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39회 차
금요일, 태권도 다니고 처음으로 승급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도장 방학과 휴가로 많이 쉰 다음이라 태극 1, 2장을 한 번에 보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 승급심사를 어떻게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여러 자세로 지르기 10회씩, 기본 발차기(앞 뻗어 올리기, 바깥 차기, 안차기, 무릎차기, 앞차기, 돌려차기, 옆차기, 뒤차기, 앞 후려차기, 뒤후려차기)를 한 후 기본 실전 손기술을 보고, 품새와 격파를 한다고 안내장을 보내주셨다. 화요일에 한번 연습하고 수요일에 바이올린 하러 갔다가 늦어 빠지는 바람에 바로 심사 날이라 일부러 15분 정도 일찍 가서 태극 1, 2장을 연습했다. 하필이면 심사하는 날 에어컨이 고장이 나 오랜만에 두꺼운 긴팔 도복에 속에 티셔츠까지 입은 나는 강아지처럼 헥헥거렸다. 마스크 안으로 땀이 흘러내렸지만 겉으로는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이래 봬도 노란띠 유급자니까.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내가 처음 도장에 갔을 때 나보다 조금 먼저 배우기 시작했던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아직 흰띠를 메고 있었다. 끝나고 왜 그동안 안 오셨느냐 했더니 다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도 마른 분이 더 살이 빠져 있어 안쓰러웠다. 이번에 승급 심사받을 분이 더 있는데 대상포진이나 개인 사유로 오시지 못하고 중학생 두 명과 나만 심사를 보았다. 그런데 너무 좋았던 것은 4단인 대학생과 흰띠 선생님이 계속 함께한 것이다. 처음 참여하는 나로서는 118회를 맞은 우리 도장의 승급심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상상도 못 했지만 원래 단수가 높은 수련생이 낮은 수련생의 승급심사를 위해 돕고 응원한다고 하였다. 관장님이 승급심사에 처음 참여하는 나와 흰띠 선생님을 위해 매 단계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마음이 편안했다.
다 같이 기본 동작과 발차기(후려차기는 아직 나에게 어려워 흉내만 냈다), 손기술을 한 후 품새를 했다. 고려와 태백을 하는 유단자들이 먼저, 그리고 이어서 내가 태극 1장과 2장을 했다. 혼자 하는 게 쑥스러울까 봐 옆에서 유단자들이 한 분씩 함께 하셨는데 혹시라도 틀릴까 봐 그들을 볼 틈도 없을 정도로 집중했다. 1장에서 앞서기를 앞굽이로 잠시 하려다 고친 것 빼곤 크게 틀린 동작은 없었지만 동영상을 나중에 보내주시면 엄청 어설프게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유급자들의 뒤후려차기 격파가 있었다. 4단인 대학생부터 3단인 중학생 둘까지 서너 번 만에 두꺼운 송판 격파에 성공했다. 나는 주먹 격파를 했는데 얇은 송판 둘을 겹쳐서 관장님이 들고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잡는 방법도 한몫했던 것 같다. 어쨌든 처음 해 본 격파를 한방에 성공했다. 앞굽이 아래막기 상태에서 주먹을 순간 뻗었는데 손이 하나도 안 아픈데도 송판 두 장이 세 동강 났다. 아이들도 깰 수 있는 쉬운 격파이겠지만 처음 해 본 나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송판을 소중히 가방에 넣어서 집에 가져왔더니 아들이 멋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남편도 송판을 한 번 쳐 본다고 쳤다가 다칠 뻔했다. 넓어야 잘 깨어지는데 좁은 송판은 너무 단단했던 것이다.
다음에 가면 초록띠로 바꿔 주시려나? 너무 기대된다. 다음 심사는 12월로 예정하셨다. 그때는 태극 5장 정도까지 하게 될까? 내년 여름이면 유단자가 될 수 있을까? 1, 2장에 비하면 어려울 것 같아 걱정되지만 한편으로 이것도 했으니 다음 것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승단심사는 국기원에 가서 한다고 하셨다. 태극 1장부터 8장까지 중 뽑기로 고른 걸 하는데 겨루기와 다르게 조금이라도 틀리면 탈락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아직은 먼 이야기다. 천천히 단단히 채워가야겠다. 무언가 조금씩 나아지는 뿌듯함이 태권도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