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을 능멸한 유자광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좌의정 한명회는 돌려받은 상소에 아무런 답이 없는 것에 실망하여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정승으로서 의정부에도, 원상으로서 승정원에도, 그리고 조회에도 나가지 않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한명회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내가 등청하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구나.’
한명회는 집에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관복을 차려입고 궁궐에 나아가 임금을 뵈었다. 임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안하게 맞았다. 한명회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유자광의 상소에 신(臣)을 천하의 간신 양기와 곽광에 견주고 있습니다. 신이 지금 비방을 들은 것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직위에 있기가 민망하므로 자리를 내놓고 대죄(待罪)하겠습니다."
"상당군의 마음을 과인이 어찌 모르겠소? 유자광의 말이 너무 심했소.”
“지나친 말로 정승을 능멸한 유자광에게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합니다.”
“말이 지나치다 하여 어찌 죄를 물을 수가 있겠소?”
성종은 승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당군이 마음에 분개한 점이 있는 듯하다. 술과 안주를 내려 주니, 그것을 같이 들며 위로하여 풀어주도록 하라.”
한명회는 편전에서 물러나면서 다시 한번 임금을 모욕하고 재상에게 죽을죄를 옭아맨 유자광에게 죄를 묻기를 청했다. 성종은 목소리를 낮추며 담담하게 말했다.
"유자광이 비록 과인을 진의 이세 황제와 걸(桀)과 주(紂)에 견주더라도 스스로 살펴보아서 자신만 올바르면 되지 않겠소.”
중국 하(夏) 나라의 걸왕과 은(殷) 나라의 주왕은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요임금과 순임금에 대비되는 폭군의 대표적인 왕이었다.
한명회는 사직시켜 달라고 말하며, 자신과 유자광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압박했으나, 임금은 유자광을 벌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한명회에게 간신 조고에 견주면, 스스로 자신이 올바른지 살피라고 은근한 경고를 내린 셈이었다.
도승지 유지는 한명회에게 음식을 대접하여 위로하고 보낸 후, 임금에게 나아와 아뢰었다.
“무령군이 실언한 상당군의 말꼬리를 잡아, 너무 과하게 공격하는 듯합니다.”
“유자광의 말은 꾸밈이 없다. 어떻게 보일까 눈치를 보지 않는 마음가짐을 과인은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유자광이 상당군을 공격하면서 전하를 진(秦) 나라의 이세 황제, 한(漢) 나라의 질제(質帝)와 같은 군주에 비유한 것은 지나쳤습니다.”
“무령군의 말은 거칠고 때때로 지나치나,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환갑이 넘은 상당군이 이번 일로 십 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였습니다.”
임금은 자신의 경고를 받고 처진 어깨로 편전에서 물러나는 노대신(老大臣)을 떠올렸다. 임금은 환관 안중경을 불러 명했다.
“내일은 내가 내려주는 술을 가지고 상당군의 집을 찾아 위로하고 오라.”
한명회는 임금이 내린 술을 받아 들고, 안중경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대간들이 내가 대비께 한 말을 탄핵했으나, 지난번에 주상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고 어서(御書)를 내리시며 나의 마음을 하늘과 땅이 안다고 하셨으니, 그 글을 받들고 감격하여 얼마나 울었던지......”
한명회는 안중경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하였다.
“유자광이 나와 전하를 두고 지록위마라고 했소. 유자광이 없는 말을 가지고 나를 모함하려고 전하를 진나라의 이세 황제에 견주니, 이를 어찌 옳다고 하겠소?”
안중경은 한명회를 위로하며 말했다.
“전하께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글을 써서 주십시오.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한명회는 지필묵을 꺼내 임금에게 다시 한번 유자광의 죄를 묻기를 청했다.
"유자광이 조고의 간사함과 양기가 반역한 것과 곽광이 권력을 전횡한 화(禍)를 신(臣)에게 비유하였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천하의 역적으로 입에 올릴 수가 없고 귀에 들을 수도 없는 자입니다. 유자광이 신(臣)을 이런 간신들과 견주어 죄와 허물을 얽어서 씌우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종은 안중경이 궁궐에 돌아와서 올린 한명회의 글을 펼쳤다.
“신(臣)은 나이가 들어 이미 쇠약해지고 또 발이 불편하여 여러 번 사직을 청했으나 끝내 윤허를 받지 못하고 시위소찬(尸位素餐)하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신을 불쌍히 여겨 신의 무거운 직책을 해임하여 몸을 보전하게 하여 주신다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시위소찬은 하는 일 없이 공짜로 녹(祿)만 먹는 것을 말했다. 시위(尸位)는 시동(尸童)의 자리를, 소찬(素餐)은 공짜 밥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어린아이를 조상의 신위에 앉혀 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시동은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성종은 환관 안중경에게 말했다.
“상당군은 기어이 유자광을 처벌하기를 원하는구나.”
성종은 상소 말미에 답을 써서 승정원에 내려주게 하였다.
"일전에도 경이 사직하기를 여러 번 청하였으나 과인이 윤허하지 않았소. 과인의 생각을 받들지 않고 굳이 사직하고자 한다면 이는 잘못이오. 어찌 다시 말하는 것이오?”
1476년 성종 7년 3월 1일, 한명회에 대한 탄핵의 불티가 도승지에게 옮겨 붙었다.
정 5품 사헌부 지평 성건(成健)은 경연에서 한명회의 죄를 다스리도록 임금에게 아뢰었다. 도승지 유지가 성건의 말에 개입하였다.
“유자광이 상소에서 인용한 조고와 양기 등의 고사는 지나쳤습니다. 신은 실로 가슴이 아픕니다.”
성건은 도승지가 말을 가로막자, 임금에게 더 이상 간(諫)하지 않았다.
사헌부 대간들은 경연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도승지를 규탄했다.
“성 지평이 한명회를 탄핵하니, 도승지가 임금이 묻지도 않았는데 한명회를 구원하려고 꾀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신에게 아부하는 것입니다.”
“한명회에 대한 유자광의 공격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니,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까?”
“언관(言官)이 대신의 죄상(罪狀)을 임금에게 아뢰는데 후설(喉舌)의 우두머리가 되어 대신을 구원해 주려고 비호하는 말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후설(喉舌)은 목구멍(喉)과 혀(舌)를 가리키는 말로 임금의 중요한 명령을 받들어 말하는 신하라는 뜻으로 승지(承旨)를 일컫는 말이었다.
정 4품 사헌부 장령은 성건을 나무랐다.
“도승지의 눈치를 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다니! 성 지평은 사헌부 전체를 대표하여 경연에 참석하였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성건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헌부 관리들은 뜻을 모아 도승지를 탄핵하였다.
“유지(柳輊)는 임금의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는 내신(內臣)의 우두머리로서, 조정의 공론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터인데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명회에게 아첨하면서 전하를 속이는 것입니다. 청컨대 그를 국문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성종은 유자광의 한명회 탄핵 상소가 도승지 탄핵으로 확대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승지 유지는 성종이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되었을 때부터 승지가 되어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여 누구보다도 가깝게 여기는 신하였다.
‘유자광의 말이 지나치다고 도승지가 한 말을 가지고 정승에게 아첨하고 임금을 속인다니, 사헌부가 도를 넘는구나.’
성종은 붓을 들어 상소의 말미에 답을 내렸다.
"크게 불가(不可)하다."
(창업수성 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