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다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025년 10월 20일 10시 20분 다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주말 간 기침을 밤새도록 해서 월요일에 집 근처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입원할 수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수의사의 조언으로 숨을 잘 못 쉬는 다롱이를 데리고 저녁에 큰 동물병원에 갔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올해부터 특히 숨을 거칠게 쉬고 물을 마시면 기침을 하고 계속 토하던 다롱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 병원에 데려갔으면 더 오래 살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 있다. 기침을 재외 하곤 평소와 다름없이 잘 먹고 별다를 것이 없어 보여서 병원에 갈 필요를 못 느낀 것 같다.
다롱이의 마지막은 가슴 뭉클하다. 병원에서 집에 데려가기 위해 산소방에서 내게 온 순간, 나를 본 순간 바로 심정지가 왔다. 다롱이의 눈을 보지 못했지만 순식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마지막 다롱이를 본모습은 산소방 안에서 날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입원을 시키지 않고 집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아내를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이 마음에 걸린다.
2024년 2월 12일, 설 마지막 연휴에 럭키를 안락사 시킨 뒤 상실감과 슬픔으로 힘들 때 다롱이가 많은 위안이 되고 힘이 됐다. 그래서 다롱이와의 이별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항상 다롱이는 아빠랑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나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고 나만 바라보는 친구였다. 항상 밝게 웃어주고 지치고 힘들 때 옆에서 위로가 됐다.
함께한 시간이 햇수로 12년이다. 2024년 6월 25일에 태어나서 내게 온 다롱이는 입양을 한 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내 무릎으로 올라왔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다롱이의 행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딜 가나 내가 있나 없나를 살피는 다롱이는 내게 정말 많은 사랑을 줬다. 다롱이가 내게 정말 많은 사랑을 줬다는 걸 다롱이가 떠나고 나서 알게 됐다. 다롱이가 떠난 뒤 다롱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으며 내게 남은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그래서 더 허전하고 슬픔을 느끼는 것 같다.
말썽도 거의 피운 적이 없다. 함께 자란 럭키가 골든레트리버의 호기심 가득한 성격으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닐 때 다롱이는 럭키를 지켜보다 내게 오던 강이지였다. 그리고 장난감보다는 먹을 거에 집착을 해서 장난감을 사줄 필요가 없었다. 산책과 간식이 다롱이에겐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져주는 것을 참 좋아했다. 다롱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살이 쪄서 푸짐해진 등판과 엉덩이는 두들기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다롱이와 보낸 마지막 하루는 다롱이에게 마음껏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한 하루라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다롱이의 건강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해, 고마워, 다 잘될 거야, 아빠가 지켜줄게."라고 계속 말해줬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다롱이를 만져주며 사랑해 와 고마워를 계속 말해줬다. 그래서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다롱이의 마지막 날 사랑을 듬뿍 주고 내 마음을 표현해서 다롱이도 행복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숨을 거둔 다롱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 하룻밤을 더 함께 지냈다. 물론 살아있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집에서 하루를 더 지내게 해주고 싶었다. 마치 다롱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다롱이를 많이 불렀다. 움직임이 없는 다롱이를 보면서도 다시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됐다. 다음 날 다롱이를 강아지 화장터로 데려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화장을 했다. 김포에 있는 '포포즈'라는 강아지 장례식장이었다. 아내와 함께 다롱이에게 주는 마지막 편지도 쓰고 다롱이를 쓰다듬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울었는데도 눈물이 나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마음을 진정시켰다가도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다롱이는 고통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났을 텐데 계속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게 다롱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느끼는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으로 인해 나오는 눈물을 아직도 주체하기 어렵다. 3마리째 이별을 하고 있지만 이별은 항상 괴롭고 힘들고 어렵다. 12년 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너무도 많고 소중해서 상실감이 더 큰 것 같다. 내 20대 후반과 30대를 함께한 다롱이와 럭키, 그 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내 삶과 마음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도 10년을 럭키와 다롱이와 함께했다. 아내 역시 럭키와 다롱이와의 이별에 많이 힘들어했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롱이와 함께 산책하던 길이기 때문이다.
다롱이의 유골은 아직 우리 집 거실에 있다. 포포즈에서 다롱이의 사진을 출력해 줘서 유골함과 함께 거실에 놓아두었다. 다롱이의 사진과 유골함을 보면 눈물이 나오지만 아직은 유골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뿌려주지 못했다. 2주까지는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좀 진정되면 뿌려주려고 한다. 다롱이와 산책을 하며 함께한 길가와 공원 나무에 조금씩 뿌려주려고 한다. 나무들을 보며 다롱이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롱이가 나무에 깃들어 좋아했던 산책길을 잊지 않고 행복해하길 바라는 바람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
다롱이와 이별한 지 2일이 됐지만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다롱이를 화장한 당일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 차에 있다가 다롱이와 함께 산책한 길을 걸었다. 다롱이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다롱이의 부재를 실감하는 것이 두려웠다. 오늘 아침엔 침대에서 나오기가 두려웠다. 항상 침대 앞에서 맞이해 주던 다롱이가 없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다롱이의 존재가 내겐 컸다. 12년간 내 삶의 일부였고 내 일부로 느껴질 만큼 사랑했고 소중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엔 집에 들어가야 하는 두려움이 있다. 다롱이가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해 줄 것만 같고, 불 꺼진 집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다롱이가 있을 땐 항상 불을 켜놨는데 오늘은 불을 끄고 나왔다. 익숙해져야 할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앞으로 다롱이와 럭키에 대한 기억을 가득 가지고 살아가겠지만 그들과 교감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고 슬프다. 다롱이에게 꿈에 자주 나타나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직 꿈에 나오진 않았다. 가급적 자주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 다롱이와 럭키와 함께 산책도 가고 뛰어놀고 싶다. 그리고 쓰다듬고 만져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 고마운 다롱이와 럭키가 여전히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자주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내 옆에 평상시처럼 앉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의 일부로 내 곁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별은 항상 어렵다. 이번 이별을 통해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성장할 내가 기대된다. 다롱이와의 이별을 통해 확실히 배운 건 평상시에 표현을 자주 하고 교감을 자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든 소중한 친구에게든 자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다롱이와의 마지막 날 다롱이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다롱이가 편안히 갔을 거란 마음이 든다. 때늦은 후회도 적다. 표현을 자주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
아직 다롱이와 럭키와의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좀 더 익숙해지고 일상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움이 크다는 건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롱이를 지극하게 사랑한 시간들이 다롱이에게 기쁨과 행복이 됐으리라 믿는다.
"다롱아, 정말 고마워, 그리고 정말 사랑해. 우리 또 만나자! 다시 만날 땐 내가 힘차게 뛰어갈게! 그리고 꼭 안아줄게! 사랑해 다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