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찾아서』 에릭 캔델(Eric Kandel)

바다 달팽이 군소의 신경세포

by 현목

에릭 캔델은 단순한 하나의 신경 세포에서 다른 신경 세포로의 신경 신호 전달 기전을 전기 신호에서 화학 신호로 거기서 다시 전기 신호로 이동하는 기전을 바다 달팽이 군소의 신경세포를 이용하여 밝혔습니다. 나아가 해마에서의 단기 기억이 어떻게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느냐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실험을 통해 분자생물학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습관화, 민감화, 고전적 조건화라는 기초적인 단계를 뛰어넘어 의식이 어떻게 조직되어 표출되느냐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후자는 아직까지 미완성입니다만.


이런 고차원적인 분자생물학적 고찰도 흥미로웠고 에릭 캔델의 탁월한 학자로서의 능력도 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학자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빈에서 평범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는 이차세계 대전 중에 나치의 박해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미국에 와서 처음에는 역사가가 되려고 하였으나 의과대학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특이한 것은 그 많은 과목 중에서 정신과를 선택하였느냐는 점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도 프로이트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안정된 임상 의사 대신에 불확실한 신경생리학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의 과학자로서의 일관성 있는 열정도 감명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에릭 캔델이 대학에서 그리고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만났던 무수한 신경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계의 일류였고 그는 그들에게서 수도 없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여기에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에릭 캔델도 다른 학자들을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일류의 학자들과의 환경에서 활동한 그가 놀랍기도 하고 미국이라는 학문적 자유가 몸으로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프랜시스 크릭은 죽기 몇 시간 전까지 의식에 대한 논문의 교정을 보았다는 대목에서는 경건함마저 갖게 합니다.


에릭 캔델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정직함입니다. 어릴 때 그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동성애를 지극히 싫어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동성애를 할까 두려워 잠자리에 하녀를 들인다는 가정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라면 그렇게까지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스트리아 빈에 대해 양가감정을 에릭 캔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빈이 유대인에게 나치보다 더 심한 학대와 굴욕을 주었으면서도 전후에 오히려 피해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독일처럼 정직하게 시인하지 않는 위선을 에릭 캔델은 끝까지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빈의 문화적 풍요함, 지적인 분위기에 대해 그리워합니다.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를 읽기 시작하면서 저는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아니 과학자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그는 미술을 콜렉션(collection) 하고 미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인문학자 수준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불가사의했습니다. 그의 부인 역시 대학 교수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부인도 유대인으로 미국에 온 신분으로 그 둘은 미국에서 맨 몸으로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명한 미술 작품을 콜렉션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언뜻 수긍이 안 갔지만 미국의 경제 환경은 우리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앨든 스펜서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 그 유명한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매주 의회 도서관에서 정기적을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신경 생리학 연구 때문에 미술도 음악도 포기했다고 해도 존경할 것인데 이건 평범한 사람도 하기 쉽지 않은 예술에도 관심과 수준을 보인다는 것을 보고 오히려 질투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너무 불공평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놀랄 것이 있습니다. 자서전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말미에는 용어설명, 주석과 참고문헌, 인덱스가 77페이지나 됩니다. 모르긴 해도 이런 자서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과연 과학자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실 에릭 캔델이란 사람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다가 제가 돌보는 환자들이 거의 기억에 문제가 있는 점에 착안하여 그냥 '기억‘이라는 단어를 쳐서 책을 검색해 보다가 그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저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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