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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좋아했어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30번.

by 이태연



<<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의 시선 >> - 셔플링(인간의 잠재의식을 이용한 수치 변환술)을 다루는 존재입니다. 자신에게 설치된 '장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생물 학자를 찾아 거머리떼가 우글대는 어둠의 지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 타인의 기억을 빼앗는다는 건 타인의 세월을 빼앗는 것과 같은 일이다. (···) 나는 살아남아서 이 말도 안 되는 암흑 세계를 탈출해, 빼앗긴 나의 기억을 속속들이 되찾는다. 세계가 끝나든 어떻게 되든,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나는 완전한 나 자신으로 재생해야 한다.


* 아무도 내가 하룻밤 새 땅속의 미로를 헤매 다녔다는 것을 모른다. (···) 나의 현실 세계가 앞으로 28시간 42분이면 끝난다는 것도 모른다.









* 10시 반이 가까워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4시간 남짓이다. 뭘 할지 분명하게 정할 필요가 있었다. 안생의 마지막 24시간을 되는대로 어영부영 지낼 수 없다.


* 내가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한다 해도, 나는 역시 지금 같은 인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계속 잃어 가는 인생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게 나 자신이 되는 일 외에 다른 것은 없다. (···)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없다.


*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를 근원부터 뒤흔드는 높고 큰 너울이었다. 그 너울은 끝없이 출렁거렸다. 나는 벤치 등받이에 팔을 괴고, 그 출렁거림을 견뎠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박사의 말 >> - 지하 폭포 뒤에 있는 비밀 연구소에서 지내며, 계산사인 주인공 '나'에게 셔플링을 의뢰한 프리랜서 생물 학자입니다.


* 의식의 핵을 영상화했단 말이지. (···) 패턴이 저장된 컴퓨터 안에 드디어 블랙박스를 넣어 봤어. 그랬더니 의식의 핵의 모습이 실로 멋들어지게 영상화되지 뭔가. (···) 뛰어난 음악가는 의식을 소리로 환치하고, 화가는 색과 형태로 환치하지. 그리고 소설가는 스토리로 환치하지 않나. 그와 똑같은 이치야.


* 그 스물다섯 명은 빠짐없이 그 시기에 죽었어요. 그런데 자네만 3년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셔플링을 계속하고 있어. (···) 나는 '조직'에 프로젝트의 동결을 제안했어. 살아남은 사람의 뇌에서 정크션을 제거하고, 셔플링 작업을 중지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 그러나 '조직'은 그럴 수 없다고 했어.


* 자네는 자신의 의식의 핵을 무의식중에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어. (···) 세계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끝납니다. 그게 자네 의식의 핵이라는 거야. (···) 거기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성도 없고 삶과 죽음도, 정확한 의미의 가치관이나 자아도 없어요. 그곳에서는 짐승이 사람의 자아를 조정합니다.









*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고, 육체는 반드시 사라져. 즉 시간이 화살을 앞서 가는 것이야. 그런데 말이야.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사유란 것은 시간을 끝없이 끝없이 분해해요. (···) 사유 속으로 들어간 인간은 죽지 않아요. 정확하게는 불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없이 불사에 가깝지. 영원한 생이랄까.


* 자네가 불사의 세계를 피할 할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어. 지금 죽는 것. (···) 정크션 A가 이어지기 전에 죽는 것이야.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 두려워할 일은 없어. 이건 죽음이 아니야. 알겠나? 영원한 삶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자네는 자네 자신이 되는 거야. 그에 비하면, 지금 이 세계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환영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걸 잊지 말게나.









<< '세계의 끝'의 나의 시선 >> - 주인공으로 자신의 그림자가 의뢰한 지도를 만들며, 마을의 수수께끼에 점점 다가갑니다.


*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불확실하고 두서없는 마음뿐이었다.


* 나는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없고, 그림자는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그림자 광장'은 그림자를 잃은 사람과 사람을 잃어버린 그림자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셈이다.


* 마음을 버릴 수는 없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어둡든, 때로 그것은 새처럼 바람 속을 날고 영원을 내다볼 수도 있다.


*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인 듯 느껴졌다. 벽도 문도 짐승도 숲도 강도 바람구멍도 웅덩이도, 모두가 나 자신이다. 그들은 모두 내 몸속에 있었다. 이 긴 겨울조차, 아마 나 자신이리라.









* 나는 축 늘어진 그림자를 사다리 위로 끌어올리고, 그다음에는 어깨에 둘러메듯 하고 광장을 가로질렀다. 왼쪽에 솟아 있는 싸늘하고 검은 벽이 우리 둘의 모습과 발자국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 그림자를 업었다. 그림자의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가벼웠지만, 그래도 역시 업고 언덕을 넘으려면 상당한 부담이 될 듯했다. 그림자가 없는 홀가분한 생활에 완전히 길들어 버린 내 몸이 그 무게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 나는 말했다. "이곳은 나 자신의 세계야. 벽은 나 자신을 둘러싸는 벽이고, 강은 나 자신 속을 흐르는 강이고, 연기는 나 자신을 태우는 연기야.


* 그림자를 잃고 나자, 나 자신이 우주의 끝에 홀로 남겨진 듯 느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이곳은 세계의 끝이며, 세계의 끝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다.









<< '세계의 끝'의 그림자의 말 >> - 주인공 '나'의 그림자입니다.


* 이 벽 밖에 다른 세계가 있어. 그래서 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사람들을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거라고. 밖에 아무것도 없다면 굳이 벽으로 둘러쌀 필요가 없잖아. 반드시 어딘가에는 출구가 있어.


* 나는 몸을 다쳤지만, 너는 마음을 다쳤어. 너는 무엇보다 우선 네 마음을 회복해야 돼. (···) 너는 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게 가장 우선이야.


* 너는 절대 잘못되지 않았어. 가령 기억을 잃었어도,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이야. 마음이란 건 그 자체가 행동 원리를 갖고 있어. 그게 즉 자기야. 자신의 힘을 믿어. 그러지 않으면 너는 외부의 힘에 이끌려 알 수 없는 장소로 끌려가게 될 거야.








* 이 마을의 완전함은 마음을 버리고 성립된 거야. 마음을 버리고, 각자의 존재를 영원히 팽창되는 시간 속에 끼워 넣은 것이지. 그래서 아무도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 거야.


* 마음은 짐승들이 벽 밖으로 가져가. 그게 퍼낸다는 말의 의미야. 짐승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흡수하고 회수해서 그걸 바깥 세계로 가져가. 그리고 겨울이 오면 그런 자아를 몸 안에 축적한 채 죽어 가지. (···) 그게 완전함의 대가야. 그런 완전함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약하고 무력한 것에 모든 것을 떠넘겨야 유지되는 완전함에 말이야.


* 요컨대 너는 전기 접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야. (···) 그림자가 죽으면 꿈 읽기도 꿈 읽는 일도 그만두고 마을에 동화돼. 마을은 그런 식으로 완전성의 고리 속을 영원히 돌고 돌아. 불완전한 부분을 불완전한 존재에게 떠넘기고, 그리고 그 웃물만 홀짝거리면서 사는 거라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너? 그게 진정한 세계냐고.








* 다른 출구는 모두 엄중하게 막아 놓았는데, 남쪽 웅덩이만 손대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두었어. 울타리도 없고,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아? 그들은 공포로 그 웅덩이의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는 거야. 그 공포를 걷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마을을 이길 수 있어.

* 이 마을을 만든 건 너 자신이야. 네가 모든 걸 만들었어. 벽이며 강이며 숲이며 도서관이며 문이며 겨울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 웅덩이도, 이 눈도 다.


*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참 묘하군. (···) 너를 좋아했어. 내가 너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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