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가 수레에 도전하다 (10)

이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 어찌 훈구대신들의 권세는 그대로인가

by 두류산

10장


함양군수 김종직은 백성들에게 좋은 정치를 베풀어, 경상도 관찰사가 해마다 6월과 12월 두 번씩 지방 수령의 근무성적을 평가할 때 항상 최고 등급의 성적을 얻었다.

관찰사의 지방수령 평가는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지고, 각 단계에서도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총 아홉 등급으로 평가하였다. 대개 최고 등급인 상상(上上)을 받으면 승진하고, 반대로 최하 등급인 하하(下下)를 받으면 벼슬을 내놓아야 했다.


성종은 최고 등급인 상상(上上)을 5년 동안 열 번을 연속해서 받은 김종직의 치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임금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이조에게 명하였다.

"함양 군수 김종직은 정치를 잘한 공적이 탁월하니 지방 수령의 임기가 차서 다른 자리로 옮길 때 적절히 상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대사헌 서거정은 이 소식을 듣고 관찰사의 평가를 의심했다.

‘관찰사와 수령의 밀착관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5년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최고등급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실로 의심스러운 일이다.’

서거정은 김종직의 포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렸다.

“관찰사가 제대로 평가를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공적의 평가 이유를 일일이 기록하여서 성상께 아뢰도록 하고, 조정 대신 모두가 그 기록을 인정한 연후에야 포상하는 것이 마땅하오니, 지금 내리신 명령을 거두어주소서.”


임금은 대사헌의 상소를 읽고 답을 내렸다.

"지난 5년 동안 관찰사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중에 십고십상(十考十上)을 하였는데, 경은 어떻게 다섯 관찰사의 평가를 모두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경삼 감사의 장계에서 자주 김종직의 칭찬을 보았다. 얼마 전에도, 관찰사 정효상은 김종직이 정치를 잘하여, 고향을 떠난 유민(流民)들이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사헌부의 의심은 지나치다.”


김종직은 서거정이 포상을 반대했다는 소식을 홍귀달의 편지로 전해 들었다.

“관찰사와 수령의 밀착으로 공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의심했다는 말을 듣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나더이다.”

김종직은 편지를 읽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賞)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상을 바라고 정사를 펼친 것도 아닌데......”


김종직은 조정에서 멀리 벗어나 훈구대신들과 마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개운하고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서거정의 훼방 상소 건은 궁궐에서 그들을 보면서 답답해하던 시절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김종직이 지방 수령의 임기 6년을 마치게 되니 이조(吏曹)에서 사재(司宰)의 정 4품 첨정(僉正)으로 임명하겠다는 계획을 임금에게 올렸다. 사재는 궁중에서 쓰이는 해산물의 조달에 관련된 일을 맡아보는 관청이었다.

성종은 인사 안을 보고 이조를 나무랐다.

“외직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을 우대는 못할망정, 어떻게 모두 기피하는 자리부터 채우려고 하는가?”


성종은 김종직의 재능을 감안하여 적합한 자리에 다시 임명하라고 이조에 명하였다.

“김종직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였고, 지방수령으로 내려가 고을을 잘 다스려서 명성이 높았다. 그를 3품직으로 올려주고, 학문과 문장에 능한 그의 실력에 맞는 직책을 주도록 하라.”

성종 7년 1월, 임금은 김종직을 한 품계 올려서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승문원의 종 3품 직책과 왕이 내리는 글을 짓는 직책인 지제교에 임명하였다.


김종직은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명물인 승문원에 등청하면서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왕도정치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임금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김종직이 도성에 복귀하니 누구보다도 제자들이 반가워했다. 김종직이 함양에서 수령으로 있을 때 과거에 붙은 이인형, 채수, 김흔과 김심 형제, 정석견, 정성근과 함양에서 가르친 표연말, 유호인, 조위도 서울로 돌아온 스승을 반겼다.


이심원은 남효온을 데리고 스승의 집을 찾았다. 남효온은 김종직에게 절을 올리며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해서 한강에 배 띄우고 낚시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좋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학문을 깊이 닦고 싶습니다.”

김종직은 한눈에 남효온의 품성과 자질이 범상치 않음을 알았다. 김종직이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이니, 남효온은 안도했다. 남효온은 이심원을 통해 지난 몇 년 동안 스승에 대해 세세하게 들었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남효온은 평소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문제를 꺼내었다.

“스승님, 소릉(昭陵)이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폐함을 당하여 원혼이 의지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루속히 복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릉은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한 문종의 왕후인 현덕왕후의 묘이다. 단종 복위 계획이 실패로 끝났을 때 세조가 현덕왕후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서민의 묘로 만들었고 문묘에서도 빼버렸다.

이심원은 남효온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릉의 복원을 주장하는 것은 세조의 정치를 나무라는 것이고, 이것은 자칫 반역의 죄에 해당한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남효온은 물론 스승과 자신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었다.


김종직은 남효온을 막으려는 이심원을 눈길로 제지하며 차분하게 답했다.

“하늘에 계시는 문종의 영혼이 어찌 홀로 제사를 받기를 원하시겠는가?”

남효온은 스승이 소릉 복원에 대해 자신과 같은 생각임을 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효온은 조금 더 나아갔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또 하나의 문제를 입에 올렸다.

“스승님은 성삼문, 박팽년 등 어린 임금을 구하려고 정변을 일으키다 죽은 집현전 학사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심원은 남효온을 나무랐다.

“점입가경이구먼! 어떻게 자네는 제자가 된 첫날에 이토록 무례한 질문을 하는 건가?”


남효온은 이심원에게 토해내듯 말했다.

“내가 철들면서 생긴 물음들이네. 스승님은 절의와 충신의 상징인 정몽주와 길재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으셨고 부친께서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던졌다고 자네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남효온은 가슴이 북받쳐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남효온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뜨거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분이시니 감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지, 이런 말을 누구에게 꺼내 볼 수 있겠나?”


남효온은 절규하듯 김종직에게 물었다.

“숙부에게 빼앗긴 어린 왕의 왕위를 찾아주려다 죽은 집현전 학사들은 정몽주와 같이 절의를 지킨 충신이 아닙니까?”

김종직은 그윽한 눈으로 남효온을 바라보았다. 그는 유생 시절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강에 배 띄워서 낚시를 즐긴다고 했던가. 언제 한 번 같이 낚시를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심원이 남효원을 나무랐다.

“자나 깨나 그리던 스승님을 뵙자마자, 어찌 그리 과격한 말만 해대는가?”

남효온은 상기된 얼굴로 멋쩍어하며 물었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심한 말을 했는가?”

“자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하네. 훈구대신들의 세상이 아닌가. 스승님이 자네를 잘 받아 주시는 듯하여 안심은 되었네만.....”

남효온은 꿈을 꾸듯 말했다.

“옛 성인의 풍모를 뵌 것 같았네.”


도성에 돌아온 김종직은 한명회가 대간들에게 탄핵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道)를 상실한 조정이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였다.

‘훈구대신의 우두머리인 한명회를 꺾으면 대개의 훈구대신들도 조정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간들이 매일같이 탄핵하여 수십 년간 권세를 잡아온 한명회의 힘을 꺾는듯하더니 어느 순간 꼬리를 내리고 탄핵을 멈추었다.

‘아무리 탐스러운 붉은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는 꽃이 없듯이, 권력도 십 년 유지가 어렵다 하지 않는가. 세조의 시대가 끝나고 예종을 거쳐 주상이 친정을 하는 시대가 되기까지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어찌 훈구대신들의 세력은 사그라질 줄을 모른단 말인가.’


김종직은 훈구대신들을 견제하려면 이들을 겁내지 않는 곧고 의로운 대간들로 사헌부와 사간원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대간들의 탄핵이 멈추고 한명회의 잘못이 묻히려고 하는데, 갑자기 유자광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로 다시 한명회 탄핵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조정의 관리들에게 유자광의 상소는 큰 화제였다.

김종직도 예문관 직제학 홍귀달을 만나 유자광이 올린 상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귀달은 의경세자의 부묘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유자광이 꿋꿋하게 반대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무령군은 주상이 예종을 계승하였으니, 친부라 하여 회간왕을 높이고 종묘에 모시는 것은 예(禮)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했소.”


김종직이 흥미롭게 듣자, 홍귀달이 말을 이었다.

“처음 답변은 물론, 대비와 임금이 신하들을 압박하며 다시 논의하게 했을 때도 유자광은 올곧게 바른말을 하였소.”

“유자광이 상소에서 대간들을 지적하며 상당군의 위세에 겁을 내어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오. 대간들이 대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조정이 맑아질 것이오.”





(일러스트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509020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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