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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18. 2022

신춘문예 후기에 대한 긴 썰(2)

진짜로 될 거예요

(이어서)


아무튼 그 숱한 수치를 딛고 글을 썼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냥 무심한 안부에서 지나가는 격려 사이의 어딘가에 있던 말들이었을 뿐인데

내심 내 자신이 찔렸던 게 아닌가 싶다.

글을 쓰지만 쓰지 않는 척하기도 했고

인정받고 싶지만 인정 따위 의미없는 듯 살기도 했으니까.


신춘에 글을 내고나서 가장 가슴이 요동치는 때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였다.

특히 전국구에 글을 냈던 때는

전국 모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서울...모든 번호를,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모르는 010도 무조건 다 받았다.

샤워할 때도 운전할 때도 소모임 중에도.

심사위원들이 너무 바빠서 혹시 밤늦게 모여 당선작을 결정할지도 모르니까 밤에 오는 전화도 다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너무 너무 바빠서 일요일에 모여 심사할지도 모르니까 주말에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보조배터리를 만땅으로 채우고, 두근두근.


내 노동과 창의의 대가를 받는 것인데 왜 내가 바닥까지 심리적 약자인 걸까, 생각하면서도

일단 뽑아주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마인드가 되어

천지신명께 일단 빚부터 지는 마음으로.


겪어보니 당선 전화는 기자의 휴대전화로 오더라.

한두 번 만에 못 받는다고 당선이 취소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절박하던 때에는 오히려 원하던 벨이 울리지 않았다.

.

.


요즘 글쟁이 커뮤에 가보면

아직도 글을 원고지에 써서 보낸다는 사람들이 있다. 원고지에 쓰면 안 된다. 에이포 종이로 출력해야 한다. 원고지는 매수 계산할 때만 쓴다.

한글프로그램의 문서통계에 들어가면 원고 양이 환산되어 나온다. 의외로 나이드신 분들 중에 이런 팁을 전혀 모르시는 경우도 있다.


당선된 소설은,

바탕체, 10.4포인트, 나머지는 한컴오피스 설정 그대로, 제목은 중간정렬에 보기 좋을 정도의 크기, 약 20~25포인트 사이(글자 수에 따라),

쪽번호 매기고, 원고 끝에 (200자x80매). 끝.

이라 적었다.

표지에는 적으라는 것 모두 적고 클립으로 따로 끼우고,

본문에는 제목과 글만 쓰고 스테이플러로 왼쪽 상단을 찍어 보냈다.


이때는 요상하게, 작품을 딱 쓴 뒤에 필이 왔다.

이건 ㅇㅇ신문사에 보내야겠다는 강한 확신이.

신문사 경향을 분석하지도 않았고 분위기도 몰랐는데도, 머릿속에 그 신문사 이름만이 딱 떠올라서 반짝였다.

나는 그 확신을 믿고 ㅇㅇ신문사에 냈다.

그게 전부였다.

여기저기 내지도 않고, 딱 집중해서 ㅇㅇ신문사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한번 읽는데,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나 너무 잘썼는데!부터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까지 다양한 감정과 후회와 근거없는 자신감이 들면서 기분이 붕 떴는데, 그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수상소감도 미리 쓰고 옷장도 열어보고 상금으로 누구한테 자연스럽게 자랑하며 밥 사지 생각하던 흥빨이 아예 돋지 않았다.

이상했다.


충분히 했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가 없는 글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최선을 다하면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다.


예심평, 본심평 등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데

지인의 경우에는 기사가 올라왔을 때에 이미 당선전화가 돈 뒤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것도 신문사마다 달라서 본심평 기사를 올린 뒤 최종심을 여는 경우도 있겠지만

몇 편이 응모되었다,하는 단순한 집계 기사 말고

그해 응모작들의 경향을 분석한 기사가 올라오면

이미 상당히 심사가 진행된 뒤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보내고 열흘 안에 당선 전화가 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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