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1860년. 30세의 나이에 베이징에 파견된 오경석은 충격인 상황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두 번째 일어난 아편전쟁에서 청이 또다시 최종적으로 패배한 것입니다.
조선 사신단이 베이징을 방문하기 2개월 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베이징 인근에 진출했으며, 청의 황제는 수도를 벗어나 피난을 가고, 결국 베이징조약이 체결됩니다.1)
베이징조약이 체결되기 2년 전, 청은 서양 연합군에 이미 패배하여 외교사절의 베이징 상주 허용, 추가 개항, 크리스트교 인정, 배상금 부과, 추가 개항 등의 굴욕적인 내용을 담은 톈진조약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청이 이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자 서양은 다시 청을 공격한 것입니다.2)
당시 베이징에 진출한 서양 군대는 원명원을 철저히 약탈합니다. 원명원은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황실 정원으로 그 크기와 경치, 화려한 문화재로 이미 서양에까지 명성을 얻고 있었던 곳입니다. 서양 군인들은 이곳을 약탈할 때 어느 것을 가져가야 할지 몰라 금을 갖기 위해 은을 버리고, 다시 주옥이 박힌 시계와 보석을 갖기 위해 금을 버렸다고 합니다.3)
베이징조약은 톈진조약의 내용을 보충·수정한 것인데 그동안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던 서양 외교관의 베이징 상주가 허용되면서 서양은 청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청 정부와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추가 개항, 막대한 배상금 부과, 영토 할양, 몰수한 천주교 재산 반환 등의 조약 내용은 1차 아편전쟁 패배에 이어 청의 국제적 위신을 더욱 추락시켰습니다.4)
이런 상황은 중국인에게는 물론이며 베이징을 방문한 조선 사신단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신단은 청 황제를 만나 보지도 못하고 베이징에 체류한 후 귀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 사신단의 정사는 귀국 후 왕에게, 오랑캐가 화평을 빼앗았고, 외국의 침입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황제의 수레도 피난을 떠나 천하가 난에 빠져 있다고 보고합니다.5) 그리고 귀국 다음 해 조선의 부패 정치로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납니다.
당시 청년 오경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며 민감한 정치 현안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가문의 보전에만 신경 쓰자는 유혹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2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3년 후 고종이 왕이 되면서 흥선대원군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흥선대원군은 오경석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에 사신단을 파견할 때 정사, 부사가 누군지 상관없이 오경석을 함께 파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오경석은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를 개혁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 집권 후 3년, 청년 오경석이 36세 되던 1866년,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신자를 탄압하는 병인박해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탈출한 프랑스 선교사는 중국에 있던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에게 조선에 보복할 것을 요청합니다.
프랑스 사령관은 병인박해를 조선에 통상을 요구할 기회로 삼습니다. 이렇게 프랑스에 의한 조선 침공이 준비되자 조선 정부는 청에 사태 해결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정세 탐지를 위한 사신단을 베이징에 파견합니다. 이 사신단에 청년 오경석이 다시 합류합니다.6)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더욱 강화하였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갑니다.
사신단이 베이징에 도착하자 청은 조선이 프랑스인 선교사를 처형한 일이 있는지를 문의합니다. 당황한 사신단은 이 문제를 두고 논의하였는데, 역관의 우두머리인 당상역관은 병인박해의 사실을 숨기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청년 오경석은 이미 청 정부와 중국인 다수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와 사달이 나면 그때 청 정부와 다시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그 주장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오경석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7)
프랑스는 어떤 협상이 있더라도 조선을 침공할 작정이었고, 조선은 천주교 박해를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중인 청년의 정세 파악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 혼자서 역사적 위기를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49쪽
2) 함규진, 「제2차 아편 전쟁(애로호 전쟁)」, 『전쟁사』, 2013, 네이버 지식백과
3) 「톈진조약」·「원명원」,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편, 『강좌중국사5』, 지식산업사, 1989, 60-61쪽
4) 「베이징조약」,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5)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49쪽
6)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69쪽
7)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