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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Feb 01. 2023

작가는 문장을 만든다.

「짧게 잘 쓰는 법」 서평

어느 서평보다 부담이다. 짧게 잘 쓰는 법을 읽고 쓴 서평 짧게 잘 써야 할 텐데. 이번 서평은 자유가 아닌 의무처럼 느껴진다.


「짧게 잘 쓰는 법」은 짧은 문장의 이점과 작법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 벌린클링켄보그가 말하는 짧은 문장의 이점은 명료함이고, 저자가 말하는 작법은 문장중심 글쓰기이다. 저자는 명료한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짧은 문장으로도 충분히 명료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고 균형 잡힌 단문으로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시중 작법서는 논리전개를 위한 문단중심의 구조적 글쓰기를 역설한다. 반면 이 책은 논리전개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고 한다. 저자는 주제문 개요를 미리 정해두고 뒷받침 문장들을 그럭저럭 채워 넣는 글쓰기를 지양하라고 한다. 그런 글은 마지막 '요점'으로 독자를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문장중심 글쓰기를 권한다는 점이다. 저자문장마다 리듬과 의미를 다. 다음 문장이 기다려지는 문장다. 시중 작법서강조하는 양식, 구조는 문장이 명료할 때 자연히 분명해진다. 문장과 단락을 초조하 이어 붙이지 않아도 독자는 단락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문장이 명료하다면 문장 사이 여백을 두고, 암시를 놓아도 독자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문장중심 쓰기 위해서는 명료한 문장 하나 쓰고 충분히 생각한 뒤 다음 문장을 이어야 한다. 심려치 않고 구조를 세운 후 중심 문장에 뒷받침 문장을 급히 이어 붙이면 사고가 제한된다. 떠오르는 가능성글에 담을 수 없다. 


저자는 문장 또한 섣부르게 쓰지 말라고 조언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정형화된 문장들로 는 꼴이기 때문이다. 차분히 생각해서 애초에 최종 문장을 쓰라고 조언한다. 사고, 작문 그리고 퇴고가  몸인 듯 글을 쓰는 훈련을 통해 효율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창의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작가의 일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문장이 거듭 떠올랐다. 하나는 칼의 노래 문장. 칼의 노래 문장은 간결하면서 진하다.  '술이 먼 것을 가깝게 당겨주었다.'와 같은 문장들은 진하기 때문에 거듭 풀어 읽는 미가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피천득 수필에 담긴 문장은 간결하지만 담백하다. 적당히 묽기 때문에 풀어 읽지 않아도 된다. 칼의 노래는 더 이상 간추릴 수 없는 본질인 生, 死,  라는 주제를 다룬다. 문장 역시 더 이상 나누고  것 없다. 주어와 술어가 서로를 곧게 세워주면서 명료한 문장을 이룬다. 내용과 형식이 이렇잘 어울리는 소설이 또 있을까. 칼의 노래야말로 여백과 암시를 품은 명료한 문장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최명숙 작가님의 문장이다. 간결한 문장들 하나하나제 역할을 하고, 문장이 문장을 데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감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성숙했을 때 찾아온다는 점을 대나무에 비유해서 풀어내신 글이 있어 첨부한다. 저자가 말한 문장중심 글쓰기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신규로 발행된 브런치 글 중에서 작가님 글을 매번 먼저 읽게 된다.

성죽재흉, 글쓰기의 진정한 매력 https://brunch.co.kr/@sowoon823/128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주제가 떠오르면 기승전결을 대충 스케치한 뒤 관련 된 모든 내용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마음에 드는 구조나 전개가 떠오를 때까지 이것저것 써보고 지우고 또 썼다. 반면 문장중심으로 글을 쓰니 한 문장으로 인해 글의 방향이나 초점이 바뀌기도 하고 글감을 떠올리게 했던 내용이 제외되기도 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시행착오가 줄어든 덕분에 효율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제를 던져 준 에피소드가 제외됐다는 사실을 글을 쓴 뒤에야 알아채는 등 글 쓰는 과정 또한 자유롭고 재밌어졌다.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이 책 또한 수많은 작법서 중 하나기 때문에 문장중심 작법定道라거나 우월한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방법이 잘 맞지 않아 글을 못쓰게 된다면 오히려 손해다. 작법서들을 뻔하게 느거나, 문장중심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자기 계발서 형식 띠는 시중 작법서와는 전달 방식이 달라서 낯설다. '여러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와 같은 뉘앙스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목차와 구조도 없다. 문장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인지 문장마다 엔터를 쳐서 문단 쓰기를 했다. 수필이라고 생각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여유를 가지고 읽 것이 속 편하다.


후반부 실전문제부터 읽기를 권한다. 저자가 군더더기를 포함한 문장과 어색한 문장을 교정해주기 때문에 명료한 문장 쓰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문장을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접하면 문장중심 글쓰기가 이해될 것이다.


...문장은 생각의 기회이자 한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문장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문장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느낄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느껴지는 감각의 양식 pattern 입니다.

-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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