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부모님 그리고 태권도 - 태권도 271회 차

by Kelly

막내 이사하는 날이다. 태풍 끝이라 비가 와 걱정되었다. 사용하던 침대 매트리스와 원형 테이블, 의자 둘 그리고 작은 서랍장을 가져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1톤 트럭을 불렀다. 좁은 방에 다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너무 좁아 처분하고 싶으면 중고로 팔기로 하고 일단 다 실었다. 전날 밤까지 자질구레한 짐과 사용하던 이불을 내 차에 다 실어놓았다. (전날 밤 딸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와 누워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트럭 기사 분이 물건 싣는 것을 거의 혼자 다 하시고, 비 오는 날 집까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침대와 아래에 까는 판이 물에 젖어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는 돌아가고 딸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잔금을 넣었는데 연세가 좀 많은 주인 분이 확인이 안 된다고 하시는 바람에 전화통을 붙들고 있으니 딸은 혼자 왔다 갔다 물건을 나르며 힘드니 기분이 더 안 좋아 보였다. 계좌이체 결과를 보내드리고 조금 있으니 직접 통장을 찍고 왔다며 확인했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잠깐이지만 혹시 다른 계좌에 잘못 보냈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짐을 대충 다 올려놓고 다이소에 물건을 사러 갔다. 챙기느라고 챙겼는데도 살 게 많았다. 욕실용품, 주방용품 코너를 돌고 돌아 어느 정도 다 사서 나왔다. 무거운 걸 자기 짐이라고 혼자 들고 방에 가져다 두고는 혼자 천천히 정리하면 된다고 가라는 걸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데리고 나왔다. 밥을 먹으러 가는데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평소랑 다른 목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 일인가 했더니 이번 건강검진 때 위내시경을 했는데 위암인 것 같다는 전화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늘 씩씩하시던 아버지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 돌보랴 조카들 돌보랴 자신을 돌볼 새 없으셨던 아버지가 너무 안쓰럽고 걱정되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도 너무 놀라 위로해 주었다. 아까 짜증 부려 미안하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연신 이야기했다.


일단은 딸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를 하고 바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무척 막혔다. 도착하고 보니 부모님이 안 계셨다. 전화를 하니 엄마 고혈압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하셔서 차로 병원까지 모시고 갔다. 한참을 기다려 같이 들어가 엄마의 약을 처방받고, 동작이 느려지시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게 혹시 파킨슨이 아닌지 올케가 이야기하던 게 생각나 여쭤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두 분이 나가신 후 잠깐 의사 선생님께 아버지께서도 위암이라고 연락받고 월요일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고 하고 혹시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게 되면 진료 의뢰서를 써주실 수 있는지 여쭸더니 안타까워하시며 지금 당장 써 주시겠다고 하셨다. 일단 결과지를 받아와야 하니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부탁드린다고 했다. 너무나 친절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갑자기 울컥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왔더니 아이 일로 일찍 집에 와 있던 동생 내외(부모님과 같은 아파트)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태권도에 그동안 많이 빠져서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는데 동생과 저녁 먹는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어서 도장에 죄송하지만 또 빠진다고 메시지를 하고 같이 식당으로 갔다. 다 큰 조카들 돌보느라 아빠가 고생하시기도 하고 엄마가 방치되시기도 해 미안하지만 시누이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 아이들이 스스로 밥도 챙겨 먹고 설거지도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넌지시 건넸다. 부모님 바로 옆에서 살면서 늘 챙겨주는 게 정말 고맙다는 말도 했다. 월요일에는 동생이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서 잘 듣고 오기로 했다. 수술을 곧바로 잡을 수 있기를. 아무렇지 않게 완쾌되시길 기도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태권도 가면 20분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 도복을 준비하지 못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가는 게 민망했지만 빠지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일단 갔다. 도착해 보니 정말 20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정예멤버 외에도 이번에 대학생이 된 친구가 와 있어 화기애애했다. 나는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발차기를 하고 있었는데 대학생인 친구가 자신도 복장 불량이라고 짝이 되어 같이 다른 분들이 하고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공격, 뒤로 가는 사람이 피하기’를 재미나게 했다. 몇 번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했더니 숨이 가빴다. 다음에는 둘씩 마주 보고 미트 겨루기를 했다. 1분씩 한 명이 미트를 잡고 다른 사람이 미트를 대주는 대로 여러 발차기를 했다. 한 번씩 한 후에는 돌아가며 짝을 바꾸어 두 번 더 했다. 기합 소리와 함께 미트를 뻥뻥 차는 동안 딸과 부모님에 대한 걱정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가 딸이 쓰던 방에 들어가려고 대대적인 청소를 끝내고 거실에 두었던 가구(소파침대, 행거, 책상, 의자 등)를 옮기고 있었다. 밥도 못 먹었다고 해서 비빔밥을 해 주고 도왔다. 12시가 다 되어 거의 정리가 끝났고, 거실은 원상 복귀되어 넓디넓어졌다. 막내와 자주 이야기 나누지 못해 서운하지만 자기 방이 생겼다고 신나 한다. 딸이 다 정리했다고 방 사진을 찍어 보냈다. 물기를 며칠 말리라고 했더니 에어컨을 틀어두어 다 말랐다며 그냥 이불을 그 위에 펴고 잤단다. 곰팡이라도 생길까 걱정되었는데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 걱정을 접기로 했다. 오늘 당장 집 근처에서 하는 아르바이트가 있어 끝나고 집에 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주 오겠지만 갈수록 자기 할 일로 바빠지겠지. 부모님과 아이 걱정 많은 요즘이다. 태권도할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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