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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Sep 27. 2024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 게 최선이야 - <핏빛 자오선>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78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 매카시입니다.  미국 서부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로,  반란자를 처치하기 위해 고용한 미국인 용병들이 잔혹한 아파치 대신 인디언이나 멕시코인을 죽이고서 벗긴 머리 가죽으로 멕시코 정부를 속여 돈을 뜯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작품 속에서 미국인도, 멕시코인도, 아파치도 모두 생존과 욕망을 위해 냉혹하게 무기를 휘두릅니다.  



 << 작가의 시선 >> -  이름도 없는 한 소년이 열네 살이 되던 해 가출합니다.  한 바에서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약탈과 살인, 방화, 탈주, 등이 범람하는 환경에서 훗날 인디언 머리 가죽 사냥꾼으로 같이 있게 될 홀든 판사를 만납니다. 그리고 비정규군으로  입대하게 됩니다. 


  *  소년은 제재소에서 일하고,  디프테리아 격리 병원에서 일한다.  어느 농부에게서 일당 대신 늙은 노새를 받는다.  (···)구걸의 나날이고 도둑질의 나날이다.  자기 자신을 제하고는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을 나아가는 노새 위의 나날이다.














 *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죄인으로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  하느님은 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알맞게 만들지는 않았어.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 게 최선이야.  하느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 아니야.  아무리 보잘것없는 창조물에게도 주님이 점지해 주신 의미를 찾을 수 있지.  하지만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악마가 바로 곁에 있었던 게 분명해.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창조물이 나온 거야.  기계를 만들지.  그리고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만들고.  이제 악마가 천년만년 자기 혼자서 움직일 수 있어.  수리도 필요 없고."


  *  약탈을 하겠답시고 강을 건너고 나면 다시는 못 돌아올 거네.  (···)노인이 느릿느릿 말을 잇는다.  하느님의 분노는 잠들어 있지.  인간들 앞에서 100만 년이나 잠들어 있지만,  그것을 깨울 힘을 가진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네.  (···)내 말 잘 듣게.  남의 나라 땅에까지 가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친 짓이야.  그래 봤자 세상만 더 시끄러워질 뿐이지.













*  부대는 카사스그란데스강의 돌투성이 바닥을 건너 가느다란 물줄기를 끼고 이어진 단구를 나아가다,  몇 해 전 멕시코 군대가 아파치 부락을 도륙했던 뼈의 땅에 이르렀다.  800미터에 걸쳐 널브러진 여자와 아이의 해골 중에는 자그마한 원숭이처럼 보이는 갓난아기의 가느다란 팔다리뼈와 이빨 없는 종이 같은 해골이 죽음을 맞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고,  자갈 사이에 사금파리 조각과 비바람에 닳은 바구니 파편이 박혀 있었다.


  *  영수증 잘 챙기게.  멕시코인은 허리띠에서 가죽칼을 꺼내 할멈이 쓰러진 곳으로 가 머리채를 움켜쥐고 비튼 후 칼날로 두개골을 쭉 그어 머리 가죽을 벗겨 냈다.   (···)글랜턴은 탄창을 되끼우고 덮개를 덮은 다음 묵직한 권총을 손바닥에 놓고 돌리더니 말의 어깻죽지에 걸린 총집에 도로 꽂았다.  그리고 핏물이 뚝뚝 듣는 머리 가죽을 맥길에게서 건네받아 짐승 가죽을 검사하듯 햇볕에 비춰 보고 되돌려 주고는 말의 고삐를 잡고 광장을 가로질러 물이 흐르는 여울로 향했다.


  *  소금으로 얼룩져 있던 호숫가는 순식간에 피와 내장으로 뒤덮였다.  군인들이 핏빛 호수에서 시체 둘을 끌어내는 동안 물가를 가뿐히 달려가는 포말이 떠오르는 태양에 연분홍으로 발그레했다.  군인들이 시체 사이를 거닐며 칼로 검은 머리털을 수확하고 나면 희생자들 머리에는 시뻘건 양막을 뒤집어쓴 듯한 뻘건 두개골만이 남았다.













 *  머리 가죽을 돌바닥에 늘어놓는 동안 구경꾼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모두 128개의 머리 가죽과 여덟 개의 머리가 있었다.  주지사의 부관과 수행원들이 마등으로 나와 그들을 환영하고 전리품에 감탄했다.  그날 저녁 리들앤스티븐스 호텔에서 열릴 축하연에서 수고비를 전부 황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에 용병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고는 다시 말에 올랐다.


  *  소년은 계속 나아갔다.  1.6킬로미터쯤 더 갔을 때 불경스러운 야수의 시신처럼 보이는 기묘한 검은 덩어리가 발자국 한가운데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머리 가죽들이었다. 돈으로 교환되지 못한 채 악취 나는 초록 모닥불에서 타올라 시커먼 덩어리만이 전생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  소년은 다리에 화살이 꽂혔는데, 화살촉이 뼈에 부딪어 드륵드륵했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화살대를 상처에서 얼마만 남기고 분지른 후 다시 일어나 달아났다.   (···)소년은 다리가 뻣뻣해져 마차에서 떨어져 나온 장대를 목발 삼아 절뚝절뚝 뒤처져 갔다.  (···)바지 자락이 피로 시커멓고, 허벅지에 피투성이화살 동강이가 못처럼 툭 불거져 있었다.














  *  소년은 소금을 먹고 자라는 풀밭을 가로지르다 뒤를 돌아보았다.  말은 꿈쩍도 않고 있었다.  저 멀리 배의 항해등이 파도에 깜박였다.  망아지는 고개 숙인 채 어미 곁에 서 있었다.  말은 인간이 알지 못할 그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익사하고 고래가 시커먼 망망채해로 거대한 영혼을 나르는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  소년은 의사가 준 목발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저곳 온갖 곳을 찾아가 전직  신부의 소식을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소년은 돈이라야 몇 푼 없었고 달리 귀중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술집과 도박장과 투계장과 투견장마다 돌아다녔다.


  *  소년의 삶은 인간 삶의 흥망성쇠와 아무 관련 없이 흘러갔고,   (···)총칼과 밧줄로 죽음을 맞은 이들을 보았고,  자신을 2달러에 판 여인이 그 2달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모자 하나에 다 담을 수도 없을 황금 더미가 카드 한 장에 모조리 날아가는 것을 보았고,  우리에  갇힌 곰과 사자가 야생 수소와 싸워 목숨을 잃는 것도 보았고, 샌프란시스코가 잿더미가 되어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는 것을 두 차례나 지켜보았다.














<< 홀든 판사의 말 >> - 승리를 점철하는 냉혹한 과학(니체적 초인)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하느님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시지.  하지만 성서는 거짓말이야.  판사가 돌덩이를 쳐들어 보였다.  하느님은 돌과 나무와 뼈로 말씀하시네.


  *  한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라네.  (···)본디 세상은 싹이 트고 꽃이 피면 시들어 죽게 마련이야. 하지만 인간은 쇠락이라는 것을 모르지.  인간은 한밤중에도 정오의 한낮이라는 깃발을 올리네.


  *  세상의 비밀을 영원히 풀 수 없다고 믿는 자는 두려움과 신비 속에서 살아가지.  결국 미신에 질질 끌려다녀.  인생에 대한 통제력은 빗방울에 모두 침식당하고서 말이야.












  *   운으로 좌우되든 가치를 내재하고 있든  모든 게임은 전쟁의 조건을 품고 있지.  판돈으로 걸려 있는 것이 게임과 참가자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네.   (···)손에 특정 패를 쥐고 있는 자는,  따라서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네.  이것이야말로 전쟁의 속성이야.  일단 게임에 판돈이 걸리면 권위와 정당화는 저절로 생겨나네.  보라고,  전쟁은 가장 진실한 형태의 예언이야.  


  *  인간의 지식은  여전히 불완전하지.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아무리 높이 평가할지라도 결국은 더 높은 법정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게 되네.  그곳에서는 반박 진술도 할 수 없지.  평등과 정직과 도덕은 힘을 잃어 무효가 되어 버리고, 원고와 피고의 가치관은 경멸받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결정은 정의에 관한 모든 질문을 무력화하네.  하느님의 거대한 선택에는 도덕적이고 영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다 포함되네.


  *  별 생각없이 움직였다고 해서 운명이 없는 것은 아니라네.   (···)어떤 역사든 그것은 각 개인의 역사도,  각 개인의 역사의 합도 아니라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거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어찌 알겠나.  오히려 자신은 여기 없을 수도 있었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것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네.














 *  운명은 끝내 피할 수 없어.  판사가 말했다.  (···)자기 운명을 알고서 일부러 반대의 길을 택한 자들도 결국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명을 맞게 되네.  운명이란 이곳 세계만큼이나 거대하여 반항자까지도 다 품고 있거든.  너무나 많은 이들이 파멸하고 만 이곳 사막은 너무도 광대하여 우리 마음을 마구 끌어당기지만 사실상 텅 비어 있지.  황량한 불모지일 뿐이야.


  *  전쟁이 불명예가 되고 전쟁의 고귀함이 의문시된다면 피의 신성함을 아는 명예로운 이들은 무도회에서 쫓겨날 거네.  (···)전쟁의 피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친 사람만이,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 생생한 공포를 맛보고 급기야 참된 영혼으로 공포와 이야기 나누는 법을 배운 자만이 진정한 춤을 출 수 있네.  (···)내 말 새겨듣게. 무대에는 오직 짐승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 있네.  공간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는 그 하룻밤 동안 이름은 없되 목숨을 이어갈 운명이지.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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