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신돌석, #055 러일전쟁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Ⅲ

by 연결고리


시대 읽기


#055 러일전쟁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 지배권을 두고 일으킨 전쟁이지만 이 두 나라와 얽혀 있는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그 영향력이 만주와 한반도에 미치게 되자 일본은 처음에 ‘만주는 러시아가 차지하고 한국은 일본이 점령한다’는 기본 입장을 러시아에 표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열강은 러시아의 중국 진출에 반대합니다. 그러자 일본은 러시아의 만주에 대한 단독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서양 열강과의 협조 하에 한국 지배뿐 아니라 중국 분할에도 참가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영국과의 제휴를 모색합니다. 그리하여 러일전쟁 발발 2년 전 영일동맹을 체결합니다.1)


프랑스는 자신의 동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과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프랑스는 독일의 동쪽에 위치한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이 필수적이었으며, 러시아가 일본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독일을 견제해주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반대하는 영국과의 동맹과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러일전쟁은 근대적 총력전이었고, 러시아·프랑스동맹과 영국·일본 동맹 사이의 국제전이라는 관점에서 0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2)


러일전쟁은 근대적 총력전이라고 했는데, 대략 러시아가 130만 명, 일본은 120만 명이 참전했고, 일본은 청일전쟁 사망자의 6.5배에 달하는 8만 4천 명의 사망자를 냅니다. 일본은 전비로 19억 8,400만 엔을 투입하는데, 이는 청일전쟁 대비 8.5배가 넘는 비용이었고, 대부분을 미국과 영국의 차관(12억 엔)에 의존합니다. 일본의 재정 규모에 비해 너무 큰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전쟁 후 국민의 세금 부담률은 청일전쟁 이전의 4배로 치솟게 됩니다.3)


청일전쟁 당시 선전포고 없이 청을 기습공격한 일본은 러일전쟁 때에도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으로 전쟁을 시작하여 초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초반 승리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이때 미국의 중재로 두 나라는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합니다.4)


당시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였고,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밀약을 체결하였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러일전쟁을 중재하여 세계평화를 이룬 나라가 되었고, 미국 대통령은 그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니5), 서양 열강의 비열한 정치 활동에서 대한제국과 같은 약소국의 처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일본 모두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각 나라는 모두 전쟁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츠머스 조약에서는 청일전쟁 때와 달리 러시아의 배상금을 명시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은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켰고, 전쟁을 이끌었던 일본육군 출신 총리와 내각은 사퇴하게 됩니다.6)


러일전쟁 기간 중 일본은 중립을 표명한 대한제국을 협박하여 보호국화하는 작업을 충실히 진행합니다. ‘한일의정서’에 이어 일본이 추천하는 고문을 임명할 수 있는 ‘제1차 한일협약’ 체결이 그것인데, 이 때문에 재정에는 일본인 메가다와 외교에는 미국인 스티븐스가 각각 고문으로 임명됩니다. 메가다는 조선의 화폐를 일본의 화폐로 교환하는 화폐정리사업을 주도하여 일본에의 경제 종속화를 야기한 인물이었고, 스티븐스는 미국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찬양하다가 장인환·전명운에게 저격당하여 목숨을 잃은 인물입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의 영향력 확대는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는 민중의 저항을 일으켜 일본의 요구를 좌절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일본을 반대하는 단체는 강제 해산됩니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시기 대표적인 친일 단체인 일진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진회는 ‘제1차 한일협약’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고문정치에 만족하지 않고 친일적인 민의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에 러일전쟁 때 일본군 통역을 담당한 송병준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단체입니다. 이들은 을사늑약 체결을 앞두고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위임함으로써 국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고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의병 탄압에 앞장서고, 정부 탄핵 문제를 제출하여 정부를 공격하였으며, 한·일 병합을 청원하는 등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히 한 악랄한 매국 단체였습니다.7)


이렇게 친일 단체가 꿈틀대는 상황에서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은 영국·미국·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 비해 들어간 비용과 인력은 막대했지만, 러일전쟁으로 얻은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를 보호국화하여 전쟁의 손해를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의 흉측한 계략은 1905년 을사늑약의 불법 체결로 드러납니다.



1) 「영일동맹」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 문종현, 「프랑스 파견무관(attaché militaire)이 본 러일전쟁: 제0차 세계대전에서제1차 세계대전으로」, 『HOMO MIGRANS』 21, 이주사학회, 2019.11, 86쪽
3) 문종현, 「프랑스 파견무관(attaché militaire)이 본 러일전쟁: 제0차 세계대전에서제1차 세계대전으로」, 『HOMO MIGRANS』 21, 이주사학회, 2019.11, 86쪽
4)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4, 인물과 사상사, 2007, 47쪽
pmg 지식엔진연구소, 「러일전쟁」,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네이버 지식백과
5)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4, 인물과 사상사, 2007, 132·143쪽
6) 신효승, 「러일전쟁 이후 일본육군의 팽창과 徵兵 管區 변화」, 『학림』,43, 동북아역사재단, 2019.3, 43쪽
7) 「일진회」,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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