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 아이의 발열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by 글쟁이게이머 L군

아들이 태어나고 돌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장인장모님과 함께 시골집에 내려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내려간 시골에서, 말그대로 ‘갓난아기’인 아들을 안고, 아내의 추억이 담겨있는 뚝방길도 걷고, 돌아가신 아내의 외조부모님께 외증손을 소개시켜드리고, 근교에 있는 맛집에 가서 기분좋게 식사도 하고, 여러모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렇게 저녁이 되고, 슬슬 잘 준비를 하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꺅꺅 거리면서 때를 쓰거나 애교를 부리고 있어야 하는데, 묘하게 얌전하더군요.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피곤한가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들을 재우기 위해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순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입니다.

품에 안은 아들의 몸은 너무나도 뜨거웠기 때문이죠.


당황하면서 확인해본 체온은 38.9도.


정신없이 짐을 챙겨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차로 40분 거리)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아들은 증상이 회복되었고, 자가격리도 잘 해서 옮은 사람은 저희 부부선에서 끝이 나긴 했습니다. 장인장모님은 무탈하셨고요.


물론 자식을 키우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을 처음으로 겪게되니 허둥지둥 할 수 밖에 없더군요.


아들이 나아가는데 아내와 제가 차례로 증상이 나타나니, 우리가 걸려서 아들이 낫나보다~ 그래 차라리 우리가 아픈게 낫지~ 같은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이후 아들은 지금까지 이런저런 잔병치례는 있었지만 제법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제법 오랜만에 열이 조금 나더군요.

나름 익숙한 손길로 해열제를 먹이고, 경과를 지켜본 뒤,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안다고 해서 그 감정까지 익숙해지지는 않더군요.

‘혹시라도’, ‘만에 하나’,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뭐 이런 생각들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고 말이죠.

그런게 부모마음이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저희 부모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들을 키워주셨겠죠.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쨌든,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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