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러버 사랑이

입맛이 뚝 떨어졌다.

by 희박한아빠

병원에서는 감기에 걸린지 하루밖에 안 되었고 더 지켜보자며 약한 약을 주었다. 의사소견도 크게 아프진 않단다. 참 다행이다. 예전에 폐렴을 두번 겪은 적이 있어서 기침이 길어지면 늘 긴장의 연속이다. 감사하게 병원에 다녀온 뒤 잠도 한시간 반정도 잤다.

잠을 깬 뒤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사랑이가 계속 나를 따라다녀서 요리도 할 수 없었고.. 아침부터 뭘 줘도 다 싫단다. 육아가 이렇게 헬일 줄이야.. 찐빵, 식빵, 곰탕국물을 깔짝깔짝 먹을 따름이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사랑이가 이전에 누룽지 국물과 곰탕을 아주 맛깔나게 먹은 식당이 기억이 나서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짐을 챙겨서 이동했다. 다행히 3시 정도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역시나 밥은 하나도 먹지도 국물만 먹어댄다. 어떻게든 밥을 말아서 조금만 먹어보라고 건네지만 사랑이의 저항은 거세지기만 했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아이를 왜 이렇게 키우세요? 라는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몇번 사랑이에게 제안을 해보지만 내가 도저히 이길방법이 없다. 결국 두 손 다 들고 다 맞춰주었다. 부모라는 사람이 아기의 건강을 위해 제안해본 모든 노력이 거부당할 때 그 거절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휴.. 그래 알겠어.. 감기 걸렸으니깐.. 국물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다 먹었으니 이제 아빠시간이다. 챙겨둔 떡뻥과자와 빵으로 커피마실 시간을 벌어보자. 식당에 나오자 마자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오늘 첫 국물 한사발의 효과로 몸이 좋아진 사랑이는 카페에 있는 곰돌이와 트리를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갖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조용한 카페였기에 공부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이 또 내 눈에 보인다. 결국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호호불어대며 식히자마자 원샷드링킹.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또 스스로 눈치를 보고 몸 컨디션이 한껏 좋아져서 흥분한 이 아이를 안고 눈치가 보여서 또 후퇴. 쓸쓸히 집으로 가자. 내게 분위기는 그저 사치일뿐이지..

내일 어린이집에 가져가야할 꽃 한송이만 후다닥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시간의 짧은 외출이 이리도 힘들줄이야.. 둘째 출산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육아한지 4일차 오늘따라 와이프가 더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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