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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n 14. 2022

별 명

네가 부르면 사랑이다.

 “귀요미, 아들 일어나요!”

 잠자는 아들 옆 살포시 온기를 나눠 갖고 싶어 살을 맞대며 누웠다. 살이 제법 오른 통통한 볼살이 귀엽다. 손이 닿으면 통통 튕겨지는 탱탱한 볼기짝을 토닥이며 깨운다.

 꼼지락꼼지락 보조개를 볼살에 감추고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내 옆으로 더 붙어온다.

 아들은 어떤 별명보다 ‘귀요미’라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별명이란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에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보통 놀림으로 많이 이용하다 보니  별명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은 스스로 귀엽다고 인정하니 ‘귀요미’로 불리는 게 좋은가보다.


 내 어릴 적에도 또래 친구들을 생김새나 이름 등에서 연상되는 모습에 빗대어 불렀다. 나도 외모와 관련 있는 싫어하는 별명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큰 포도밭이 있었다. 항상 배부르게 먹는 게 힘들었던 시절이라 먹을 걸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중 한 곳이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손의 개수가 중요했다. 무르익지 않은 고사리 같은 손도 괜찮다. 그러니 아이들의 손도 노동의 밑천이 되어 귀한 포도를 먹을 수 있었다.

 그날도 동네 아이들 예닐곱이 포도밭으로 몰려가 자질구레한 일을 돕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렸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잠깐의 쉬는 틈에 동네 아이들과 일하는 어른들이 모여 참으로 포도를 나눠 먹고 있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축제를 열었다. 달큼한 뒤로 줄줄이 줄 서 따르는 새콤함은 입안 축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그렇게 흠뻑 빠져 연신 입안으로 포도를 끌어넣고 있었다. 왁자지껄 웃음  뒤로 '못난이'라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소리의 주인이 나인 것을 알게 됐다. 순간 나는 온통 보랏빛인 얼굴을 들었다. 사람들의 웃고 있는 시선이 온통 내 얼굴에 닿아 일렁이는 파도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듯 속이 울렁댔다. 그날 이후 어린 시절 수두 앓는 얼굴에 바른 약처럼 보라색은 창피하고, 서글퍼지는 색이 되었다. 그렇게 내 생에 첫 별명은 얼굴에 지울 수 없는 보래색 우울의 곰보를 만들었다.

 지금에야 외모로 사람의 잘났고 못났고가 결정되지 않는다며 웃고 넘길, 별일 아니라 치부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뭐든 쉽게 절망하고 절대적이던 어린 시절이었다. 동네 아저씨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고, 중요하지 않다. 그분 눈에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그 후 나 스스로 어그러진 틀에 가두고 외모뿐 아니라 뭐든 못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별명을 싫어하게 되었다.


 최근에도 별명이 생겼다. 사랑하는 아들이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포동포동 살 오른 내 모습이 귀여운 돼지를 닮았다며 ‘핑크뚱’으로 부른다. 살결이 핑크빛인 돼지를 빗대어 지어졌다. 처음에는 돼지라는 표현이 불편했다. 그러나 현재 나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자연스럽게 닉네임으로 핑크뚱을 사용하고 있다. 나름 귀엽게 표현되었고 그렇다고 거짓도 없어 마음에 든다.

 같은 별명이라도 누가 부르냐에 따라 바람에 쉽게 자신을 내어주며 눕는 갈대처럼 내 마음의 뾰족함도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네가 부르면 귓가에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같이 간질간질 마음을 기분 좋게 해 사랑스럽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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