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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Aug 14. 2022

나만의 특별한 선물, 청귤청

선물의 기준

 

8월이 가까워지자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점점 게을러지는 육체와 함께 집 나간 정신줄을 수시로 찾고 살지만 시기를 놓쳐버리면 낭패인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차하다 게으름을 피우면 1년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확실하다. 계속 달력을 예의 주시해가며 남편에게까지 부탁했다. 8월 초가 되면 내가 깜빡하더라도 '청귤'을 주문해란 얘기를 꼭 해달라고.




어느새 다가온 청귤의 수확 시기와 함께 청귤청을 담아야 할 때도 되었다. 평소 염치없이 빈 손으로 넙죽넙죽 먹거리를 얻어먹었거나 이런저런 신세를 진 이들에게도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주위에 청귤청을 만드는 집이 하나도 없기에 선물용으로 제법 반응이 좋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여름에는 시원한 에이드로 겨울에는 생강을 곁들인 따뜻한 차로 모두 즐겨 찾는다. 청귤은 조금만 늦어지면 원하는 맛과 크기를 선택할 수가 없다. 뭐 시기별로 다 맛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8월 초의 것을 선호한다. 작년엔 8월 중순쯤 주문했더니 그 크기가 너무 컸다. 청을 만들기엔 적당치 않은 내 주먹만 한 것도 섞여 있었다. 어찌 이런 걸 보냈는지 들쑥날쑥한 크기로 보내준 농장이 탐탁지 않았다. 과육도 많이 물러 칼로 썰기가 조심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아까운 과즙이 많이 낭비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청귤 특유의 상큼한 신맛과 향이 덜 해 맘에 썩 들진 않았다.





보통 7월 말부터 9월 초까진 청귤을 구매할 순 있지만 시기별로 다 특징이 있다. 이를수록 비타민을 비롯한 다른 영양소가 가장 풍부한 대신 크기가 좀 작다. 잘라보면 단면이 라임과 색깔이 비슷하다. 신맛이 무척 강하여 감히 맛본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반면 8월 중순이 지날수록 크기는 지고 과육의 색깔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귤색이 되면서 신맛이 많이 사라진다. 하나 집어 들어 입에 가져가 보면 아직 단맛은 덜 들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청귤이 가장 맛있을 때라고 하던데 그건 각자 취향대로.





모든 과일청이 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들어가는 설탕량이 어마 무시하다. 일반적인 레시피는 청귤과 설탕이 동량이다. 물론 그 엄청난 설탕량에 죄책감을 느껴 한 번도 레시피대로 다 넣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 80% 이상은 반드시 넣어야 한다. 설탕이 너무 많아 썰어 놓은 청귤과 제대로 섞이지 않더라도 두 눈을 질끈 감고 꿋꿋이 정해진 양만큼 첨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귤청이 어느 순간 식초로 변신하게 되는 마법을 목격하게 된다. 언젠가 겨울,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선반 위로 수상한 액체가 새어 나와 있었다. 출처를 밝히기 위해 그것을 따라가 보니 바로 청귤청이었다. 한쪽 구석에 넣어두었던 청귤청을 잠시 잊고 있었더니 어느새 조금씩 부글부글 개어 넘쳐 홍수를 이루어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냉장고 대청소를 뜻하지 않게 시작하게 되었다. 그 번거로운 끈적한 설탕물을 힘들게 치우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설탕의 역할을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름내 에이드로만 마실 생각이라면 설탕을 좀 적게 넣어도 상관없지만 겨울까지 보관했다가 따뜻한 차로 마실 생각이라면 반드시 레시피의 80% 이상을 지킬 필요가 있다. 장고 청소도 청소지만 맛이 변질된 청귤청은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저기 나눠 줄 생각에 15k를 주문하려다 그리 많은 양을 씻어 담아둘 소쿠리도 설탕에 버무릴 큰 대야도 없다는 걸 깨닫고 10k만 주문했다. 이것도 은근 노동이라고 청을 만드는 내내 적게 주문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썰기가 모두 끝나면 설탕과 골고루 잘 섞은 후 집에 있는 병이란 병은 최대한 다 끄집어내어 담는다. 병에 담을 때도 그냥 막 넣는 게 아니라 청귤의 이쁜 단면이 잘 보이게 특별히 신경 쓴다. 뭐든 이쁘면 일단 후한 점수를 받는 법이다.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그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다. 아울려 이걸 선물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어 온다.







예전 그리 넉넉지 않았을 땐 누군가 사서 주는 선물을 받는 게 좋았다. 평소 갖고 싶었으나 쉬이 사지 못하던 것이면 더욱 그러했다. 지금도 선물이라면 좋긴 한데 나이가 들고 형편이 나아지니 전과 달리 그것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란 게 생겨났다. 반가운 선물과 다소 그렇지 못한 것의 확실한 구분이 생긴 것이다. 반갑지 않은 것은 당연히 받기가 꺼려지지만 거절하는 것 또한 참 쉽지가 않다. 주는 쪽은 기분이 좋은데 받는 쪽은 영 별로인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선물이란 반드시 받는 사람의 입장이나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데 센스가 좀 부족하거나 게으른 사람들에겐 사실 좀 힘든 일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선물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도 항상 어려운 일이다.




그리 반갑지 않은 선물은 대게 부담스러운 것들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그걸 받을만한 뚜렷한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선물까지 주고받을 만한 사이가 아닐 경우 그리고 선물 뒤에 감춰진 불편한 의도가 너무나 눈에 잘 들어올 때 등이 그렇다. 내가 준 만큼 꼭 받아야 하는 것도 내가 받은 만큼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원래 선물이나 마음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 당연히 받았을 때 서로 부담 없는 것들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한쪽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리면 다음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다. 게다가 각자의 소비 패턴이란 게 있는데 의도치 않게 타인을 따라가야 하는 아주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먹을 케이크를 사는 김에 누군가가 떠올라 좋은 맘으로 그 집 것도 사서 건넸다. 하지만 받는 쪽에서는 생일도 아니데 굳이 비싼 돈 주고 평소에 케이크를 사 먹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물어봤음 사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을 테지만 이미 사서 주는 걸 거절하기도 그렇다. 뭔가를 받았으니 답례라는 걸 해야 하는데 참 마땅찮다. 제발 각자의 소비 패턴 내에서 가능한 걸로 주고받았음 하는 맘이 간절하지만 그걸 말하기도 그렇다. 나름 신경 써서 비싼 해산물을 듬뿍 넣은 부침개를 정성껏 만들어 건넸다. 케이크 가격에 미치진 못해도 평소에 만드는 부침개보단 훨씬 많은 재료비를 들였다. 케이크를 선물한 이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고맙게 받지만 마음속으론 잠시 이런 생각을 가져 본다.

'나는 케이크를 건넸는데 기껏 부침개야?'

참 어렵다.




반면 나에게 있어서 반가운 선물이란 누가 봐도 상대를 향한 마음이 듬뿍 들어간 것들이다. 게다가 수고로움을 들여 본인의 발품을 판 것이나 직접 만든 경우는 감동이 배가 된다. 선물에서 이런 울림이 들리는 듯하다.

'이건 당신을 위해 내가 특별히 시간과 마음을 들인 거예요'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겐 충분하다. 바닷가에서 주운 예쁜 돌멩이나 조개껍질, 길거리에서 산 신문지에 싸여진 부담 없는 한 다발의 꽃, 문구점에 들렸다 우연히 집어 든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예쁜 필기도구 모두 괜찮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날 떠올렸다면 분명 충분히 반가운 선물이 될 수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사고 싶은 걸 살 형편은 된다. 굳이 필요성을 못 느껴 안 사는 것뿐이지. 그런데 돈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으면 하나도 달갑지가 않다.  






며칠 전 수시로 반찬 선물을 해주는 친한 동생이 이번엔 콩국을 직접 만들어 내게 넉넉히 나눠 주었다. 그것도 일반 대두가 아니라 검은콩으로 만든 것이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콩국을 사서 국수에 말아먹곤 했는데 올해는 콩국을 사러 시장에 가는 그런 사소한 일조차 너무 귀찮아졌다. 결국 콩국수를 못 먹고 올여름을 넘기려나 싶었는데 부지런한 그녀 덕분에 그런 슬픈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릇째 들고 국물을 맛보는 순간 역시 사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올여름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 그 귀한 시간을 내어 수고로이 만든 걸 그냥 받아먹으려니 먹는 내내 황송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당연히 그녀에게 가장 넉넉히 청귤청을 선물했다.



그녀의 수제 콩국 덕분에 올해 첫 콩국수를 맛보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매번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선물해 주는 지인 몫으로도 따로 병을 챙겨놓았다. 담에 만날 때 청귤청을 갖다 주겠다며 병 사진을 찍어 그녀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러자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한 병이면 충분하다는 답이 왔다. 크지 않은 사이즈의 병이고 에이드를 만들 때 듬뿍 넣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기에 그리 많지 않은 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 소리 말고 두 병 다 받아라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그럼 그리하겠다 했다. 순간 별로 반기지 않는 듯한 느낌선뜻 들었다.




잠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차 싶었다. 커피도 남달리 아주 진하게 먹는 사람인데 달달한 음료는 싫어할 수가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맛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탄산류도 즐기지 않게 된다.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아이들이라도 에이드를 즐기지만 결혼이 빠른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20대 중후반이다. 어쩜 크지 않은 두 병의 청귤청이라도 짐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그런 것들이 눈에 띄면 꽤 신경이 쓰인다. 애써 날 위해 챙겨줬는데 아무도 찾는 이 없고 그렇다고 저 고마운 걸 그냥 남 주기도 그렇고. 잘못하면 선물한 나는 흐뭇하지만 받는 사람의 마음은 심란하게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입맛에 맞아 더 필요하다면 그때 나머지 한 병을 더 건네주고 일단은 한 병만 그녀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상대방을 아닌 이상 어떤 선물이 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잘 안다고 생각한  내 새끼 것들도 나름 생각해서 준비했지 외면받을 때가 허다하다. 나 역시 크든 작든 무언가를 선물 받았을 때 마음에 쏙 든다고 생각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선물에 담겨진 마음만큼은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필요한 것은 그냥 내가 사면된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사 본 적이 없는 남편이 내 협박에 못 이겨 마트를 기웃거린 후 무심히 내민 초콜릿, 공부하느라 바쁜 딸애가 그 꿀맛 같은 쉬는 시간을 틈타 손수 만들어준 비즈 팔찌, 어느 다정한 이가 직접 키운 호박을 나눠 주면서 같이 조림해 먹어라고 사다  갈치, 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고 싶다며 직접 예매해서 내민 누군가의 영화표... 모두 충분히 날 생각해줬음이 느껴진다. 이 나이에 선물이란 부담스러운 것만 아니면 그게 뭐가 됐든 그리 중요치 않다. 그저 날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 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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