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에 이름을 쓰게 한다면, 역사를 곧게 쓰는 사람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세조가 승하하자 실록 편찬 작업을 위해 실록청이 만들어졌다. 김종직도 이조좌랑을 겸하면서 실록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는 춘추관 기주관으로 임명되어 실록 편찬 작업을 거들게 되었다.
신숙주, 한명회, 양성지 등 훈구대신들은 대거 실록청 당상으로 임명되었다. 실록청의 당상은 대체로 영의정이 겸임하는 영사, 좌의정과 우의정이 겸하는 감사, 판서 급이 겸하는 지사, 참판 급이 겸하는 동지사, 6 승지와 홍문관 부제학 및 대사간이 겸하는 수찬관으로 구성되었다. 당하관은 편수관, 기주관, 기사관을 겸임하여 실무 작업을 하며 실록청 당상을 보좌했다.
원상(院相)인 홍윤성이 아침 조회를 앞두고 빈청에 모인 훈구대신들에게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행 왕의 실록이 만들어지면 우리들이 선왕을 모시고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만세의 기록에 남게 되겠습니다.”
원상은 국왕이 병이 깊거나 나이가 어려 섭정을 행할 때, 승정원에 머물면서 원로대신들이 국정전반에 걸쳐 정책결정에 자문으로 참여하던 임시 직책이었다. 세조 13년 왕의 병중에 도착한 명나라 사신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신숙주와 한명회 등의 원로대신을 승정원에 나와 일을 보게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예종 즉위년에는 원상을 확대 편성하여, 신숙주·한명회·구치관·박원형·최항·홍윤성·조석문·김질·김국광의 9명으로 구성하였다.
영의정 한명회는 홍윤성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관들이 대감의 좋은 일만 기록했을 것 같소?”
공조판서 양성지도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대행 왕이 국가의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결단을 하셨는데, 젊은 사관들이 엄중한 상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기록하였을지.....”
예조판서 임원준이 훈구대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감들이 모두 실록청 당상이니 문제가 있는 사초들의 기록은 거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명회가 나무라듯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오. 일단 사초에 오르면 실록에 남길지 논의를 하겠지만 대행 왕이나 우리 대신들을 나쁘게 기록하였다고 역사의 기록을 쉽게 배척할 수는 없는 일이오.”
양성지도 한명회를 거들었다.
"대행 왕께서도 문종대왕 실록을 편찬할 때, ‘옛 부터 사관이란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니, 춘추관에 말하여 문종대왕에 대하여 혹시 잘못을 말한 곳이 있더라도 삭제하지 말라고 하라’고 말하시며 그대로 싣도록 명하셨어요.”
훈구대신들은 헛기침만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젊은 임금은 부왕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실록청을 설치한 후, 선왕의 일을 사관들이 어떻게 기록했는지가 마음이 걸렸다.
예종은 도승지를 불러 명하였다.
"노산군이 선위를 한 시기와 계유년 정난(靖難) 때의 승정원일기를 내전으로 들여오시오. 과인이 한 번 살펴보려 하오.”
계유년 정난은 단종 1년에 수양대군이 원로대신인 황보 인과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하여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말한다.
임금은 물러나는 도승지 권감에게 추가로 말했다.
"또한 성삼문과 박팽년 등 집현전 역도들의 역모사건 기록도 올리도록 하시오.”
예조판서 임원준은 임금이 승정원일기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짚이는 바가 있었다. 임원준은 어전에 나아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궁에서 키우던 말을 하사해 주셔서 감읍했사옵니다.”
"예판은 대행 왕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도록 주관하였고, 대행 왕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도 잘 치렀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기억하지 않겠소.”
임금이 치하의 말을 하자, 임원준은 마음먹었던 말을 꺼내었다.
"대행 왕 시절에 사관을 역임한 모든 이들이 실록청에 사초(史草)를 제출할 때, 사관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판은 어찌 그리 생각하오?”
"사관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필을 해야 하는 것이니, 사초에 이름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 사관의 책임감을 높이는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예종은 이심전심으로 임원준이 말한 뜻을 알아차리고, 기뻐하며 승정원에 명했다.
"실록청은 선왕 시절에 사관을 역임한 모든 이들이 기록한 사초(史草)를 거두어들이고, 반드시 사관의 이름을 써서 제출하게 하시오.”
사초는 두 부가 작성되었는데 하나는 예문관에 보관하는 사초이고, 또 하나는 사관들이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서 작성하여 집에 보관하는 가장사초(家藏史草)였다. 가장사초는 조정이나 민간에서 듣는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세평(世評) 등을 종합하여 자신의 의견을 적을 수 있었다. 임금이 승하하여 실록청이 설치되면 선왕 시절의 사관들은 가장사초를 실록청에 제출하여야 했다.
세조 때 사관이었던 원숙강(元叔康)은 사간원의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실록청이 만들어지자 기사관으로 실록 편찬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다. 원숙강도 사관이 이름을 써서 사초를 제출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름을 쓰지 않고 사초를 제출하는 것이 관례인데, 갑자기 바꾸다니...... ”
원숙강은 사간원의 간관으로서 어전에 나아가 아뢰었다.
"사(史)는 직필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사초를 거두어들이면서 사관의 이름을 쓰도록 하였는데, 사초는 국가의 일은 물론, 대신들의 선악과 잘잘못도 모두 기록한 것입니다. 사관의 이름을 써서 사초를 제출하게 한다면 사관들이 대신들의 원망을 얻을까 염려해서 직필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하옵소서.”
"실록을 편찬하는 것은 선왕의 공덕을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는 이러한 사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사관이 대신들의 일을 바르게 쓰지 못할까 염려하니 어찌 된 일이냐?”
"대신들은 모두 실록청 당상이 되어 사초를 살필 터이니, 어찌 사관들이 대신들의 원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관들이 엄정하게 직필을 할 수 있도록 명을 거두어 주소서.”
임금은 원상들을 돌아보며 의견을 구했다.
"경들의 생각을 말해보시오.”
한명회가 나서서 아뢰었다.
"실록의 편찬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이고, 사초에 이름도 예로부터 기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옛사람도 썼는데,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원숙강이 다시 나서서 아뢰었다.
"만약 사초에 이름을 쓰게 한다면, 역사를 바른대로 쓰는 사람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바르게 적지 않으면, 이것을 어찌 공명정대한 역사라 하겠습니까. 청컨대, 사관의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하옵소서.”
원숙강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초에 이름을 쓰게 하면 기록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는 훈구대신들에 의해 무시되었다. 예종은 세조의 즉위 과정 등 여러 가지 사건을 사관들이 엄정하고 비판적으로 쓸까 염려하여 사관의 이름을 밝히라고 명했고, 세조와 운명공동체인 훈구대신들도 사관들의 붓끝을 둔하게 하여 신랄한 비판을 억제하려고 예종의 명에 적극 동조하였다.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던 관청인 봉상시(奉常寺)에서 종 4품 첨정 벼슬을 하던 민수(閔粹)도 선왕 때에 사관을 지냈으므로 집에 보관하고 있던 가장사초를 책으로 묶어 실록청에 제출하였다.
실록청에서 사초의 접수를 담당하던 예문관 봉교 이인석이 책 표지에 이름을 적게 하자, 민수는 당황하였다. 실록 편찬을 감독하는 한명회와 양승지 등 여러 대신들을 비판한 내용이 있어 이름을 써넣기가 주저되었다. 얼마 전에 법이 바뀌어 제출하는 모든 사초에 이름을 적어서 내도록 되어있다고 하니, 민수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제출하였다.
민수는 사초를 제출하고 나오면서, 실록청의 당상관들이 자신이 쓴 사초를 읽을 것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신경이 곤두서서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쓴 사초를 대신들이 읽으면, 반드시 앙갚음을 하려 할 것이야.’
민수는 날이 밝자마자 실록청의 이인석을 찾아가 제출한 사초를 잠시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사초에 기세가 등등한 대신들을 욕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있네. 틀림없이 그들이 읽게 되면 나를 원망할 것이니, 이를 지워버리거나 고쳐 쓰고 싶네.”
강직한 이인석은 민수의 요청에 펄쩍 뛰었다.
"어쩌려고 이토록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까? 사관이 친척이나 친구의 청탁을 들어주어 흔적을 없애려는 자는 참(斬)한다는 지엄한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아닙니까!”
"사초를 없애는 것은 아니네. 조금 고친 후에 다시 가져다 놓자는 것이니, 제발 부탁하네.”
이인석이 자신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청을 들어주지 않자 민수는 얼굴을 붉히며 돌아섰다.
“저런, 고지식한 자를 보았나!”
민수는 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있는 가까운 벗인 기사관 강치성을 찾았다. 강치성은 민수가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할 때에 같이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를 한 막역한 사이였다.
강치성도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다가, 민수가 워낙 절실하게 말하자 제출한 사초를 빼내어 민수의 소매 속에 넣어 주었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