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문장을 만든다

「짧게 잘 쓰는 법」 서평

by 주경

어느 서평보다 부담이다. 짧게 잘 쓰는 법을 읽고 쓴 서평 짧게 잘 써야 할 텐데. 이번 서평은 자유가 아닌 의무처럼 느껴진다.


「짧게 잘 쓰는 법」은 짧은 문장의 이점과 작법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 벌린클링켄보그가 말하는 짧은 문장의 이점은 명료함이고, 저자가 말하는 작법은 문장중심 글쓰기이다. 저자는 명료한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짧은 문장으로도 충분히 명료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고 균형 잡힌 단문으로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시중 작법서는 논리전개를 위한 문단중심의 구조적 글쓰기를 역설한다. 반면 이 책은 논리전개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고 한다. 저자는 주제문과 개요를 미리 정해두고 뒷받침 문장들을 그럭저럭 채워 넣는 글쓰기를 지양하라고 말한다. 그런 글은 마지막 '요점'으로 독자를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문장중심 글쓰기를 권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문장마다 리듬과 의미를 준다. 다음 문장이 기다려지는 문장다. 시중 작법서가 강조하는 양식, 구조는 문장이 명료할 때 자연히 분명해진다. 문장과 단락을 초조하게 이어 붙이지 않아도 독자는 단락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문장이 명료하다면 문장 사이 여백을 두고, 암시를 놓아도 독자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문장중심 글쓰기를 위해서는 명료한 문장 하나 쓰고 충분히 생각한 뒤 다음 문장을 이어야 한다. 심려치 않고 구조를 세운 후 중심 문장에 뒷받침 문장을 성급히 이어 붙이면 사고가 제한된다. 떠오르는 가능성을 글에 담을 수 없다.


저자는 문장 또한 섣부르게 쓰지 말라고 조언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정형화된 문장들로 가두는 꼴이기 때문이다. 차분히 생각해서 애초에 최종 문장을 쓰라고 조언한다. 사고, 작문 그리고 퇴고가 한 몸인 듯 글을 쓰는 훈련을 통해 효율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창의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작가의 일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문장이 거듭 떠올랐다. 하나는 칼의 노래 문장이. 칼의 노래 문장은 간결하면서 진하다. '술이 먼 것을 가깝게 당겨주었다.'와 같은 문장들은 진하기 때문에 거듭 풀어 읽는 묘미가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피천득 수필에 담긴 문장은 간결하지만 담백하다. 적당히 묽기 때문에 풀어 읽지 않아도 된다. 칼의 노래는 더 이상 간추릴 수 없는 본질인 生, 死, 我 라는 주제를 다룬다. 문장 역시 더 이상 나누고 뺄 것이 없다. 주어와 술어가 서로를 곧게 세워주면서 명료한 문장을 이룬다. 내용과 형식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소설이 또 있을까. 칼의 노래야말로 여백과 암시를 품은 명료한 문장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최명숙 작가님의 문장이다. 간결한 문장들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하고, 문장이 문장을 데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감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성숙했을 때 찾아온다는 점을 대나무에 비유해서 풀어내신 글이 있어 첨부한다. 저자가 말한 문장중심 글쓰기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신규로 발행된 브런치 글 중에서 작가님 글을 매번 먼저 읽게 된다.

성죽재흉, 글쓰기의 진정한 매력 https://brunch.co.kr/@sowoon823/128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주제가 떠오르면 기승전결을 대충 스케치한 뒤 관련 된 모든 내용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마음에 드는 구조나 전개가 떠오를 때까지 이것저것 써보고 지우고 또 썼다. 반면 문장중심으로 글을 쓰니 한 문장으로 인해 글의 방향이나 초점이 바뀌기도 하고 글감을 떠올리게 했던 내용이 제외되기도 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시행착오가 줄어든 덕분에 효율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제를 던져 준 에피소드가 제외됐다는 사실을 글을 다 쓴 뒤에야 알아채는 등 글 쓰는 과정 또한 자유롭고 재밌어졌다.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이 책 또한 수많은 작법서 중 하나기 때문에 문장중심 작법이 定道라거나 우월한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방법이 잘 맞지 않아 글을 못쓰게 된다면 오히려 손해다. 작법서들을 뻔하게 느끼거나, 문장중심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자기 계발서 형식 띠는 시중 작법서와는 전달 방식이 달라서 낯설다. '여러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와 같은 뉘앙스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목차와 구조도 없다. 문장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인지 문장마다 엔터를 쳐서 문단 쓰기를 했다. 수필이라고 생각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여유를 가지고 읽 것이 속 편하다.


후반부 실전문제부터 읽기를 권한다. 저자가 군더더기를 포함한 문장과 어색한 문장을 교정해주기 때문에 명료한 문장 쓰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문장을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접하면 문장중심 글쓰기가 잘 이해될 것이다.


...문장은 생각의 기회이자 한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문장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문장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느낄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느껴지는 감각의 양식 pattern 입니다.

-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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