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승이 임금에게 조선 유학의 계보에 대해 아뢰었다
배가 망망대해를 항해하면 거리감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항해 길에 섬이 보이면 아득히 넓은 바다라 할지라도 거리감을 얻는다. 칠흑의 밤하늘에 별이 떠 있으면 무한한 하늘일지라도 공간감을 느낀다. 조선의 오백 년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그렇다. 조선은 나라의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정치와 사회의 모든 분야를 선비들이 주도한 선비의 나라였다. 조선 역사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선비들은 밤하늘의 별과 바다의 섬 같은 역할을 한다.
1569년 선조 2년, 좌승지 기대승이 경연에서 임금에게 조선 유학의 계보에 대해 아뢰었다.
"성리학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말씀드리면, 정몽주가 동방 성리학의 시조이고, 길재가 정몽주에게서 배우고, 김숙자는 길재에게서 배웠습니다. 김종직은 김숙자에게서 정몽주의 학문을 전수받았는데 행실 또한 바르고 단정했으며 후진을 가르치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김종직의 제자가 김굉필이었고, 조광조는 김굉필에게 배웠습니다."
선조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사림의 스승이라 불리는 김종직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길재는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경상도 선산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이때 선산에 살던 김숙자는 12세부터 길재에게 배웠다. 김숙자는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의 교수가 되어 유생들을 가르쳤고, 학문에 뛰어나 세자의 스승으로 가장 먼저 추천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은 당대 최고의 학자인 아버지 김숙자에게 글을 배웠다. 김숙자는 어린 김종직이 글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보는 책의 제목을 짚으며 정확하게 읽는 것을 보고 명석함에 놀랐다.
김숙자는 아들이 더 자라기를 기다려 6세가 되자, 비로소 글을 가르쳤다. 먼저 천자문을 익히게 하였다. 김숙자는 아들에게 하루에 열여섯 자씩 뜻을 가르쳐 주고 암기하게 하여, 다음날 아침에 제대로 알았는지 확인해보았다.
김종직은 어린 나이에도 새벽닭이 우는 소리에 일어나 찬물 세수로 잠을 떨쳐낸 후,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익히며 아버지의 시험에 대비했다.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나자, 김숙자는 그동안 배운 글자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불시에 시험을 보았다.
김종직은 이백여 자를 모두 기억해서 써 내려갔다. 아버지가 놀라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 글자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느냐?”
"전에 배운 것을 매일 다시 익혔습니다.”
"매일 수십 자, 나중에는 수백 자를 계속해서 다시 익혔더냐?”
김종직은 맑은 눈으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매일 전에 익힌 것을 전부 눈으로 살피며 알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배운 것을 어떻게 익혀야 할지, 선생인 나보다 더 잘 아는구나.”
김숙자는 공부를 대하는 어린 아들의 특별한 모습에 감탄했다.
김종직이 천자문을 모두 익히자, 김숙자는 《소학(小學)》을 가르쳤다. 김숙자는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소홀함이 없도록 경계하였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반드시 책상을 정돈하고 책을 똑바로 놓은 다음, 몸을 바르게 하여 책을 대해야 할 것이다.”
김숙자는 초롱초롱한 아들의 눈망울을 보며,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책은 소중히 다루어 더럽히거나 구겨서는 안 될 것이며, 독서를 마치게 되었을 때는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책을 덮어 정리한 후에 일어나야 할 것이다.”
김숙자는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서에는 눈으로 하는 독서, 입으로 하는 독서, 마음으로 하는 독서가 있다.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눈이 글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읽어도 대충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할 수가 없으며 기억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독서를 하는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마음으로 하는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모으면 눈과 입이 자연히 집중되지 않겠습니까.”
김숙자는 책을 읽는 기본과 더불어 글자를 쓰는 기본도 지도하였다.
"글자를 쓸 때는 벼루를 단단히 잡고 단정하게 갈아 먹물이 손에 묻지 않도록 하고, 붓을 높이 잡아 손가락이 붓털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 자 한 자 분명하고 단정히 써야 할 것이다.”
어린 종직은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종직이 <소학>에 입문하자 기뻐하며, 매일 배운 것을 읽어달라고 청하였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글 읽는 것이 대견하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종직은 매일 어머니에게 <소학>의 한 장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드렸다.
김종직이 열 살 되던 해에,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다가 대문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대문을 열어보니,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었고, 주변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까지 거의 열 명쯤 되는 한 가족이 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밤새 비가 와서 비를 피하느라고 대문의 처마 밑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이었다.
김종직이 아버지에게 달려가 말했다.
"아버지, 손님이 왔습니다.”
김숙자는 노복을 시켜 대문간의 사정을 살피게 하고, 아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그 사람들은 북방 함길도 땅으로 가는 백성들이다.”
"그들은 왜 고향을 등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까?”
"북방 변경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심하다. 이들을 막으려면 빈 땅으로 두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야 하겠기에 나라에서 이주시키는 것이다. 함길도 가면 좋은 땅을 얻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들었다.”
김종직이 아버지에게 청했다.
"소학에 이르기를 ‘손님이 찾아오거든 접대를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우리 집 대문에서 하룻밤을 지냈으니 어엿한 손님입니다. 아침이 되었으니 먼 길 떠나기 전에 식사를 대접하여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숙자는 어린 아들의 조리 있는 말과 따뜻한 마음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김숙자는 노복을 불러 말했다.
"집에 손님이 왔으니, 아침상을 준비해서 드리라고 일러라.”
식사를 마치고 가족을 대표하여 할아버지가 김종직을 찾아 인사를 했다.
"어린 선비님 감사합니다. 덕택에 고향을 떠난 지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먹었습니다. 장차 어른이 되시면 꼭 과거에 급제하여 백성들을 보살펴 주세요.”
김종직은 그들이 떠나간 뒤에도 과거에 급제하여 백성들을 보살펴 달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김종직은 아버지가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들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제자들은 스승인 김숙자에게 길재 선생에 대해 물었다.
"주상께서 정몽주 선생과 길재 선생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충신 목록에 포함시키도록 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길재 선생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왕이 명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백성들이 널리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삼강의 세 가지 덕목은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식은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군신·부자·부부의 도리를 말했다. 모든 사람이 알기 쉽도록 매 편마다 그림을 넣어 행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김숙자는 제자들에게 스승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태종이 세자 시절, 일찍이 성균관에서 함께 배웠던 스승님을 도성에 불렀다. 당시 임금이신 정종은 세자인 태종의 청을 받아들여 스승님에게 벼슬을 내려주었지. 하지만, 스승님은 태종을 만나 벼슬을 사양하였단다.”
"어떤 말로 사양하였습니까?”
"스승님이 말씀하기를, ‘저는 저하와 더불어 성균관에서 함께 경전을 읽었는데, 지금 저를 부른 것은 옛정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기억하고 부르셨으니, 올라와서 뵙고 곧 돌아가려 하는 것이요, 벼슬을 하는 것은 저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태종께서 바로 허락하셨습니까?”
김숙자가 답했다.
"아니다.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김종직은 아버지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태종께서 말하기를 ‘그대가 망한 고려왕조를 위해 군신관계의 도리를 말하면, 의리상 뜻을 꺾기는 어렵다. 그러나 부른 것은 나요, 벼슬을 내린 것은 주상이시니, 주상에게 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정종에게 고하셨습니까?”
"그렇다. 스승님은 임금에게 글을 올렸다. ‘여자는 두 남편이 없고, 신하는 두 임금이 없는 법입니다. 원하옵건대, 신을 놓아 보내 고향에 돌아가게 하여, 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뜻을 이루게 하고, 효도로 늙은 어미를 봉양하게 하여 남은 생을 마치게 하소서."
제자들은 스승이 들려주는 길재 선생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꿋꿋한 태도와 절의에 숨을 죽였다.
"그래서 임금께서 허락하셨습니까?”
"임금이 스승님의 상소를 보고 권근에게 물었다. ‘길재가 망한 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키고자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겠다고 거역을 하니 불충이 아닌가. 어떻게 처치해야 옳은 것인가?’”
제자들이 물었다.
"권근이라면, 개국공신이면서 대제학이셨던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다. 권근 대감은 임금에게 아뢰기를, ‘벼슬을 주어도 수락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 낫습니다. 한(漢) 나라의 광무제는 어릴 때 같이 공부한 엄광을 불렀으나, 엄광은 사양하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비가 진실로 뜻이 있으면,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아버지 바로 앞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김종직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김숙자는 말을 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임금은 스승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고려가 망한 지가 이미 오래이나, 길재가 옛 임금을 위하여 절의를 지켰다. 명성을 뜬구름 같이 여기고 벼슬을 헌신짝 같이 보아 초야에서 몸을 마치려 하니, 충성심과 절의가 있는 선비다.’라고 하며 스승님을 칭송하였다.”
"임금이 낙향을 허락하시어 스승님이 길재 선생에게 배울 수 있었겠습니다.”
"스승님의 고향이 선산이었던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김숙자가 웃으며 답하자 제자들이 따라 웃었다. 김숙자는 웃음기를 지우고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선비에게 충성과 절의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것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김종직은 길재 선생이 임금에게 당당히 아뢰었던 말을 오랫동안 되뇌었다
‘신하는 두 임금이 없는 법입니다. 신을 놓아 보내, 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뜻을 이루게 하소서.’
김종직은 아버지가 제자를 가르칠 때 같이 배우며, 학문적으로 나날이 다달이 일취월장 성장하였다. 《소학》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역사서에도 관심을 가져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즐겨 읽었다. 《춘추좌전》은 중국 최초의 편년체 역사책으로 춘추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공자의 《춘추》를 해설한 책이었다.
왕조와 인물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는 역사서는 밖에서 노는 것보다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김종직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공자는 많은 저술을 하셨는데, 왜 역사책까지 지었을까요?”
김숙자는 아들의 뜻밖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길게 답했다.
"공자는 도(道)가 가득 찬 세상을 바랐지만, 세상은 어지러운 시대여서 오히려 도가 점점 쇠잔해졌다. 심지어 신하가 의리를 저버리고 군왕을 죽이는 일까지 생기자, 공자는 ‘안 된다! 안 된다!’ 탄식하면서, 이를 후세에 경계하고자 《춘추》를 지으신 것이다.”
김숙자는 어린 아들이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춘추》는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밝히고, 옳지 않은 삶은 산 사람들을 준엄하게 나무랐다.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들이 두려워하였다.' 하였고, 역사가인 사마천도 '《춘추》를 읽고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들이 두려워했다.' 하였다. 공자처럼 도리를 중히 여기며 매서운 붓끝으로 역사를 집필하는 방식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한다.”
역사 서술에서 필법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역사가의 평가를 뜻한다. 김숙자는 아들에게 말을 이었다.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기에 역사를 기록한 책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이나 《통감강목(通鑑綱目)》과 같이 거울이란 뜻의 감(鑑) 자를 쓰지 않느냐.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당연히 악덕과 부끄러운 일은 징계되고 억제되는 것이다.”
《자치통감)>은 중국 송나라의 사마광이 펴낸 중국의 역사서이며, 《통감강목》은 주자가 쓴 역사서로, 기존의 역사책들을 유교적 입장에서 압축하여 춘추(春秋) 필법으로 저술한 책이다.
김종직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는 거울처럼 지난 시대를 비추니, 훗날 누군가가 춘추필법으로 우리의 행적을 밝히더라도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숙자는 주자가 쓴 《통감강목》 필사본을 꺼내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김종직은 역사책을 받아 한참을 가슴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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