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유달리 가을이었다. 하늘이 높았다. 최근에 알게 된 옆 동네 빵집에서 치즈바게트를 샀다. 우마미(うま味) 덕분에 커피만 있었다면 내 삶에 더 필요한 게 없었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이라 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을 욕망한다.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삶은 고통이고, 욕망이 채워진 삶은 권태다. 권태로운 인간은 다시 무언가를 욕망한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일까? 나는 원한 것을 얻지 못했을 땐 고통스러웠지만, 원한 것을 가져도 쾌락이 오래가지 않았고, 예상과 달리 후회한 적도 있었다. 요즘엔 더 욕망할 것이 없다. 그래서 고통도 없다. 타인의 원대한 목표가 내겐 그저 미니어처 같다.
담백한 빵과 함께 마신 게이샤 드립커피는 완벽했다. 발 길 닿는 대로 가을을 걷다가 가구점과 공예 소품샵을 구경했고 위층에 있던 카페도 들렀다. 한켠에 구비해 놓은 아트북과 흘러나오는 재즈에서 취향이 묻어났다. 다음엔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라떼 마셔야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완벽한 하루 끝에 다다를 때면 '나는 그저 소비적 인간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길게 내다보면서 계획을 세우고 행동할 최적의 결과를 기다려야 인생에서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고, 처칠에 따르면 목표의 성취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고,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것이 진정성의 성취라는데. 나에 따르면 뭐가 필요한 일이고, 진정성의 성취일까?
나는 지금 성취하고 싶은 것이 없어 계획도 없다. 반면 내가 욕망할 필요 없게끔 이토록 일상을 채워주는 빵과 커피, 책, 드라마, 영화는 모두 누군가의 성취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서, 원대함보단 원하는 삶을 산 결과물들이다. 이것들이 모인 사회가 원대하다. 나는 어떤 성취로 누군가의 일상을 채울 수 있을까? 내가 성취할 필요가 있는 일이나 진정성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 중에서 찾고 싶다. 나를 알아가는 가을의 시계추는 천천히 오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