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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Sep 05. 2022

친구, 넌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야.

요리와 온도의 궁합에 관하여



나랑 쿵작이 잘 맞는 짝꿍이 있는 것처럼 음식에게도 그것에 딱 맞는 온도가 있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그 궁합을 만나는 순간 입안에선 만족스러운 맛의 향연이 벌어진다. 막 튀겨 한입 베어 물면 입천장이 델 것 같이 뜨겁지만 씹는 소리마저 경쾌한 바싹바싹한 튀김, 먹기 직전 냉장고에서 끄집어낸 차디찬 오이냉국, 연신 흐르는 땀을 닦게 만드는 뜨거운 탕요리, 톡 쏘는 탄산수에 얼음을 듬뿍 넣어 마시는 상큼한 청귤 에이드... 만약 차갑게 식어버린 튀김이나 실온에 오래 방치되어 미지근해진 오이냉국, 얼음 하나 띄우지 않은 에이드를 먹는다면 음... 생각만 해도 너무 아쉽다. 아무리 솜씨 있게 마련한 음식이라도 막상 먹을 때 그 적정 온도를 갖추지 못하면 뭔가 빠진듯한 맛이 된다. 물론 김밥처럼 온도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것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집에서 먹는 음식만큼은 그걸 먹을 사람이 최대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에 맞춰 식탁에 내놓아야 한다. 그건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센스다.


 




얼마 전 이사한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집들이까진 아니고 그냥 밥이나 먹고 가라 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별 기대는 하지 말란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다. 요리 실력뿐 아니라 그녀 소유의 감각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간혹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음 참 괜찮은 남편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인이 아무리 맛없는 음식을 해준다 한들 다 맛있게 먹을 사람이다. 음식을 한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가 결코 아니다. 심지어 본인이 만든 음식도 제일 맛있게 먹는 사람이 그녀다.




어째 보면 신은 나름 공평한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이해심 많고 남을 잘 배려하고 게다가 나처럼 쓸데없는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 쓰는 그런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같이 있어도 뭔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잘 깨닫지 못하는 약간 무딘 타입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모든 감각 기관 또한 그러하다. 미각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껏 그녀가 맛있다고 데려간 음식점은 한 번도 내 입맛을 만족시킨 적이 없다. 가격이라도 저렴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물론 내가 좀 까다롭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본인의 무딘 혀의 미각신경에 대해 전혀 자각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요리 솜씨가 좀 부족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꽤나 미식가인 줄 착각하고 있다.




예전에 딱 한번 그녀가 차려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손수 밥을 차려준다니 그 맘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게다가 메뉴도 내가 좋아하는 떡국이었고 어지간해서는 맛없기 힘든 간단한 요리라 나름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날의 식사 이후 그녀가 뭘 한다고 하면 두 손을 힘껏 내저어 진심으로 사양한다. 간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밍밍한 국물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굳이 쓸데없이 유기농 식료품점만 찾는 그녀가 거기서 비싸게 주고 산 한우로 만든 고명은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참기름에 마늘과 함께 달달 볶다가 집간장으로 살짝 간을 해야 하는데 간은 하나도 안되어 있었다. 사실 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누린내가 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고기에서 역겨운 누린내가 진동을 했다. 수입육으로 조리를 한다 해도 그런 누린내는 나기 힘들 것인데 그 비싼 한우에다 대체 뭔 일을 저지른 건지. 상대방의 식사량 따위도 전혀 아량곳 하지 않았다. 양푼이 같은 큰 사발에 떡국을 가득 떠서는 그 위에 누린내 나는 고기 고명을 밥숟가락으로 또 수북이 얹어 주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그걸 차마 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차마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얼마 전 도시락을 싸서 같이 산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싸간 우엉 김밥을 맛있게 먹은 그녀는 다음엔 본인이 도시락을 준비하겠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도시락을 먹는 것보단 내 몸이 좀 귀찮아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며 극구 사양한 뒤 그 다음번 산행에도 내가 도시락을 준비했다. 팥을 넣어 지은 찰밥에 즉석에서 버무린 새콤달콤한 오징어무침과 땡초를 갈아 넣어 살짝 매콤해진 부추전이 정말 맛있었다. 물론 시장이란 별미 반찬이 있긴 했지만. 식사량이 좀 많은 그녀를 위해 내 것의 2배가량인 도시락을 준비했지만 나보다 훨씬 빨리 식사를 마쳤다. 그녀는 다시 한번 다음번엔 자기가 도시락을 꼭 싸오겠다며 주먹밥은 잘 만든다는 다소 믿기 어려운 소리를 했다.




별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대접하는 나와 달리 대부분 사람들은 집에 누굴 부르는 걸 굉장히 꺼려한다. 심지어 집에 누군가 와서 둘러본다는 게 마치 벌거벗은 자기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니 그녀가 새 집으로 초대해 밥까지 차려 준다는 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음식 간'에 대해 남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그녀가 손수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건 사실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고 하고는 내가 좀 일찍 가서 직접 비빔국수를 만들어 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앞선 주말에 시댁 식구들까지 다 와서 집들이를 치렀다며 꼭 밥을 차리겠다 한다. 밥 지은 경력이 몇십 년인데 다른 건 몰라도 밥 하나는 잘한다고 큰 소리다. 그러면서 내게 부탁할 게 하나 있다며 집에 커피가 없으니 올 때 커피 좀 추출해서 갖고 오란다.




"그럼 내가 얼마 전 만든 청귤청과 탄산수를 들고 가 에이드 해줄 테니 자기는 그냥 얼음만 준비해줘"

청귤청이란 내 말에 갑자기 집에 자몽청이 있다는 소리를 한다. 내가 끓여주던 생강 자몽차를 그리 좋아하더니만 대견하게도 얼마 전 따라 만들었나 보다. 그걸로 자몽 에이드를 만들어 먹자고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단칼에 거절했다. 청귤 에이드는 먹어 본 적이 없을 테니 내가 해주는 것 한번 먹어봐라며 다시 한번 얼음만 준비하라 당부했다.

"얼음은 그냥 얼리면 되는 거고..."

그녀는 자신의 자몽청을 맛 보이고 싶은데 내가 청귤청을 들고 간다니 못내 아쉬운 듯했다. 하지만 가급적 그녀가 만들었다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게 내 본심이었다.






집들이 선물로 내열 유리잔과 원목 차 스푼 그리고 아무리 똥 손이라도 쉽게 죽이지는 못 할 선인장 화분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빈손으로 오라 했는데 뭘 들고 왔다며 처음엔 화를 버럭 내더니 혹시 집에 유리잔이 있냐는 내 물음에 태도가 급변한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딘가 찾아보면 나올 거라 얼버무린다. 아마 나중에 청귤청을 만들기 위해 컵을 달라고 하면 그녀는 그냥 도기로 된 큰 머그컵을 줄게 분명했다. 투명 유리컵에 먹는 에이드와 불투명 머그컵에 먹는 것의 차이점을 그녀가 알 턱이 없다. 선물로 들고 온 유리컵과 스푼으로 청귤 에이드를 만들어 먹자는 말에 그녀 역시 좋은 생각이라 여겼는지 이내 화를 풀었다. 가져온 청귤청과 탄산수 그리고 커피는 나중에 시원하게 먹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싱크대 위에 놓인 무언가가 약간 신경에 쓰인다. 편의점에서 산 듯한 일회용 투명 컵 속의 얼음이 일부 녹여진 상태로 거기 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같이 초대받은 일행이 뒤늦게 도착하자 그녀가 드디어 밥을 퍼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이미 차려져 종이에 덮여 있던 음식도 그 베일을 벗었다. 도대체 언제 차려 놓았기에 종이로 덮기까지 했는지 그 모습이 참 낯설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밑반찬을 모두 일인분씩 담아 놓았는데 뭔가 많아 보이는 동시에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참 묘한 상차림이었다. 그런데 식사량이 우리 남편과 똑같은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과 동일한 양으로 밥을 퍼서 나눠줬다. 처음부터 덜어내어야 하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 예전 그녀가 끓여준 떡국처럼 그걸 다 먹어야 했다. 하지만 저번 산행에서 도시락을 건넬 때 내 식사량의 두 배라고 말했으면 분명 자기보다 적게 먹는다는 걸 인지해야 하는데 참 센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랑 같이 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어찌 내 식사량을 아직 모를까. 그리고 밥 하나는 잘한다고 큰소리치더니 이게 무슨 잘하는 밥인지. 나처럼 압력솥에 밥을 지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도 아니고 쌀도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 게 그냥 식당 밥이구만.




큰 국그릇에 허연 순두부를 또 가득 담아준다. 자기 딴엔 국이 필요할 것 같아 순두부를 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양념장 하나 없이 그걸 맛있게 먹는다. 몇 숟가락 따라 뜨다 더 이상은 그냥 못 먹을 것 같아 혹시 양념장 없냐 물어보았다.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는 대답은 나름 그럴싸한 게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두부 본연의 고소한 맛을 즐기라는 의도란다. 그러면서 간장을 줄까 물어본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간장이라니...




진간장에 곱게 다진 마늘과 잔파, 고춧가루와 통깨를 넣고 잘 섞은 후 마지막에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양념장이 아닌 그냥 간장이라니. 물론 간 하나 안 된 허연 순두부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다. 기본적으로 양념장 정도는 따로 준비해서 각자 취향에 맞게끔 덜어 먹게 해야 하는데 이 친구는 그런 생각 자체를 전혀 못한다. 갑자기 예전 그녀가 해준 정말 아무 맛도 안 나던 허옇고 밍밍한 떡국 국물이 생각났다.




유리 볼도 아닌 사각 유리 밀폐용기에 일인분식 담긴 배추 물김치도 내겐 잔소리 감이었다. 사실 모든 밑반찬과 김치류들은 그녀의 외숙모 솜씨라 했다. 외숙모가 정성껏 만들어준 그 물김치를 냉장고에 차게 보관 후 먹기 직전에 꺼내 줘야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몇 시간 전에 이미 식탁에 옮겨져 종이에 덮여 있었으니 찬 냉기는커녕 이 더운 날씨에 오히려 미지근하게 식은 국 같았다. 적정 온도를 유지하지 못한 그 국물을 한 수저 뜨는 순간 온갖 군내가 다 느껴졌다. 옆에는 실온에 오래 방치되어 싱싱함을 이미 잃은 시들시들 한 상추와 깻잎이 안쓰러운 모습으로 접시에 담겨 있다. 어찌 상을 차린 그녀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녀 혼자 모든 자기 몫의 음식을 맛있게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특이한 후각과 미각의 소유자다. 밑반찬까진 아니어도 나도 내 몫의 밥과 순두부만큼은 다 비워야 하기에 시들시들한 깻잎에 밥을 싸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그런데 같이 온 일행이 혼자 배신을 한다. 미안하지만 자기는 도저히 다 못 먹겠다며 밥을 반이상 남겼다. 아... 나도 남길 것.






식사가 끝나고 청귤청을 만들어 주겠다며 얼음을 달라하자 그녀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그런데... 얼음을 깜빡하고 안 얼렸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 얼음이 없다니. 저 큰 두 개의 냉장고 안을 무언가로 꽉 채워 놓고 살면서 이 여름에 얼음 하나 없다니. 보아하니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얼음이란 걸 얼린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걸 얼릴 틀조차 없는 눈치였다. 내가 어이없어하자 냉동실 안을 뒤지는 척을 하는 게 더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서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리던 싱크대 위 녹다 남은 얼음을 가리키며 그걸 써란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속에서 확 치밀어 오른다. 얼음이 없다고 했음 내가 보냉병에 넣어 들고 갔을 테다. 그녀와 우리 집은 고작 10분 거리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작은 컵으로 하나 샀으면 그걸 냉동실에 넣어만 뒀어도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뚜껑까지 벗긴 채 싱크대에서 반이상을 녹여둔 그 이유를 지금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녹다 남은 얼음도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한 덩어리로 된 상태였다. 그러면서 나보고 그냥 얼음 녹은 물을 부어 쓰란다. 누가 탄산수에 찬물을 붓냐고 한 소리하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람 복장 뒤집는 소리를 한다.

"어차피 거기에 들어간 얼음도 녹으면 다 물이 되는데"




아니 몰라도 이리 모를 수가 있을까. 사이다나 콜라가 시원하지 않다고 얼음이 아닌 찬물을 타 먹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고 저런 소릴 하는지. 하지만 초대받은 집이기에 일단 화를 삭였다. 그렇게 난생처음 얼음 없이 만든 청귤 에이드를 나눠 먹는데 그녀는 또 맛있다고 혼자 잘도 먹는다. 아무래도 그녀의 혀는 좀비의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정성껏 추출해 간 커피도 그 망할 놈의 온도 때문에 한순간에 맛대가리 하나 없는 커피로 전략했다. 냉장고에 넣어둔 커피는 얼음이 없는 탓에 따뜻하게 먹기로 했는데 그녀가 따로 끓이지 않고 정수기에서 받아다 준 물 온도가 또 문제였다. 정수기 온수가 80도는 넘는다고 하나 냉장고에 1시간 넘게 넣어둔 커피와 만나는 순간 그냥 식은 커피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청귤 에이드를 마신 컵을 다시 씻어 사용하다 보니 물기가 남아 있는 컵 또한 온도를 떨어뜨리는데 일조를 했다. 다른 일행이 커피 물 온도에 대해 뭐라고 하자 또 눈치 없는 소리를 한다.

"뜨거운 커피 마시면 식도에 안 좋아"






물론 잔소리를 전혀 안 한건 아니지만 목구멍까지 차 올라 터져 나올려는 그 소리들을 침을 꼴깍꼴깍 삼켜가며 최대한 꾸우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싫은 내색을 잘 숨기지 못하는 투덜이 친구를 초대해 나름 맘고생을 했을 테고 내 눈치도 봤을 게다. 어찌 보면 그녀는 요리 솜씨가 서툰 아줌마로 위장한 흑마법사 일지 모른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음식들은 어떻게든 그 본래의 맛과 향이 변하게 되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만들지 않은 것들도 그녀의 숨결이 더해지는 순간 더 이상 예전의 맛을 보전하기 힘들어진다. 전에 내가 끓여다 준 전북 죽도 아마 같은 처지였을 게다. 약한 불에 물을 조금 부어 살살 저어 데워먹고 혹시 추가된 물 때문에 간이 싱거워지면 집간장을 조금 넣어라 했다. 그리고 먹기 직전에 참기름과 깨소금, 김가루를 살짝 첨가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자기도 잘 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녀 혀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가 없고 데우는 과정에서 밑은 타서 눌렀을지 아니 어쩜 차게 식은 그대로 먹었을지도 모른다.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보다 그녀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녀가 가족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새 집으로 초대한 건 내가 처음이란 것도 잘 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잘 감싸줘야 하는데 못마땅한 걸 애정이란 구실로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약하고 부족한 면을 다 드러내어도 정작 그녀는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지켜만 봐주는 건데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있다. 그냥 피하면 된다.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일도 극히 드물지만 최대한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일 따위도 두 번 다시 안 하기로 했다. 그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맘에서 건네주는 거지만 그녀 손길이 닿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내 눈으로 이미 확인했다. 청귤청에 탄산과 얼음 대신 찬물을 타 먹을 사람이다. 음식에 관한 한 나름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가 그냥 자기 방식대로 하게 놔두는 게 우리 관계에 훨씬 도움이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앉아 말 한마디 없이 음식만 흡입하는 남편을 가만히 쳐다본다. 남편은 한 번도 내가 해 준 음식에 대하여 맛있다든지 고맙다는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항상 다른 집도 다 이렇게 먹는다는 헛소리나 한다. 그 모습이 괜히 얄미워져 시비를 걸어본다.

"내가 해주는 밥 먹고 사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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