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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별이 되셨습니다

by 초록

어제 현지시간 오후 4:30분, 부모님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석사 생활로 유학한지 1년이 되었고, 이번 9월을 기점으로 2학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1년가량 남은 석사 생활을 남겨놓고, 이번 여름 1학년을 마친뒤, 여름 7,8월동안 한국으로 쉬러 돌아왔습니다. 친할머니께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셔서 호스피스로 모셔지게 되며, 남은 8월 한달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최대한 오래 버텨주시길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며 친가와 외과 친척분들 인사도 다 드렸었죠.


그리고 9월 개강을 앞두고, 8월 말에 다시 코펜하겐으로 돌아왔어요. 친할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매일 마음을 조리던 와중,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폐렴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올해 한국나이로 91세이신 고령의 할아버지는, 제가 마지막으로 올 여름에 뵈었을땐, 너무나 건강하신 모습으로 떠나기전 용돈과 조언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이에요.

비록 친손자는 아니더라도, 매년 명절과 생신때마다 찾아뵈어, 많이 가까운 조부모님이었습니다.


당시엔, 저희 친할머니의 병세가 더욱 심각하고 방도가 없는 터라, 외할아버지의 투병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당연히 병원에서 잘 이겨내실거라 믿고 있었어요. 아니, 믿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제 학교 실험실에 출근하고 오후에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셔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었을때만 해도, 폐렴이니 뭔가 병원에서 방도가 있겠지 싶었습니다.

물론 고령의 노인에겐 폐렴도 심각한 질병이고 생명에 지장이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친할머니의 병세에 더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그 소식마저 흘러가는 하루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몇시간..아니 몇분후 어머니로 부터 외할아버지의 별세소식을 받았습니다.

정말 제 자신이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 당시엔 믿기지도 않고 별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심지어 학교 랩실 퇴근후 집에와서 저녁을 먹고는, 몸이 피곤하여 잠도 일찍 자버렸죠.


그리고 오늘 다시 학교를 가고 랩실 일을하다, 뭔가 하는 일이 잘 안풀리고 선배에게도 한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던 와중, 문뜩 슬픈 감정이 막 몰려오는 겁니다. 내가 왜 이렇게 일에 집중을 못하고, 머리가 복잡하니 이상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대해 통화하고 사진을 받아보며, 이별이라는 느낌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랩실에서 일을 더 할 수 없겠더군요.


그래서 바로 일찍 퇴근하고 전철을 타러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어제는 멀쩡하던 내 자신이, 오늘부터 뭔가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나봅니다.

건강하게 조언을 건내며 어깨를 토닥여 주시던 외할아버지가, 이제 명절에 외가를 가면 안계신다니.


그와 동시에, 저를 길러주셨던 어미니와 같은 친할머니도 머지않아 이런일이 닥칠것이라고 생각이 드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지금도 너무 무서워요.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함께 할수 있는것도 아닐뿐더러, 외국에 있으니 한국에 가고 싶다고 바로 갈수도 없는 노릇..이 무력감과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견디기 힘듭니다.


모든분들이 이별을 겪으시겠지만,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더욱 부모님 같이 저를 보살펴 주셨던 조부모님들이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사는건가. 아버지께선, 남자란 때론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아가봤자 정작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서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데,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왜 이렇게 세상은, 만남은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하게 해주면서도, 이별은 그 순간을 준비할 수 없이 어느순간 갑자기 찾아올까요.. 병원에 입원하신 순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다들 하였다 하지만, 결국 눈을 감으시는 그 순간 만큼은 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게 너무나 소중하신 분들인데, 그분들의 사랑을 받은만큼 아직 베풀지도 못했는데.. 나약하게도 마지막 순간조차 함께 하지 못한다는 이 무력감이 너무 힘든 날인것 같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서는 웃으며 일상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제 자신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비행기 값에 후달려 당장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는 상황도 너무 원망스럽네요..


이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기대보다는, 너무 힘든 현재를 어디에도 토로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껴, 하얀 모니터 백지에 적어나가 보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외할아버지. 제가 친손자처럼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사근사근하게 말과 행동도 잘 못했고, 이 나이 먹도록 명절때 마다 용돈만 받아가던 못된 손자라 죄송합니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있어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90세에도 포도농사를 지으시며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포도를 먹이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던 할아버지.. 이제는 더이상 걱정마시고, 제발 편하게 푹 쉬세요.. 나중에 찾아뵈어 인사드리겠습니다. 먼 미래에 다시 얼굴 마주보며 그때는 못다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안녕히계시고 다음에 뵐게요 할아버지.


25년 9월 24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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