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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Nov 02. 2022

악기 점검

  며칠 전 국가적으로 너무 슬픈 일이 있었다. 새벽에 사고 소식을 듣고 방마다 가서 아이들이 누워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인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만반의 대책을 마련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 사고 이후 국가 애도 기간이라 많은 행사가 취소된다고 들었다. 금요일에 있을 오케스트라 공연은 앙코르 예정이었던 빠른 트로트 곡만 빼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두 가지 큰 연주를 앞두고 악기를 점검하려고 찾던 중 내가 처음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기독음대 교수님이 대전까지 악기 수리를 다니시는데 화요일에 가시는데 내 걸 가지고 가주시겠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다. 멀리까지 가시는 이유가 악기 수리를 너무 잘하시는 데다가 정직하셔서 금액도 비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주말에 오래 운전해 가며 교수님이 계시는 양평까지 가서 맡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화요일 밤에 받으러 다시 양평으로 갔다. 멋진 첼리스트인 남편 분과 함께 양평에서 아름다운 음악홀 겸 카페를 운영하시며 아직도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하고 계시는,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항상 든든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화요일 밤 오케스트라 연주 전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양평으로 갔다. 낮에 갈 때는 물 든 나뭇잎이 굉장히 예쁜 길이었는데 밤에 가니 한적한 도로가 조금 무서웠다. 교수님 댁 들어가는 길에 가로등이 없어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며 돌아 나왔다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도착하니 너무 예쁜 집이 반가웠고, 교수님이 전화받고 문 앞까지 나와서 반겨주셨다. 악기 케이스를 열고 설명을 해 주셨다. 활 털 갈면서 주인 분이 좋은 활이라 했다고 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브리지가 높아 짚기 힘들다고 했더니 조금 깎아 낮춰 주셨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10분 남짓 하고, 너무 늦을까 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돌아오는 길 졸음이 쏟아져 사탕을 먹으며 천천히 달려왔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아침에 연주를 해보니 내 악기가 맞나 싶게 소리가 좋았다. 활털을 갈아서인지 아니면 브리지를 손봐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앞으로 남은 중요한 연주들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멀더라도 날을 잡아 대전으로 가서 점검을 받아야겠다. 애써 주신 교수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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