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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인 물 한 잔이 건네는 위로

by 코니

햇살이 서서히 거실로 파고드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가스 불 위에선 옥수수, 결명자, 둥굴레등을 품은 주전자가 요란스레 김을 뿜어대고 있다. 곧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이다. 라디오에선 이 아침과 참 잘 어울리는 평온한 클래식 음악이 내 감성을 자극한다. 혼자 식탁에 앉아 물이 좀 더 끓기를 기다리며 얼마 전 책 속에서 보았던 한 문구를 떠올린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그래서 가끔씩 찾아오는 큰 행복보다 일상에서 맞이하는 소소한 행복 여러 번이 더 중요하단다. 그렇담 지금 이 풍경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이 나에겐 바로 그 작은 행복 중 하나 일 것이다.




며칠 전까진 아침에 눈을 뜨면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숲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 어느새 만 5년이 지났다. 이젠 제법 습관화되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하지만 요즘은 브런치 연재가 좀 빠듯하다 싶으면 산을 찾는 대신 노트북을 켜고 식탁에 앉는다. 갈수록 글 쓰는 속도는 늦어지고 머리는 당최 돌아가지 않아 큰 일이다. 뻔히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분수에 맞지 않는 연재라는 약속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비까지 내린 지난주엔 산을 거의 찾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형 인간이라 밤보단 이 시간에 글을 쓰는 게 더 낫긴 하다.



집중해서 지금부터 글을 쓰겠다 작정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편안한 마음과 함께 뭔가 쓰고 싶은 욕구가 필요하다. 하다못해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구비되고 나면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식탁으로 가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그 옆엔 언제나 따뜻한 차 한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들어도 가슴에 쿵하고 내려앉는 떨림이 흔적을 감췄다. 처음엔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아련하게 사라지는 그 느낌이 내게 작은 행복감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마지막으로 인지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작별 인사도 없이 갱년기에 빈 방을 내주고는 내 곁을 떠나버렸다. 덕분에 몇 해전까지만 해도 감성이라면 누구 못지않았건만 요즘은 나날이 딱딱해져 가고 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선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점점 굳어가는 내 가슴을 녹일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마다하지 않을 지경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글을 쓰다 막힐 때면 손이 저절로 찻잔을 향한다. 홀짝홀짝 한 모금씩 마셔가며 딱딱해진 내 마음을 다시 몰랑몰랑하게 애써 주물러 놓는다. 중요한 건 반드시 따뜻한 차여야 한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더 좋다. 식어버린 차는 내 마음을 녹이지 못한다. 한잔이 두 잔이 되고 곧 석 잔이 된다.



글을 쓸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워낙 차를 좋아해 다양한 종류를 집에 갖춰 놓고 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는 그 어느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꼭 빈 속에 마시는 커피 같은 느낌이랄까. 손이 멈칫한다는 건 몸에 그리 좋지 않음이 분명하다. 임신인지도 몰랐던 임신 초기에 커피 귀신인 내가 이상하게 커피가 당기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꽤 어리둥절했었는데 나중에 임신 사실을 알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내 몸을 믿기로 했다.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차들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마침 냉장고 속 물통이 비어 있길래 얼른 주전자에 물을 받아 재료들을 넣고 끓인다. 2리터는 족히 넘는 주전자이기에 끓이고 우려내는데 30분가량 소요된다.



가족 모두 생수보단 끓인 물을 좋아해 물통이 비워지기 전 부지런히 끓여 채워 넣는다. 물론 이젠 식구라 해도 남편과 나 둘 뿐이지만. 아이들은 세상에서 우리 집 물이 제일 맛있다 했다. 자취를 하던 큰애는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냉장고 속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이 맛이 그리웠다 했다. 딸애는 학교에서 물을 나눠 마신 친구들이 꼭 맛있다는 얘기를 한다 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충분히 우려내니 페트병에 담겨 판매되는 곡물차와는 맛이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맛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은 나이기에 결혼 후 단 한 번도 주전자를 놀린 적이 없다.



그동안 재료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단순히 더 맛있을 거란 생각에 몇 해 전까진 메밀을 사서 직접 프라이팬에 볶아 넣었다. 씻어 물기를 빼고 볶는 일이 다소 성가셨는데 이젠 그 수고에서 벗어났다. 누군가 메밀은 차가운 성분이라 속이 냉한 나와 아이들에겐 그리 좋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제야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냉모밀이 떠올랐다. 그 후 메밀차는 일절 마시지 않는다. 계절 한정판 재료이긴 하나 여름철엔 옥수수수염도 같이 넣고 끓인다. 마트에서 제철 옥수수가 모습을 비출 때면 껍질은 벗겨내고 가져오지만 수염은 꼭 챙겨 온다. 소쿠리에 옥수수수염을 펼쳐 놓고 베란다에서 잘 말린 후 여름내 요긴하게 사용한다. 사실 맛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성이 더 들어갔으니 분명 뭔가 차이는 있을게다.



불을 약하게 하고 재료들을 우려내는 동안 너무나 다정하고 소박한 냄새가 날 설레게 만든다. 잠시 후면 뜨거운 차를 커다란 컵에 가득 부어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마실 수 있으니. 아이들은 그저 물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좀 다르다. 이미 물의 지위를 벗어나 고상한 차로 등극했다. 물과 차 그 호칭의 차이는 단연 온도에서 비롯된다. 냉장고 속 플라스틱 물통에 담겨 시원하게 유리잔에 부어 마시는 건 분명 물이 맞다. 나도 그리 부른다. 천천히 음미할 틈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켠 후 입안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맛을 기억하게 된다. 향을 찾아내기 위해선 후각을 예민하게 동원해야 하므로 비염이 있는 아이들이나 모든 감각기관이 다소 둔한 남편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주전자 속 따뜻한 온기를 얻은 차는 별 수고 없이 코를 즐겁게 한다. 이미 온 집안은 그 정다운 내로 가득하다. 후각은 미각을 자극하여 이미 냄새만으로 진한 차 한잔을 마신 것 같다. 지난 시간 목이 따끔거릴 때도 배가 아플 때도 몸뿐 아니라 마음에 감기 기운이 있을 때도 이 차를 찾아 마셨다. 물론 증상이 심할 땐 그리 큰 역할은 못하지만 초기일 땐 매번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몸이 기억하고 이 차를 반가이 맞는다. 게다가 여러 잔 마시다 보면 헛배가 부른 게 아니라 내 안의 진짜 허기가 사라지고 묘한 포만감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뜨거운 걸 질색을 하는 다른 가족들에겐 별 효험이 없지만.



드디어 뜨거운 차를 잔에 가득 따르고 식탁에 가 앉는다. 진하게 우려낸 차는 색깔도 참 곱다. 일단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한 후 노트북을 바라본다. 어젯밤 글 쓰다 막혀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눌렀던 부분을 다시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슬슬 묶였던 매듭이 보이더니 드디어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이때다 싶어 속도를 올려 몇 단락 적고 나니 이내 또 막히기 시작한다. 손을 뻗어 잔을 드니 어느새 텅 비워있다. 다시 잔을 채워야겠다.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연재가 어느새 이 글로 6번째다. 잘 견디고 잘 적응하고 있다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얼마 전까진 아이와 함께 한 평범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이었다면 지금은 현재의 삶에서 내게 행복을 주는 또 다른 것들을 하나씩 찾고 있다. 구수한 차 냄새가 가득한 거실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혼자 조용히 글을 쓰는 일 또한 그렇다. 부족한 글이나마 꾸준히 열심히 쓰다 보면 보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실 게다. 그러면 이 소소한 행복도 보다 더 큰 행복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다시 막힌 매듭을 풀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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