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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n 03. 2024

부디 삶의 흐름을 정지시키지 마옵소서-<라셀라스>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26번. 

 





    이 작품의 구조는 현실 → 유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 →현실로의 이동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디스토피아적인 작품주제를 담아내는 데 일조를 합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세상을 탐색해 나가는 라셀라스 왕자의 여정은,  18세기 독자뿐만 아니라 현대의 독자들도 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 작가의 시선 >> -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행복의 골짜기' 에서 살고 있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느 날 완벽한 행복을 찾아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해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된 왕자는, 어떤 삶이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지 탐구해 나갑니다. 


  *  공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희망의 환영을 열심히 좇아가는 사람들이여,  나이를 먹으면 젊은 날의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며 오늘 부족한 것이 내일이 되면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여,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에 관한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라. 










 *  속세를 떠난 이곳의 삶이 주는 평안하고 즐거운 모습은 참으로 대단하여,  그것을 처음 맛보는 사람은 이 복된 삶을 영원히 누릴 수 있기를 언제나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단 들어와 철문이 닫히고 나면 아무도 되돌아가는 게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는 결코 바깥에 알려질 수 없었다. 


  *  거의 모든 왕자들은 골짜기 너머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전혀 없이, 인간이 만든 것이든 자연의 산물이든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갖춰져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서 보냈다.  (···)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이 스물여섯이 되면서 왕자들의 놀이와 모임에서 빠져나와 홀로 거닐며 조용히 명상하기를 즐기기 시작한 라셀라스 왕자였다. 


  *  그는 말했다.   "동물로 창조된 여타의 모든 피조물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 짐승들과 달리 나는 배불리 채워져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 인간에게는 분명히 여기 이  곳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숨겨져 있는 게 틀림없어.  아니면 감각과는 다른 어떤 욕구가 존재하고 있어서 그것이 채워진 뒤에야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











  *  현인 학자가 말했다.  "이 행복의 골짜기에서 불행하다는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은 왕자님이 처음이십니다."  (···)  왕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만약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안다면 나에게는 뭔가 바라는 대상이 생길 것입니다."


  *  라셀라스 왕자의 인생에서 스무 달의 세월이 흘러갔다.  왕자는 분주한 공상을 펼치는 일에 너무도 깊이 열중하여 자신의 고립된 현실적 처지를 망각했으며,  끊임없이 인간사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상상하여 이에 대비하는 데 몰두하느라 자신이 과연 어떻게 무슨 수단을 써서 인간 세상으로 섞여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잊어버렸다.  (···) "결코 되찿을 수 없는 시간을 나는 그저 낭비해 버리고 만 것이지.  그러니까 스무 달 동안 나는 매일같이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멍청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



 *  왕자가 말했다.  (···) "나는 지금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천천히 관찰하고 살펴볼 작정입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왕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 "생각이 없는 사람은 결코 현명해질 수 없지.  이렇게 한없이 경박하게 살다가는 결국 무지한 존재밖에 되지 않을 것이야.  무절제한 행동은 비록 잠시 동안 우리에게 흥분과 자극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 인생을 단축시키거나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네.  젊은 시절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


  *  한 철학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행복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이 세상에 없소.  자연은 친절하게도 이미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곳에 행복을 가져다 놓았소.  행복에 이르는 길은 바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  (···)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헛된 희망이나 끈질긴 욕망으로 고통당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오"


  *  이윽고 라셀라스가 말했다.  (···)"여기 우리 앞에 죽어 누워 있는 자들, 즉 고대의 현자나 권세가였을 이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현세의 삶이 짧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경고하는군요.   그들 가운데는 아마 우리처럼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열심히 고민하는 도중에 저 세상으로 붙들려간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품은 이런 소망들 중 그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아믈락의 말 >> - 라셀라스가 '행복의 골짜기'에서 탈출하게 도와주고,  그와 함께 세상을 탐구하는 동행자가 되어주는 시인이며 현자입니다. 


  *  시인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법입니다.  


  *  지금 왕자님께서는 바깥세상을 이 골짜기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온한 것으로 상상하고 계시지만,  폭풍우로 물보라가 치솟고 거센 소용돌이로 들끓는 바다와 같은 것이 바로 세상임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제가 보기에 왕자님과 공주님께서는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궁리하느라 실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 우리에게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희망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슬픔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일들이고,  희망과 두려움의 대상의 대상은 미래의 일들이지요.  심지어 사랑과 미움조차도 과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랑이나 미움이라는 감정적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뭔가 그 원인이 틀림없이 과거에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  우리 인간의 마음은 몸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뭔가를 잃어버리고 또 뭔가를 새로 획득하지요.   (···) 세월의 물결을 따라 흘러갈 때,  우리 뒤로 멀어져 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항상 작아 보이며,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항상 점점 크게 보이기 마련이지요.  부디 삶의 흐름을 정지시키지 마옵소서.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그것은 진창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에 다시 몸을 맡기시옵소서.  


  *  정신적 질환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자주 발생합니다.  다만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는 탓에 그것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  인간이라면 누구나 때때로 터무니없는 생각에 휩싸여서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희망이나 두려움을 품는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  공상을 처음 마음속에 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이 터무니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들에 점차 익숙해지고 또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그것들이 어리석은 망상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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