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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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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Sep 02. 2024

시계

시가 있는 에세이 (16)

      시     계


    째깍 째깍 째깍


    사랑하던 미워하던 

    괴로워하던 즐거워하던

    행복하던 불행하던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그저 

    세월의 유영(遊泳)을 고지(告知)하면서

    영원불멸(永遠不滅)하리라 기대하는 

    그대의 삶이


    대소쿠리에 물 새듯

    그렇게 새어 나가고 있음을 

    경고할 따름이다.


 시계의 역사는 B.C. 400년경 바빌로니아의 해시계로부터 비롯하여 최근의 아나로그 쿼츠, 디지털 시계로 까지 발전해 왔다. 기계시계가 생기기 이전의 인류의 대표적인 시계는 해시계와 물시계였다. 해시계는 태양의 그림자 길이와 방향에 의해서, 물시계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 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하고 그것을 받는 그릇에 눈금을 세계 시각을 측정한다. 아득한 옛날, 삶의 순간들을 재어 보려고 시도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날을, 날이 달을, 달이 연수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14일로 나는 밴쿠버 거주 3년차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장마 중이던 서울을 떠나오던 것이 어제 같은데, 생소하기만 하던 밴쿠버가 이제는 푸근하게 다가온다. 3년 세월이 부린 조화 때문이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간 것 같고 세월도 많이 지났다. 그 사이에 밴쿠버에서 비즈니스도 해 보았고 영어공부도 제법 했다. TV를 틀면 반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최소한 반 이상은 알아듣는다. 중국사람 들이나 인도사람들을 만나면 그 수수께끼 같은 발음에 내 부족한 영어 청취력을 한탄했었는데 이제는 눈치로 때려잡는다. 아니 그보다 이제는 배짱이 늘어서 ‘잘 못 알아듣겠으니 천천히 말해 달라’고 요구까지 한다. 그러면 대부분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준다. 거기까지 가는데 3년이 걸린 셈이다.    


 많은 인연을 두고 떠났지만 그동안 차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부지런히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낯 설은 것은 함께 나눌 추억이 부족한 탓이고, 그 추억은 다시 시간이 만들어 준다. 미운 정 고운 정, 매운 정 달콤한 정 다 들어야 좋은 인연이 만들어 지고, 그 인연들이 항상 주위에 있어 삶은 덜 외롭게 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이 밴쿠버의 삶이 점점 편안해져 간다.


 슬픈 일도 있었다. 사랑했던 어머니를 여의었고 좋은 친구, 동료 및 선후배들과의 사이가 3년의 간격만큼 멀어져 갔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숫하게 한국으로 전화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언제부터인지 차츰 서로간의 이야기가 겉돌고 대화의 소재가 궁해져서 통화시간이 짧아지더니 그나마 끊겨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나의 한국적 사고는 아직 3년 전에 머물러 있는데 그들은 현세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은 저 세상이고 밴쿠버는 이 세상이니 서로 다른 세상에 살면서 오래 통할 수가 있으랴. 

 이렇듯 흐르는 시간은 과거의 추억들을 무덤에 가두었다. 우리는 모두 한국에 추억의 무덤 하나 두고 와 기일에나 성묘하듯 가끔 추억을 상기할 따름이다.


시간 참 잘 간다고 시계 보면서 한탄하지만 어디 그게 시계 잘못인가. 시계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저 시간이 얼마만큼 흐르고 있는 가를 알려 줄 뿐이다. 하긴 1년 365일 시,분,초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동물은 시계를 보고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본능의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마려우면 배설 한다. 인간은 때를 가린다. 아침 6시경에는 일어나고 8시경에는 일하러 가고 오후 5시경에 퇴근하고 밤 10시경에 잠든다. 그 시간에 맞춰 행동하면 정상인이지만 뒤틀리면 비정상인 취급을 받는다. 오후 5시 경에 일하러 가고 새벽 6시경에 퇴근하고 아침 8시경에 잠드는 사람은 야간교대근무 근로자 이외에는 밤업소 종사자나 밤손님 취급 받는다.


 사람에게는 모두 때가 있다. 솔로몬이 말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와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와 춤출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어 버릴 때가 수선할 때가 있으며,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싸울 때가 있고 화해할 때가 있다. 


 초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때, 지금 나의 때는 언제쯤인가.  


<되돌아 보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도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차츰 멀어져간다. 작년 가을 입사동기들을 40여년 만에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공통되는 주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끼리의 관심사로 옮겨가고 있었다. 타국에서 산 생활이 20여년이 되는 나는 본의 아닌 왕따가 되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간다. 친한 친구들이 벌써 하나 둘씩 유명을 달리 한다. 함께 했던 추억이 마르기도 전에 이미 내 곁을 떠난다. 해서 이제는 맺힌 것 있으면 풀고, 멀어지면 내가 먼저 달려가려고 한다. 내 인생의 시침, 분침, 초침 다 멈추기 전에.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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