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오경석, #013 16세의 출세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by 연결고리

청년 시절 읽기


#013 16세의 출세와 그를 부러워해야 다른 이유



청년 오경석은 16세에 역과(譯科)에 합격합니다. 비록 양반에게 천시되던 기술관이었지만 학문적 배경과 경제적 뒷받침은 양반 가문 못지않았습니다.


오경석의 이른 출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학습 분위기와 경제적 여건이 제공되었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텐데’라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2020년 기준 청년층에 해당하는 MZ세대 내의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 격차는 무려 35배나 됩니다. 이런 양극화는 부의 대물림에 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1)


또 다른 통계에서는 소득계측 상위 50%인 아버지의 표본을 분석한 결과, 자녀의 학력이 1년 증가하면 부자간 부의 대물림 확률은 5.7~7.0% 증가한다고 합니다. 반면 소득계층 하위 50% 아버지의 표본을 분석한 결과 자녀의 교육 연수는 빈곤의 대물림 확률과 관련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말은 지금의 교육이 금수저가 금수저로 남는 데는 유용하지만,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데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2)


이런 이유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사회조사’ 결과에서는 19세 이상 인구 중 우리 사회에서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과 25.2%인 반면 계층 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려 60.6%였습니다.3)



이것이 지금의 시대 역경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상황이 이렇다면 시대에 순응하고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요?
둘째, 오경석과 같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성공할 자신이 있나요?
셋째, 개인적 출세와 사회적 기여 중 무엇을 더 부러워해야 할까요?
넷째,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다음, 그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싶습니다.


첫째, 불합리한 시대에 순응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 개인의 능력보다 ‘출신’을 중요시하는 ‘신분제도’가 정착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며, 불합리를 개선하려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다음 시대에는 자신과 자신의 후손은 더 가혹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불합리한 상황일수록 더욱 포기할 수 없고, 도전해야 합니다.


둘째, 더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통계로 나와 있지만,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성공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 시대 가장 최고의 환경을 누린 사람은 ‘왕’이었지만, 그 왕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나 학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자녀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부모의 후광에 기대어 현재 상황을 버티고 있는 것뿐입니다.


오경석이 출세한 이유는 통역관 최고의 지위에 올랐던 아버지의 ‘철저하고 엄격한 교육 방식’을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이 많아 풍족하면 더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대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보다 떨어진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개인적 성공보다 ‘사회적 기여’를 더 부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적 출세는 사람들이 쉽게 부러워하지만, 사회적 기여는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회적 기여를 시도하거나 그런 일에 종사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존경하는 마음에 앞서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입니다.


역사에서도 그렇습니다. 이회영처럼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거나 경제적 곤궁에도 민족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배고픔을 견딘 독립운동가가 있는 반면, 많은 재산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재산을 얻기 위해 일제에 붙어 민족을 배반하거나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고 일제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밀정이 존재합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압니다. 단지 ‘개인의 욕심’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오경석은 좋은 환경에서 젊은 나이에 출세하지만, 그는 재물을 탐닉하거나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인삼 무역으로 개인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돈으로 중국에서 교유를 쌓은 사상가들을 위해 구하기 힘든 책을 사서 선물하거나, 지인들의 개화사상 형성을 위해 역시 자비로 세계지도·자명종 등 신문물을 구입하여 나누어주었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의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의 정책에 동의하면서 개인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에게 개항을 건의하다가 개항가로 지목되어 멸시받고, 자신이 양성한 개화파가 훗날 정변을 일으키자 오경석의 가문은 탄압을 걱정해 피난을 가기도 합니다.4)


청년 오경석이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지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조선의 개혁은 더 늦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경석이 부러움을 사야 하는 이유는 16세의 이른 출세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 때문이어야 합니다.


넷째, 부를 대물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공을 이루었다면 그 성공이 지금의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시대의 불평등을 불평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성공을 경험한 이후에는 자기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은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것이고, 그런 사회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이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저 전근대적인 신분사회가 될 뿐입니다.


자녀에게 부가 아니라 여러분의 ‘역량’을 물려주기 바랍니다. 나의 자녀뿐 아니라, 이 사회의 자녀 모두가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공동체 전체를 신뢰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유혹을 포기한다면 다음 세대의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좀 더 공정한 환경에서 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 오경석이 포기한 것은 바로 그런 개인의 욕심이었습니다.


따라서 ‘더 좋은 학습 분위기와 경제적 환경이 제공되었다면...’이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청년 오경석처럼 공동체를 위한 신념을 갖고 실천하고 있는가’를 반성하면서 그의 삶을 부러워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혹시 ‘오경석, 도대체 왜 그랬어? 그냥 현실에 안주하면 자자손손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뭐 하러 그런 어려운 길을 걸어갔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아본 적이 없어서 그 느낌을 모르겠지만, 돈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고 더 많이 늘리고 싶은 유혹이 크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청년 오경석이 지닌 결단이 있기를 응원합니다.




청년을 위한 역사


1) 논설실, 「[사설] MZ세대 자산 35배 격차 ‘아빠 찬스’통한 부의 대물림 증거」, 아시아타임즈, 2021.10.11
2) 배문숙, 「‘개천 용’ 옛말…교육이 ‘금수저’ 대물림 부채질」, 헤럴드 경제, 2018.1.8
3) 여헌우, 「빈곤의 대물림···성인 54% "자식세대도 계층이동 어렵다"」, 에너지경제, 2021.11.17
4)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38·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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