어 내듯이 뭍으로 내보내고 빈자리는 헝겊 뭉치에 식용기름을 발라서 닦아낸 다음 빈 붕어빵 틀에 밀가루 반죽을 반을 채운 다음 달짝지근한 팥을 떼어서 얹힌 후 그 위로 다시 반죽을 부어 채워 넣었다.
백 원에 다섯 개를 주는 붕어빵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항상 만원이었고 사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시골에서 한 끼 대용으로도 되고 출출할 때 간식으로도 별미였다.
‘나는 붕어빵이 너무 맛있는데 서울에서 온 큐미도 좋아할까?...’
당시에는 화폐가치가 높았고, 지금은 500원짜리도 동전이지만 십 원짜리 지폐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평소 용돈이 필요 없었던 소년에게 갑자기 돈을 확보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금액을 떠나서 쓸 데가 확실해야 하는데 돈을 달라고 하면 곧바로 “뭐 할라고 돈이 필요하냐?”라고 할 것이고 “빵 사 먹을라고" 머뭇거리는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마솥에서 긁어놓은 깐밥(누룽지) 소쿠리에 담아 놨으니 그거 먹으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된통 한 소리 듣고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돈을 어떻게 구했는지 뚜렷한 기억은 없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할머니에게 탔는지 삼촌 애인이었던 예비 숙모에게 애걸을 했는지 몰라도 어머니는 분명 아니었다. 지폐 한 장을 손에 쥐니 뛸 듯이 기뻤다. 혹여 잃어버릴까 봐 바지 주머니 깊숙이 넣고서 점심시간에 바쁜 식당을 도와줬다.
겨울철 완도는 메뚜기 한철처럼 바다와 육지가 바쁘게 돌아간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김과 미역을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막일 수준의 힘든 작업으로 수확을 하고 가공공장이 있는 육지로 가져온다.
어민들의 점심으로 기름이 살짝 뜬 뜨끈한 국물의 곰탕은 맛도 기막히게 좋았지만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하고 온몸의 피로가 풀린 듯한다고 하여 점심때가 되면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카운터에 앉아서 계산을 할 때 그분들의 흡족해하는 얼굴을 보면 마치 곰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쁜 만큼 시간도 어찌나 빨리 갔는지 벌써 오후 2시 반을 넘었다. 나 역시 점심으로 곰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서 라켓을 들고 탁구장이 아닌 용식이네 붕어빵 집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작은 천막은 아닌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비좁게 보이고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서 붕어빵을 주문했다. 십여 분이 흘렀을까 종이 봉지에 따끈한 붕어빵이 꼬리를 포개고서 담아져 있다. ‘야호~’ 얼른 가자. 탁구장으로 향한 달음박질이 여름에 소년체전 예선전에 출전했던 육상부보다 발이 더 빠르다.
오후의 탁구장엔 평일이어서 그런지 탁구대 두 대는 비어있었다. 긴 의자에는 아는 동네 형이 들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보더니 대뜸 붕어빵인 줄 알고서 하나를 달라고 한다. 대략 난감한 상황에 주기는 싫었지만 쪼잔하게 보일까 봐 봉투에서 조금 쳐진 하나를 주고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의미로 봉투 입구를 단단히 말아버렸다.
빵을 담은 봉투는 습기가 생겨 안에 붕어빵은 바삭했던 것이 사라지고 빵이 작아진 듯 눅눅해지기 시작하여 매일 이 시간이면 나오는 소녀를 기다리는 마음이 평소보다 초조해진다. ‘나올 때가 됐는데... 허 참... 나올 때가 됐는데...’
다른 날과는 달리 탁구장 정문이 열리면서 소녀가 들어온다. 아마 큰아빠께서 반공연맹 완도지부장을 맡아서 일하고 계시는데 그곳이 공원이 있는 산 중턱에 자리하여 바람도 쐬고 구경도 시켜줄 겸 같이 있다 내려왔나 보다. 차고 맑은 공기를 마셨는지 한껏 상기된 얼굴이 또 다른 예쁜 모습으로 다가와서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훔치듯이 살피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큐미야 춥지 너 주려고 이것 사 왔어” 입구가 말린 봉투를 트니 붕어빵이 나온다. 갓 구워서 나온 빵이 맛있는데 시들해진 상태라서 약간의 염려와 함께 붕어빵을 소녀에게 권한다.
“이거 먹어볼래?”
“뭔데?”
“응 붕어빵이야 뭐 제과점 빵보다는 맛이 없을 수도 있어”
“꼬리가 더 맛있다고 가르쳐 주자 소녀는 종이를 찢듯이 꼬리부터 잘라서 한 입 먹는다”
“와... 이거 맛있다 제과점 빵보다 맛있어”
“힛~ 거짓말 아냐?”
“아니야 정말이야 제과점 빵은 첨엔 맛있었지만 나중엔 너무 달아서 별루였어”
별로였다고 끝을 살짝 올리는 서울 말투의 억양이 소년의 귀를 녹여버렸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약속이나 한 듯이 소년과 소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그 오빠 오면 또 갈 거잖아” 괜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이젠 안 갈 거야”
안 간다고 하니 반색하여 묻는 소년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왜?”
“자꾸 이상한 말도 하고 그래서 안 갈 거야”
‘이상한 말? 사귀자고 했을까? 아니면 어른 흉내를 냈을까?’ 뭔가 부담을 줬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분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붕어빵이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선배와 보냈던 시간이 거북스럽거나 불편한 것만은 사실 같았다. 뜬금없이 소년의 신발을 쳐다보면서 “난 그냥 네가 편해 원준아”라고 하면서 이름 끝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 탁구 칠까?”가 바로 뛰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