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19세의 서양은 동아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한 발전을 이루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서양의 기술 문명 발전은 서양 국가 내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약소국의 ‘약탈’을 거름 삼아 이룩한 발전입니다.
따라서 서양의 기술 발전을 부러운 눈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번영에만 기여했다면 칭송할 일이지만 그들의 행위는 약소국의 삶을 ‘명백하게’ 파괴했습니다.
서양의 성장만을 추종하게 된다면 이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발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돈을 잘 벌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기업이 있다면 혹시 약자에 대한 착취나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시기의 서양은 결코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서양은 자신들의 부정한 잘못을 인식했는지 자신들의 약탈 행위를 정당화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시민혁명 당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하늘에서 부여된 ‘인권’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서양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배층에게 차별하지 말라며 일으킨 것이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부인권을 주장했던 그들이 어떻게 유럽 이외 다른 지역을 차별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내세운 것이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은 ‘열등’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열등의 수준이 얼마나 낮기에 천부인권을 부정할 수 있는 걸까요?
서양이 생각하는 유럽 이외 지역의 열등한 수준은 ‘동물’에 가까운 원시적이고 미개한 수준을 의미합니다. 즉 서양 이외 지역의 인간은 인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인식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문명을 이룩한 서양의 인간에 의해 지배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 왜곡된 시각을 표현한 말이 바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입니다. 이것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한 개념이면서 그가 저술한 책의 제목인데, 이 말은 ‘오리엔트(동방)를 보는 서양의 왜곡된 인식’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왜곡된 인식에 따르면 서양은 발전되고 합리적이고 도덕적이지만 동양은 미개하고 불합리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할 수 있었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었습니다.1)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된 일본 역시 이런 오리엔탈리즘을 답습하여, 자신들을 동아시아의 ‘서양’으로, 반면 조선을 미개하고 낙후된 ‘식민지’로 인식하였습니다. 거기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것이 조선에 은혜를 베푼 행위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양은 서양 이외 지역의 열등함을 ‘인종주의’에서 찾았습니다.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사람을 잡아다가 대중 앞에 전시하는 ‘인간동물원’을 만드는 만행을 벌입니다. 동물원 안에 갇힌 사람은 열등한 인종이고, 이를 관람하는 인종은 우월한 인종이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호텐도트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사르키 바트만의 사례입니다. 사르키 바트만은 19세기 초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아프리카 여성으로, 살아있을 때는 런던과 파리 유흥가에 전시되었고, 죽어서는 ‘열등한 인종의 표본’으로서 박제가 되어 2002년 유해가 반환되기 전까지 무려 187년 동안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됩니다.
사람과 오랑우탄의 혼혈로 소개된 멕시코 인디언 여성 줄리아 파스트라나의 사례나 진화가 덜 된 종족으로 소개된 피그미족 오타 벵가의 사례도 식민지의 인종적 열등함을 강조하는 데 사용됩니다.2) 20세기 초 일본 역시 일본에서 열린 박람회에 조선인을 전시하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3)
이런 사례들 때문에 기술 문명의 발전 척도로 각 문화권의 우열을 비교할 수 없으며, 기술 문명이 뛰어나다고 해서 약소국을 약탈하는 만행을 정당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양은 선진국, 우리나라는 동물 수준의 미개한 나라라는 그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와 ‘문명’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문화는 인간 생활의 총체로 각 문화권은 그 문화권 고유의 가치를 지니므로 그 우열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기술의 발전 정도를 나타내므로 우열을 따질 수 있습니다.
문명만을 기준으로 사람이나 국가 수준을 평가하게 되면 그 존재의 고유 가치를 무시하고 ‘원시’, ‘미개’라는 저급한 말로 상대를 깔볼 수 있게 됩니다. 최신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오래된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요? 이것이 우리나라 식민지화 과정을 문명이라는 기술 발전의 시각에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1) 「오리엔탈리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 김지혜, 「19세기의 인간 전시, 호텐토트의 비너스」, 『뜻밖의 세계사』, 네이버 지식백과
3) 허진석, 「[에세이 오늘] 에펠탑과 박람회」, 아시아경제, 201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