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도 먼지도 가득한 방으로 초대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승객분들, 특히나 16시간 정도를 가는 비행에서 승객분들이 너무나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승무원의 휴게공간]이다.
16시간 동안 잠만 자기도 힘든데, 일만 하기에도 힘든 것이 아닌가 우리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감사한 마음들을 안고 우리는 비밀공간으로 향한다. 항공사마다 승무원 휴게공간을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읽기 쉽게 '벙커'라고 말하려고 한다. 벙커를 하면 생각나는 게 이층 침대나 호스텔에 있을법한 커튼이 있는 간이침대들일 거다. 그런 상상이 든다면 그게 맞다. 승무원의 휴게공간은 오로지 간이침대들만 있다. 간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장비들이 갖춰져 있는 침실 같은 공간이다. 암막커튼과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한 산소마스크들이 필수적으로 있다. 이건 모든 항공사가 동일할 것이다. (산소마스크는 사람이 다니는 공간에 다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 자세히 말해봐야겠다.)
이불과 베개도 당연히 있다. 좌석에 있는 스크린도 함께 있다. 그 스크린에 연결할 수 있는 헤드셋도 있다. 암막 커튼을 친 후 안에서 조명을 켜면 잠이 오지 않을 때 책을 읽곤 한다. 다른 승무원들의 패턴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어가 보자면, 나는 대개 자는 편이다. 잠이 들지 않아서 다이어리를 쓰거나 계획을 짜보려고 해도 20분이 채 되지 않아 잠이 들어 버린다. 승무원으로서 일을 할 때에는 시끄럽던 기내가 단번에 조용해진다. 소음 같던 엔진소리가 백색소음이 되어버린다. 전쟁터에서 안전지대로 들어온 안정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나. 일이 끝난 후 동료들과 수다 떠는 시간들도 어쩌면 에너지 소모이다 보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잠에 들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벙커에는 먼지가 많다. 사실 기내 어디든 깨끗한 곳이 없는 게 사실이다. 랜딩 후 기내를 청소하는 시간이 20분 되려나. 아마 더 적을 거다. 그 큰 기내를 단번에 청소한다. 당연히 승무원 벙커를 쓸고 닦을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 비행기가 6년 연식이 되었다면, 벙커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횟수에 제대로 청소를 한 적이 없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벙커 안에서 조명을 켜면 오래된 호텔 방 마냥 먼지가 돌아다닌다. 아주 많이 돌아다닌다. 재채기가 많이 나올 때가 있다.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를 푹 자고 나면 코 안에 딱딱한 코딱지들이 가득 차있다. 그만큼 먼지가 많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마른 일회용 타월 같은 것에 뜨거운 물을 잔뜩 묻혀서 옆에 두고 잔다. 가습효과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날아다니는 먼지들이 가라앉는데 꽤나 효과적이다. 벙커에서 화장한 채로 자고 나면, 온갖 먼지와 건조함으로 폭발한 피지덕에 여드름으로 꽤나 고생한 후 터득한 방법이다.
할 수 있다면, 그냥 짧은 비행을 하면서 최대한 벙커에서 자고 싶지 않다.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벙커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승무원이 되고 난 후 현실을 마주하니 깨달았다.
요즘은 언제쯤 이 답답한 기내를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만 한다. 내 적성에 맞는 건지 고민한다. 승무원으로 일한 지 4년 차. 내가 이 동안에 이 일이 정말 즐거워 다닌 건 아닌 거 같다.
그저 비행 하나를 마치면 3일 정도를 쉰다는 것. 자기 계발의 시간이 많다는 것. 그것들이 매력적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을 해 온 게 아닌, 버텨온 기분이 들어서 고민이 가득한 요즘이다.
폭풍우가 한바탕 몰아치고 나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또렷이 보인다는데
요즘 또렷해지는 중이다.
벙커의 먼지만큼이나 내 길이 잘 보이기 시작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