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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Apr 08. 2021

국화잎 된장국

치매도 육아처럼 8

 

계절을 모르고 보면 나로서도 쉽게 구별하기 어려운 쑥과 국화잎


 혼자 사시면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어머니는 아파트 담장 주변으로 난 산책길을 매일 한 두 바퀴씩 운동 삼아 걸으셨다.

 봄에는 쑥이 제법 보이기도 하는 길인데 종종 한 움큼 캐다가 밀가루와 버무려 쑥전을 부치거나 쑥국을 끓여 드시기도 했다. 우리가 가면 남은 것을 내놓으며 수확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참 맛있지? 산책하다 쑥 캐서 전 부쳐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해!”

 "네... 맛.. 있어요.. 하하하" 

 맛있다고 대답은 했지만 진정성이라고는 1 없다. 쑥전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무슨 음식인지 몰라볼 만큼 두툼하고 단단한 전의 맛이란...

 그래도 그 전은 암만 맛이 없어도 쑥을 넣어 부친, 쑥전이 틀림없었다. 

 그 해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철 지난 쑥국을 또 주시길래 '냉동했던 쑥인가?' 하며 맛을 보니 쓰기만 하고 쑥향은 조금도 안나는 게 영 이상했다. 그제야 주방을 둘러보니 싱크대 한편에 방금 따온 듯 파릇파릇 싱싱한 자태의 푸른 잎채소가 수북이 담겨 있는 소쿠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앗! 쑥이 아니라 국화잎이었다.

 "어머니! 이건 쑥이 아니고 국화잎인데요?"

 "쑥이야~ 내가 좀 전에 산책하다가 캐 왔어!'

 "아니~ 쑥은 봄에, 국화는 가을에, 지금은 가을이니 국화죠~~."

 "얘는! 아무렴 내가 쑥이랑 국화도 구분 못하겠니?"

  우기는데야 장사 없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힘주어 항변해봤지만 점점 어머니의 분노 게이지만 높일 뿐이었다.

 국화잎에는 독성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것을 쑥으로 오인할지 알 수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남은 국화잎은 집에 가서 전 부쳐먹겠다고 하고 챙겨 온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돌이켜보니 쑥이랑 국화잎은 생김새가 비슷해서 충분히 우기실 만도 했다.

 그때로부터 예닐곱 해 지난 지금은 냉장고를 장롱이라고 하신다. 비싼 옷장에 음식을 넣는 바람에 이젠 옷을 넣으면 냄새가 배어서 큰일이라고 크게 걱정하신다.

 치매는 논리의 자리에 믿음이 착 들어가 앉는 병이다. 어머니는 냉장고를 장롱이라 믿으니 장롱으로 보이고 장롱이라 말할 뿐인데 내가 자꾸 냉장고라고 하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는가!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기어이 이건 장롱이 아니라 냉장고라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리고야 만다.ㅜㅜ




 결혼초, 남편이 지방발령을 받아 이사 가기 전까지 6개월여를 어머니댁 근처에 살면서 일요일이면 어머니를 우리 차에 태우고 교회에 함께 다녔다. 교회에서 돌아오면 자연스레 어머니댁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솔직히 신혼에 주말마다 어머니댁에 가는 것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 주신 음식은 언제나 맛있어서 댓 발 튀어나왔던 입도 제자리로 곱게 들어갔다.

 "우와 어머니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라고 여쭤보면 약간 수줍어하시면서도 자세하게 요리법을 알려주셨는데 그럴 때의 어머니는 살짝 단호하고도 권위있는 요리 선생님 같았다.  평소에도 어머니의 '요리부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집안 내력을 알고 보니 그런 자부심을 가지실 법도 했다. 어머니의 할아버지가 구한말에 참판이셨는데 음식 솜씨 좋은 아내를 두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할머니가 궁궐에까지 불려 가 음식을 만드신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요리법을 며느리에게 물려주셨고 덕분에 손녀인 어머니에게까지 3대째 전수되었다.

 우월한 요리 유전자를 물려받은 어머니의 요리는 참 정갈하고 담백한 맛에 비주얼도 고급스러웠는데

 먹는 데만 급급해서 차근차근 잘 배워두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미슐랭 별점 3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리 허무하게 도둑맞다니...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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