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좀처럼 우는 법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딱 두 번 보았는데, 첫 번째는 아빠가 처음으로 화낸 날, 두 번째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드문드문 목소리가 잠긴 적은 있었지만, 아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는지 알 수 없다.
어쩌다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금방 평정을 되찾곤 했다. 갈색 눈동자에 핏기가 진해지다 사라지면 꼭 무언가를 속으로 삼켜내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소화가 안 된다며 자기 가슴을 그렇게 두들겼다. 무엇이 그리 답답한가 싶었는데, 엄마가 꼭 그리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였다. 붉어진 심정을 그때그때 눈물로 씻어내도 되건만 꼭 아무도 없는 잔잔한 부엌을 찾아 뒤늦게 헹구려는 것 같았다.
반면에 나의 눈은 수도꼭지였다. 울 거리를 찾아, 온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였다. 폭주족이었다. 건수를 잡으면 잘 만났다 싶어 시동을 걸었다. 동생만 예뻐한다고 울고 친구랑 싸워서 울고 약 먹기 싫어서 울었다. 질투 나서 울고 서글퍼서 울고 분에 못 이겨 울었다. 대여섯 살 먹고도 오랜만에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이모가 무서워서 울었다. 이모가 나를 한 번 안아보려고 다가오는데 나는 그에 맞서서 엄마 등을 요새 삼아 공성전을 펼쳤다. 이모가 오른쪽에서 오면 왼쪽으로 도망가고, 왼쪽에서 오면 오른쪽으로 달아났다. 이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아주 울보구나!”
우는 아이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못 받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하지만 종종 선물을 받았으니 산타할아버지는 아량이 넓은 분이다.
시장 안에 장난감을 파는 곳이 있었다. 동물로 변신하는 로봇이 가지고 싶었다. 관절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합체까지 할 수 있는 훌륭한 친구였다. 화려한 상자 안에서 3인의 용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투를 앞두고 나의 출정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화주의자조차 사령관으로 만드는 장엄한 위용이었다.
천진한 동생은 거침없이 인형을 골랐다. 세 개나 집어 아빠에게 건넸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어젯밤이었을까, 아니면 지난 주말이었을까. 부모님이 돈 때문에 걱정 어린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물음에 늘, 너는 몰라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거 사줄까?”
아빠의 말에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 말없이 아빠의 손을 이끌었다. 시장 한 바퀴를 돌아서 다른 걸 가져왔다. 하위 버전인 변신할 수 없는 로봇이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무척이나 들떠서 잠들기 힘들었다. 부모님을 통해 산타할아버지에게 내 염원을 전달했으니 이번에야말로 그 로봇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촌스럽고 귀여운 내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바닥에 요를 깔고 자두색 두꺼운 솜이불을 덮었다. 엄마가 자라고 하기도 전에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착한 어린이’라는 최종 어필이었다. 여느 밤처럼 엄마는 나와 동생의 입술에 뽀뽀해주고 나무로 된 여닫이문을 닫고 나갔다.
잠깐 눈이 감겼나 싶었는데 본능적으로 아침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옆에 누운 동생은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머리맡에는 선물이 없었다. 눈을 비비지 않아도 정신이 또렷했다. 대신 편지가 있었다. 엄마의 글씨체였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글이었다.
‘아들,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신대. 하지만 아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바쁘셔서 그래. 미안해.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선물을 가지고 찾아오실 거야. 대신에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사랑해.’
울보는 울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편지를 원래대로 접었다. 그리고 다시 자두색 두꺼운 솜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내년에 온다는 산타할아버지는 잊기로 했다. 지구 용사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들려고 했지만,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장난감을 사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성인이 되어 독립했다. 먹고 사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걸 알았다. 세상은 차가웠고, 돈은 사나웠고, 나의 방은 자그맸다.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순간에 자두색 이불이 떠올랐다. 깊은 서랍에 그날이 있었다. 엄마가 한 자 한 자 고심했을 편지가 기억 속 촛불이 되어,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조심스러웠을 마음을 천천히 곱씹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일이 그릇될 수 있다.’
‘일이 그릇된다 해도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나면 다음 기회가 있다.’
그 시절, 편지를 못 본 척 다시 누웠던 나는, 두 시간쯤 뒤에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다. 동생과 함께 편지를 읽었다. 당시 나이로 미루어보면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읽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어린 동생이 그 의미를 깨닫기 전에 밥 달라고 외쳤다. 보글보글 국 끓이는 냄새가 났다. 아침밥 잘 먹었더니 새벽의 슬픔까지 소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