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

고칠 필요가 있으면, 오래된 제도라도 바로잡는 것이 좋습니다

by 두류산


3부 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


1장


당하관(堂下官) 이하의 문무 관리가 10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특별한 시험인 중시(重試)가 돌아왔다. 중시가 3월 말경에 치를 것으로 예상되자 도성이 떠들썩했다. 중시는 과거에 급제한 현직 관리뿐만 아니라 관직을 삭탈당한 사람들, 심지어 외방의 수령들에게도 응시 기회를 주었으므로 지방에서 시험을 치르러 일찌감치 한양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로 도성은 북적였다.


조정의 관리들도 중시 준비에 들썩거렸다. 중시는 현직 관리로 시험에 합격하면 정 3품 당상관에 승진시켰으니 조정 관리들에게는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큰 기회였다. 승문원에서도 관리들이 과거 시험공부할 때 보던 책들을 관청에까지 가져와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종직은 승문원의 관리들은 물론 조정의 관리들이 시험 준비에 들떠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심란했다.

‘중시는 선비들이 벼슬길에 오르면 책을 보지 않는다 하여 관리들에게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관리가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당연히 권장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 10년마다 중시를 실시하는 것이 과연 좋은 제도일까?’


김종직은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당상관이 된다? 선비의 학문하는 뜻은 배운 바대로 성현의 도(道)를 실천하는 것이지, 어찌 시험에서 지식을 뽐내고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이겠는가? 이러니 벼슬은 높아져도 행실에 덕이 없는 것이다. 또한 선비들이 어찌 시험을 앞두고서만 책을 넘기는데 부지런해진단 말인가. 중시 제도는 선비들에게 잘못된 인식과 풍습을 심어주는 제도가 아닌가.‘

김종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홍귀달을 찾아 예문관에 들렀다. 예문관은 임금을 가까이하는 사관들이 근무하는 곳이라 승문원과 승정원처럼 궁궐 안에 있었다. 김종직은 반갑게 맞는 홍귀달을 보고 물었다.

“예문관 사관들은 중시가 다가오는데도 차분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오?”


홍귀달은 손을 저었다.

“어전에서 기록한 사초를 보완해야 할 사관이 중시 시험을 준비하느라 초집(抄集)을 보고 있는 실정이오.”

초집은 경전에서 좋은 글귀나 과거에 출제 가능성이 높은 글들을 뽑아 엮은 책이었다.

“조정의 인재만 모이는 예문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려.”

“집도 아니고 관청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경전을 공부하기보다는 초집으로 시험을 대비하는 경박한 풍습을 따르는 것이 더욱 못마땅하오. 선비에게 올바름을 지향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가 중요한 법도인데, 이를 모두 내버리게 하는 중시는 왜 실시하는지......”


김종직이 말했다.

“중시는 중국에도 없었고 과거를 시작한 고려시대에도 없었는데, 태종이 시작했다고 들었소.”

“태종은 왜 중시를 시작했답디까?"

“태종이 하륜을 불러, 장차 조정과 나라의 학문을 이끌 자가 누구이겠는가 물으니, 하륜이 대답하기를 변계량이 인물인데 직위가 낮으니 발탁을 하려면 중시가 필요하다고 처음 거론했다고 들었소.”

변계량은 태종 7년에 처음으로 실시한 중시에 뽑혀 당상관에 올랐고, 세종 때 거의 20년간 대제학을 맡았다.


홍귀달이 다시 물었다.

“발탁이 반드시 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소?”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르면 책을 손에서 떼고 멀리 하니 관리들의 학문을 장려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요. 하지만 벼락치기 공부를 하더라도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욕망은 선비가 가져야 할 품성에 맞지 않는 일이오. 중시를 치르는 것은 오로지 선비들의 마음에 승진을 다투는 폐단만 줄 뿐, 나라에는 이득이 거의 없는 제도라 생각하오.”

“관리들이 평상시에 게으르고 안일하여 학문에 등한히 하다가 시험이 다가오게 되면 초집을 들고 밤낮으로 보고 외우니 그 폐단이 이미 고질병이 되었소.”


김종직은 중시 제도의 문제를 임금에게 아뢰었다.

“중시의 혜택은 너무나 커서 관리들로 하여금 오히려 학문을 익히는 올바른 뜻을 앗아가고, 공명과 부귀만 바라는 생각이 굳어져 요행을 바라고 염치를 모르니, 중시로 인하여 선비의 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선비를 뽑을 때 중국의 한(漢) 나라부터 과거에 의지하였지만 중시는 중국에도 없고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있던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중시를 통해 관리들이 당상관을 희망하는데, 이로 말미암아 선비들에게 지위를 다투는 해로운 기운을 만드니 이를 폐지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그렇다고 하나, 이미 시행한 지 오래된 제도가 아니오.”

“고려 때까지는 없었던 제도였으며 태종 때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변화할 필요가 있으면 과감히 고쳐야 합니다.”


임금이 승지 임사홍을 돌아보며 물었다.

“경은 중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국대전에 3년에 한 번 과거 시험을 보고, 10년에 한 번 중시를 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국대전에도 있는 제도이니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없앨 수 없습니다.”

김종직은 있는 제도이니 고칠 수 없다고 하는 임사홍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임사홍은 젊은 사람이 생각은 훈구대신과 생각이 같네. 법전에 한번 들어가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세세손손 바꿀 수 없다는 말인가.'


김종직은 임금에게 간절히 청했다.

“좋은 정치를 위해 만든 제도이고, 그 제도가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것이고, 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정치를 위해 고칠 필요가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과거를 통하여 선비들을 나라에서 뽑았으니, 전하께서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선비라면 어찌 승진을 위하여 학문을 겨루려고 하겠습니까? 선비의 품위가 허물어짐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마땅히 고쳐야 합니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종직은 다시 아뢰었다.

"전하께서 조정에 있는 관리들의 현부(賢否)를 이미 아시는데, 어찌 다시 시험을 치른 뒤에야 승진을 시켜 벼슬을 다투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외방 수령들이 중시를 보기 위하여 자리를 비우고 한양에 올라온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춘궁기에 식량을 내어주고, 농사철을 대비하여 종자를 나눠주는 일을 고을 수령도 없이 해야 할 것인데, 폐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중시 무과를 치르기 위해 변방의 수령으로 있는 자들도 변경을 비우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를 방어하는 일보다 중시가 더 긴급하다는 말이니, 어찌 이런 일을 조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의 진언을 생각해보겠소.”


성종은 김종직이 물러가자, 임사홍에게 물었다.

“종직의 말이 일리가 있지 않느냐?”

“중시가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법전에도 있고 이미 오래 시행된 제도이니 쉽게 고칠 수 없습니다.”


홍귀달은 김종직이 청한 중시 폐지에 대해 임금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자, 경연에서 아뢰었다.

"과거는 폐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중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법에 있는 제도라고 하더라도 고칠 필요가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학문하는 목적이 벼슬을 높이고 부귀공명을 누리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행을 바라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여 중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욕망과 선비들의 마음에 승진을 다투는 마음을 길러준다면 나라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선비의 품위가 허물어짐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마땅히 고쳐야 합니다.”

“중시는 벼슬에 오른 선비들이 학문을 멀리하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관리에게 학문을 장려하고 책을 가까이하기 위해 만든 뜻이 좋은 제도고 오래된 제도니 쉽게 없앨 수가 없다.”


홍귀달이 다시 청했다.

“선비의 학문하는 뜻이 어찌 중시가 있거나 없거나에 따라 부지런하거나 게을러지겠습니까?”

"김종직도 중시를 폐지하도록 청하였다. 그대들의 말이 일리가 있으나, 법전에 있는 제도이고 관리들의 학문도 장려할 수 있는데, 어찌 쉽게 없애야 하겠는가. 10년 후의 중시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사람들이 중시 볼 날이 곧 다가온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성에 올라와 있다고 하던데, 금번에는 물리려 해도 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성종은 문과 중시 시험장소인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갔다.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에 있는 궁궐의 중심 건물로 조회나 국가적 행사를 하던 곳이었다. 중시에 응시하는 신하들은 모두 임금을 향해 네 번 절하며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응시자들이 자리를 잡자 시험의 책문(策問)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말갈과 접하고 동쪽으로 섬나라 오랑캐와 인접하여 그 방비하는 대책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지금 왜인들이 3포(三浦)에 거처하는 자는 그 무리가 날로 번성해지니, 다 돌려보내고자 한다면 혼란이 생길 것이요, 그대로 두고서 보내지 않으면 장차 도모하기가 어렵겠으니, 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오랑캐를 제어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할 방책을 곰곰이 강구하여 진술하라.”


임금은 중시의 폐지를 주장하던 김종직이 생각났다. 성종은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영의정 정창손에게 물었다.

“김종직이 시험에 응하였느냐?”

“응시자 명단에 없습니다.”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과장(科場)에서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는 응시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창업수성 글 출처)

http://www.hanj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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