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게 태어났으니 귀하게 태어난 사람보다 겸손하기는 실로 어렵다
유자광은 젊은 임금이 어진 임금이 되도록 보필하는 것이 최고의 충성이라고 생각하였다. 유자광은 관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책에 임명되었거나, 제주도나 함길도 등 물길이 위험하거나 궁벽한 곳의 지방수령에 임명되었을 때 이를 기피하거나 사직서를 내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나라가 내리는 직책이 귀하지 않은 것이 없거늘, 글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대부의 염치는 어디에 내던져 버린 것인가.’
유자광은 이를 바로잡고자,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지금 전최(殿最, 근무평정)의 법은 최하의 평가를 받아, 오늘 파직을 당해도 내일 다시 좋은 벼슬을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대부가 파직을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으며, 심한 자는 오늘 스스로 원하여 전(殿, 최하 평점)이 되어 파직되었다가 다음날 청요직(淸要職)의 벼슬을 얻기도 합니다. 또 주어진 직(職)이 기대에 못 미치면 일부러 사직하고 좋은 벼슬을 기다렸다가 받으니, 이것이 어찌 국가가 인사(人事)를 하는 법도이겠습니까?”
전최(殿最)의 법은 관료들의 근무상태를 조사하여 무능한 자를 내치고 유능한 자를 승진시키기 위한 근무평정의 법이었다. 최상을 맞으면 최(最)가 되고, 꼴찌가 되면 전(殿)이 되었다.
청요직은 청직(淸職)과 요직(要職)을 합한 말로, 깨끗하고 중요한 직책이라는 뜻이었다. 청요직은 대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삼사(三司)의 관리가 주축을 이루고 여기에 이조와 병조의 인사업무를 하는 낭관, 예문관의 사관이 포함되었다. 청요직은 문과 급제자들 중에서도 학문과 문장이 높은 관리들로 구성되었고 경연 등을 통해 왕을 자주 만날 수 있어 관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책이었다.
유자광은 이러한 병폐에 대한 대책도 덧붙여 아뢰었다.
"엎드려 원컨대, 지금부터 내직으로는 백관들과 외직으로는 수령과 만호(萬戶, 종 4품의 무관 벼슬) 가운데 파직을 당하는 자나, 혹은 까닭 없이 사직하는 자는 연한을 정하여 다시 임용하지 아니하여, 전최(殿最)의 법을 무겁게 하여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지도록 하소서.”
예종은 유자광의 말을 존중하고 귀담아 들었다. 임금은 이조에 명하였다.
"파직을 당하거나 사직한 자는 연한을 정하여 기한 내에 다시 임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도성 밖 용산(龍山)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靑坡)에서 도적이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하여 민심이 흉흉해졌다. 유자광도 호위 군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듣게 되었다.
"용산에 살며 우마차를 끌고 도성에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차부(車夫)들이 도적들에게 당했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차부들이 날이 어두울 무렵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도성 밖을 나와 청파에 이르렀을 때 도적의 무리들이 갑자기 나타나 차부의 옆구리를 찔러서 즉사시키고, 달아나는 한 차부의 등을 화살로 쏘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한 후 도망갔습니다.”
"왜 그들을 재빨리 잡아서 백성들의 마음을 안심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냐?”
"청파와 용산 일대가 너무 넓고 도성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 포도청이 군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색을 늦추고 있다고 합니다.”
유자광은 분개하였다.
"도성 가까이에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하였는데, 미적거리다 도적을 놓치면 도성을 왕래하는 백성들은 불안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유자광은 이런 실태를 임금에게 즉각 아뢰어 바로잡게 청했다. 예종은 유자광의 보고를 받고 승지들을 나무랐다.
"도성 근처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대들은 어찌 그리 태연한가?”
예종은 겸사복 손계량에 명하여 당장 도적들을 잡아오게 했다. 손계량은 군사 백 명을 거느리고 가서 청파 근처에 숨어있던 도적 다섯 명을 붙잡아 불안한 민심을 안정시켰다.
나라에 세운 공으로, 1품의 재상이 된 유자광은 전후좌우로 네 명의 장정이 메는 가마인 평교자를 타고 집을 나섰다. 가마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7명의 구사(丘史)와 10명의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행차하여 어떤 조정 대신의 행차보다 화려하였다. 유자광의 가마가 길을 나서면 ‘길을 비켜라!’는 구사들의 우렁찬 호령에 멀리서도 백성들은 엎드리고, 앞서 가던 다른 가마들도 길을 터 주어 먼저 지나가게 했다. 유자광은 가마 위에 앉아서 행차에 나서면 자신이 언제 얼자 신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였나 싶었다.
조정의 관리들은 유자광이 수시로 조정의 사정을 긴밀히 임금에게 전하고, 자주 임금에게 상과 치하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궁궐에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인사하는 관리들도 보이고, 대신들도 먼저 말을 걸었다. 조정의 관리부터 대신들까지 태도를 바꾸어 자신을 귀하게 대하니 유자광은 싫지 않은 투정을 했다.
"겸손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겸손은 군자가 수양을 하여 마지막에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 하지 않았겠나.”
하루는 유자광이 평교자를 타고 집을 나와 궁궐로 향할 때, 구사의 외침에 길을 막힌 늙은 선비가 뱉은 말이 귀에 꽂혔다.
"의기양양한 모습이 안자(晏子)의 마부 같군.”
유자광은 노 선비의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여 궁궐에 도착하자마자 우참찬 윤필상에게 물었다.
"대감, 안자의 마부 같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유자광은 갑사 시절에 올린 상소를 당시 도승지였던 윤필상이 세조에게 전해준 일을 늘 고맙게 여겼다. 윤필상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안자(晏子)가 하루는 수레를 타고 외출하였는데, 머리 위에 큰 양산을 펼쳐 햇빛을 가리고 채찍을 휘두르며 네 필의 말을 모는 남편의 거동을 마부의 아내가 보니, 의기양양하여 매우 거만하게 보였네. 아내는 마부가 집에 돌아오자, ‘안자께서는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도 외출하실 때 보니, 항상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마부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우쭐거리고 있으니 보는 내가 부끄러웠어요.’ 하였다네. 그 후로 마부는 크게 깨닫고 항상 겸손한 태도를 취하였다고 하는 고사일세.”
윤필상의 설명을 들은 유자광은 아버지의 당부를 떠올렸다.
"스스로 높이면 오히려 낮아지는 법이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
하지만 유자광은 천한 신분에서 재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스스로 낮춘다는 것은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면 겸손하기는 오히려 쉬울 게야. 천하게 태어났는데 재상이 되어서도 몸을 낮추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
유자광은 혼자 중얼거렸다.
"재상의 관복을 입었지만, 천한 출신은 속일 수 없다고 조롱할 것 아니야. 빌어먹을, 그러니 어찌 몸을 낮추고, 겸손할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