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해부 : 나

내가 죽어 사라져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나라는 존재.

by 이가은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을 잘 알고 있나요?"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멋스럽게 하는 어른이고 싶어 당차게 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입안에 맴도는 생각이 도저히 말로 뱉어지지 않았다. 나는 과연 얼마나 나를 알고 있을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에 더욱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쓴웃음이었다.


평생 나는 내가 궁금했다. 오늘과 내일의 마음의 격차가 커서일까. 도무지 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감정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기에 그 속도를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취미 혹은 습관 등. 아주 간단한 질문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넌 취미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답하는 속도는 1분도 채 되지 않았고 대답에는 확신이 깃들어있었다. 어느 날 그들에게 다른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아니 요즘 행복해? 행복이란 걸 느끼는 것 같아?"

그들의 대답은 역시나 빠르고 간결했다.

"응. 행복한데?"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아는 걸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 걸까. 나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사실로 받아 들 여지고난 후, 내 몸에서 도는 새빨간 피는 어느새 검은색으로 물들어버렸다. 자기 연민에 빠져 이불속에서 헤엄치듯 하루를 살았다. 한심해. 한심하다는 단어를 내뱉었다. 내가 나에게 던진 단어가 벌거벗은 듯 투명했다. 나를 상처낼만 한 수십 가지의 단어들을 다시 내뱉었다. 상처 난 자리에 검은 피가 흘렀고 그것에 절여진 투명한 단어들은 방안을 가득 채워 나를 압박했다. 하루를 나를 미워하는 것에 썼다. 살이 핏줄이 그리고 뼈가 산산조각 난 후 드디어 내가 자세히 보였다. 아주 오랜 시간 나를 알고 싶어 발버둥을 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처참히 무너진 후에야 내가 보인 것이다. 어쩌면 이 과정들이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일지도. 내가 사랑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웠을지도. 지나온 후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감정을 시로, 소설로 옮겨냈다. 승무원이 된 후, 세계를 여기저기 다니며 '추구하는 여행 방식'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 대해 모른다며 우울에 잠식당할 때에 시작한 운동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재즈에 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 쉽게 감동받는 편이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주 길었다.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배운 이후로 지금까지 그 단어에 대한 궁금증이 넘쳐났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한 단어로 말하는듯했다. 본인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어본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내뱉지 못한 것 또한 나를 사랑해서였다.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나를 향한 여정을 밟은 건 스스로를 너무나 아껴서였다. 인간은 자기와 닮은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난 내가 가장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자기와 가장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는 것, 혹은 나의 미래를 꿈꾸며 힘을 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속에서 들끓는 '자기애' 때문이다.


모든 그리움의 시작은 어쩌면

그 공간에, 기억에, 사랑에, 음식에, 사람에

내가 함께했기 때문이었을지도.


그 공간에, 기억에, 사랑에, 음식에, 사람에

담겨있는 나를 미치도록 그리워한 것 일지도.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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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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