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홉 살 인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읽는 동안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 후 위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도서관에서 낡디낡은 책을 빌린 이유는 낡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사랑니를 앓는 남자, 침입자들, 전람회의 그림, 가지 못한 길...' 등 전혀 상관없는 소제목들을 보며 단편소설 모음이 줄 알고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 중편이나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두 번째 장에서 첫 장의 인물이 다시 나오는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고슴도치는 주인공을 일컫는 말이다. 책의 삽화를 그리는 헌제는 아내와 이혼하고 귀여운 딸 유진을 키우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전에 사귀었던 연화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그는 누군가를 다시 만날 생각 없이 살아가는 중이었다. 운동이라곤 하지 않던 그가 어느 날 찾은 수영장에서 동네 약사를 만난다. 어린이풀에서 첨벙대던 둘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을 그만두게 되고 헌제는 수영 강사 명신과 어렵사리 만남을 이어간다. 우연히 만나 작업실에 간 후 명신은 여러 핑계로 작업실을 찾는다.
말 많은 명신이 때로 귀찮을 때도 있지만 갑자기 연락이 없으면 궁금해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두려워하는 고슴도치 헌제이지만 외로움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 법이고, 서로 도움 받고 도우며 사는 게 세상이니까, 그는 친구 핑계를 대며 명신에게 전화를 건다.
딸과 어머니를 먼저 공략한 명신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고슴도치 헌제가 어느새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다. 스키장 이야기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어쩜 이렇게 책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것인지 부럽기만 하다.
에필로그를 보니 10년 동안 이 책을 썼다고 되어 있다. 오래 묵혀 더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일까? 그림 속 귀여운 삽화들을 아내가 그려주었다니 환상의 부부가 아닐까 싶다. 나도 이렇게 행복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